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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Aug 15. 2020

마음이 찹찹해지는 맞춤법

비슷한 발음의 늪

검색도 인스타를 활용하는 이 시대에도 블로그를 애용하는 나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일단 초록색 아이콘부터 누른다. 쓸 데 없는 서론이 포스팅의 반을 차지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진 위주 인스타나 영상 위주 유튜브보다는 글이 큰 역할을 하는 블로그가 더 편하다. 


몇 년 전, 갈만한 카페를 검색해보다가 한 블로그에서 '마음이 찹찹했어요'라는 문장을 보았다. 찹찹한 마음은 어떤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찹찹했을까.

나도 오랜 기간동안 띄엄띄엄이나마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확한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블로거의 업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안 되기에 수차례 재확인하고 리서치하고 수정한 후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포스팅을 올린다. 상황이 이렇기에 포스팅 하나를 올리는데 몇 시간씩 걸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점점 업데이트하는 빈도는 낮아지고 블로그가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방문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업데이트를 하려면 감수하는 시간이 줄거나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블로그는 소셜 미디어와 같이 누구나 원하는 내용을 올릴 수 있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개된 공간이기 때문에 포스팅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조금씩 밀리고 있긴 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아보는 1순위 플랫폼으로 블로그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간단한 정보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는 이만큼 간편한 게 없다. 하지만 간편한 만큼 콘텐츠의 질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내용을 떠나 무엇보다 맞춤법 오류의 덫은 걸러낼 수가 없다.


맞춤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발음이 거의 동일할 때 생기는 오류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영어권 국가 원어민들이 말도 안 되게 자주 틀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you’re(너는)과 your(너의)이다. 영어가 제 2외국어인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 둘을 왜 그리도 헷갈려 해서 종종 반대로 쓰는지 아직도 이해불가다. 특히 유튜브 댓글에서 “you’re music makes me elevated.”,  “your the best.”라는 문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미드 프렌즈에서도 레이첼이 쓴 편지를 읽은 로스가 이 부분을 지적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비슷한 발음으로 인해 생기는 맞춤법 오류는 단연 ‘의’와 ‘에’의 혼용일 것이다.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보고 뒷목을 잡을 뻔했다.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과 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기사에서부터 '의'과 '에'를 바꿔 쓰니 이런 글을 매일 읽고 자라는 아이들,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림에 떡', '너와 나에 추억'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에서 '기억의 남을 전시'을 봤다. 이 문장에서는 ‘기억’이 전시를 한 주체가 된다. 


영어로 치면 ‘of(의)’와 ‘at(에)’을 혼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행히 of와 at은 발음이 완전히 달라 외국인들이 헷갈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불행히도 '의'와 '에'는 발음이 너무 비슷하다. 이 비슷한 발음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범인이다.


수식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의'와 '에'가 모두 사용될 수 있는 문장도 있다. '화장한 날의 점심'과 '화창한 날에 점심'은 둘다 옳다. 전자는 화창한 날을 수식하고 후자는 점심을 먹는 행위를 수식하기에 비슷해보이나 서로 수식하는 대상이 다른 문장이다. 의미를 명확히 알고 사용하면 틀릴 일이 없는데 소리만 듣고 글로 그대로 옮겨서 이런 일이 생긴다. 구지(굳이), 거히(거의), 모(뭐) 등이 비슷한 예에 속한다.


‘~대다’가 ‘~되다’로 둔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이 나한테 자꾸 직접된다.', '아기가 칭얼된다', '그만 좀 징징되' 등 직접 본 것만 해도 너무 많다.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그 행동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말은 '~대다'이고 다른 것으로 바뀌거나 변함을 나타내는 말은 '~되다'이다.




고전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자막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조차 ‘불러된다’라고 쓰는 실수를 범한다. 외국어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번역가가 아니다. 


맞춤법을 완벽하게 쓰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다. 글을 직접 쓰고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맞춤법을 완벽하게 쓰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맞춤법을 지적하는 이 글에서조차 어딘가에 맞춤법 오류가 숨어있을 것이다(특히 나는 띄어쓰기에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적인 공간에 글자를 이용해 쓰는 사람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이면 좋겠다. 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한다. 


언어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습득된다. 자연스레 습득되기에 언어를 이용해 읽고 쓰고 말하는 행위 역시 쉽고 가볍고 당연하다. 글쓴이가 의도한 의미의 정확한 전달은 해석하는 사람 몫이다. 규칙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맞춤 '법'이라고 법을 괜히 정한 게 아니다. 법은 지키라고 존재한다. 지키지 않을 때 무법 지대가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맞춤법은 여전히 어렵고 복잡한 존재다. 


맞춤법이 파괴된 글자들을 보면 마음이 참 착잡하다. 내가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에도 착잡하다. 마음이 찹찹하다던 그 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마음이 잘게 썰려 조각 난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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