왜 우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가

<세일즈맨의 죽음> by 아서 밀러

by jiinko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세일즈맨의 죽음』은 다달이 월급을 받아 빠듯하게 삶을 꾸려가는 가장의 꿈을 이야기한다. 이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에게 꿈은 희망적이고 아름다웠으며, 또 냉정하고 잔인했다.


평생 집 한 채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대공황이 미국을 덮친 1940년대, 그렇게 소원하던 집을 마련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35년간 쉴 새 없이 일해 온 한 세일즈맨이 있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대가로 줄어드는 빚이 주는 작은 즐거움을 누리고 수십 년간 발목을 죄고 있던 그 족쇄가 완전히 풀리는 감격의 순간도 맞이한다. 이제 남은 건 힘들게 소유하게 된 그 집에서 펼쳐질 가족들과의 행복한 여생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의 웃음소리로 가득차야 할 집은 주인 없이 텅 비어있다. 누군가는 꿈을 찾아, 누군가는 쾌락을 찾아,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났다. 반나절 이상 비어있는 집은 밤이 되면 휴식을 간절히 원하는 주인들로 인해 어둡고 고요하기만 하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집 한 채로 한 사람, 한 가정의 존립이 좌지우지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아파트는 매일 빽빽이 들어서는데 한 가족이 자리 잡고 맘 편히 살 집이 없다. 발을 디디는 한 평 한 평에 고되게 번 돈이 고스란히 뿌려진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 내 소유로 만들 때쯤엔 그렇게도 빛나던 집이 우리의 육신처럼 시들어있다.

일평생을 한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일해 온 60대 가장 윌리 로먼은 그렇게 소원하던 집이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되며 출구 없는 경쟁으로 얼룩진 전쟁 같은 삶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삶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 삼십 년 넘게 몸 바쳤던 회사에서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고 거의 잡힐 것 같았던 그의 꿈은 다시 한 번 멀어진다.


그런 그에게도 못 이룬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아니 반드시 이뤄줘야 하는 유일한 희망이 있는데 바로 첫째 아들 비프이다. 윌리는 비프가 대박을 터뜨려 하루아침에 집안을 일으켜 줄 날만 기다리고 있지만 아버지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비프는 본인은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착으로 변질되어 가는 아버지를 점점 더 비뚤어진 방식으로 대한다. 비프는 그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싶지만 윌리는 솔직한 모습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아직도 눈에 뚜렷이 보이는 영웅 비프를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아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어떻게든 아들에게 희망의 확신을 자아내려고 하는 윌리와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이제 그만 두라고 넌지시 암시하는 비프, 이 둘의 대화는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기만 하고 결국은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개인적인 사건들을 통해 대공황 시대 미국사회 속, 반짝이는 미래가 맑은 눈으로 손짓하고 있을 것만 같은 아메리칸 드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이루는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와 아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현실을 만나 왜곡된 이상과 왜곡된 이상 안에서 서서히 틀어지는 관계를 보여준다.

멸시와 수치 가운데에서도 일생의 꿈을 놓지 못해 닳아빠진 신발로 뛰어다니는 아버지 윌리와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이 죽도록 미운 아들 비프의 관계는 바짝바짝 말라간다. 최고가 되기를 꿈꿨던 윌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최고’의 자리에 아들이 대신 앉기를 바라고 그 아들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비난을 뒤로 하고 환대와 존경 받는 날을 고대하며 그 희망을 식량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뭔가 좋은 소식이라도 들고 들어가 너희 어머니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그러니 사실이니 뭐니 하는 말로 내게 설교하려 들지 마라. 나는 관심 없어.


사업 자금을 융통해줄 수도 있는 회사 사장을 만나고 온 비프에게 속히 좋은 소식 듣기를 기대하며 이렇게 말하는 윌리의 모습에서 윌리가 얼마나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지 볼 수 있다. 윌리에게는 척박한 사실보다 비옥한 거짓말이 필요하다.

돈을 꾸기는커녕 푸대접만 받고 풀이 죽어 돌아온 비프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아버지보다 더 용감하게 농장을 구입하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인다. 평생 군말 없이 윌리를 내조해온 어머니 린다는 끝없이 아들들에게 불쌍한 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라고 말한다.


윌리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절, 열심히 하는 만큼 보상이 보장되어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그 시절을 붙잡으려 하지만 이미 그 시대는 저물었고 한 단계 진화한 시대가 그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이상주의자인 아버지에 반해 그의 두 아들은 잔혹하고 불공평한 현실을 수용하고 그 안에서 살길을 찾고자하는 현실주의자다.

아버지의 허황된 바람으로 본인의 삶까지 꼬여버렸다고 믿는 비프는 윌리에게 더 큰일이 나기 전에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앨 수 없냐며 자신을 놓아달라고 울며 애원한다. 하지만 윌리는 그 꿈을 없앨 수도, 놓을 수도 없다. 그건 그동안 간신히 버텨온 자신의 삶을 놓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윌리는 자신의 이상을 살고 있는 친구 찰리에게 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윌리, 어느 누구에게도 죽는 게 더 나은 경우는 없네.”

죽음은 순간적으로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찰리의 말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는 없다. 윌리가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다고 말한 건 그의 삶이 비프의 말처럼 싸구려 인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인간의 진실함, 인생의 존귀함을 알면서도 자꾸만 자신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삶의 저편에서 우리를 끝없이 유혹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 자본주의 안에서 몰락해가는 윌리와 함께 파멸할지, 고고하게 품위를 지키며 순간순간이 주는 강렬한 기쁨에 몰두할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아서 밀러는 제목에서부터 세일즈맨의 죽음을 암시한다. 죽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종말이지만 소설 속 세일즈맨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보다 갑작스럽게, 또 변덕스럽게 찾아왔기에 그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비록 그의 죽음이 구차하고 비참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 그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하며 초라하게 타오른 그의 희생을 통해 우리 삶을 바라보는 관대하고 해학적이며 명쾌한 시각을 가져야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또 다시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기댄다할지라도 잠시 어루만질 수 있는 시절이 있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윌리가 상상 속 형에게 애걸하는 부분은 우리 모두의 좋았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어떻게 하면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빛과 가족애로 가득했고 겨울엔 썰매 타느라 두 볼이 붉어지는 줄도 몰랐죠. 언제나 어떤 즐거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고 뭔가 좋은 일이 앞에 있었어요.


나이가 들만큼 든 오늘도 빛과 가족애로 하루를 채울 수 있고 발그레한 볼로 썰매를 탈 수 있다. 그런 하루를 만들 수 있다면 오늘이 내일의 좋았던 시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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