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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Jul 22. 2020

번역가는 글자에 집착한다

구글 번역을 잘 활용하는 방법

2018년, 런던으로 가는 길, 도하에서 경유하기 위해 카타르 항공을 탄 적이 있다. 비록 공항 내에만 머물렀지만 처음 가보는 중동이라 매우 들뜬 마음이었다. 늘 그랬듯 자리에 앉자마자 영화를 보기 위해 스크린부터 켰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설정 되어있었다. 설정을 바꾸기도 귀찮아서 그대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있던 J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J의 화면 한가운데에 '이력서'라고 한글로 된 버튼이 있었다. 대체 여기에서 이력서가 왜 나온 건지 파악이 안돼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J의 스크린은 언어가 한국어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영화를 다시 볼 때 누르는 버튼인 'resume'이 동사 resume(다시 시작하다)이 아닌 명사 resumé로 인식되어 '이력서'로 번역되어 있던 것이다! 카타르 항공은 그 사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 번역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번역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텍스트를 두 가지 관점에서, 두 가지 사고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번역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도, 끝이 안보이는 긴 원고도, 깐깐한 의뢰인도 아니다. 번역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제대로 쓰이지 않은 문장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된 후에’와 같은 문장이 등장하면 먼저 주어와 동사를 일치시켜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한 후에’, 또는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된 후에’로 문장을 한 번 고치고 그 다음 영어로 또 한 번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한 가지 과정을 더 거치게 된다. 쓰는 사람은 생각 없이 쓰지만 읽는 이나 번역하는 이에게는 괴로운 과정이다. 

이런 류의 비문은 베테랑 작가들도 빠르게 글을 쓰다 보면 놓칠 수 있는 실수라고 하니 수용할 수 있다. 문제는 실수가 아닌 습관이 되어버린 비문의 사용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자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주어는 단어들 사이로 존재를 감추고 전치사는 맞지 않는 짝 뒤를 쫓아다닌다. 이런 문장을 만나면 글이 가져야 할 미적 요소는 잠시 내려두고 문장 구조만 형식적으로 맞추게 된다. 내가 앞뒤가 맞는, 깔끔하면서도 의미 전달이 명확한 문장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다.


수변공원을 산책하다가 '자전거를 내려서 건너주세요.'라는 현수막을 봤다. 이런 문장이 있다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자전거'를' 들고 내려서 건너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원래 의도는 분명 자전거'에서' 내려서 건너라는 말일 테다. 아니면 정말로 자전거를 들고 내리라는 경고였을까.

이래서 번역가는 글자에 집착할 수 밖에 없고 집착해야 한다. 전후 문맥을 살피고 틀린 문장이라도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해 수리한 후 다른 언어로 옮겨야 한다. 국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영어도 잘한다. 이는 입증된 사실이다. 한국어부터 정확히 알고 쓰면 그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진다. 


깔끔히 정리된 문장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해하기도 쉽고 번역하기도 좋고 마음까지 상쾌하다. 혹시 혼자 기계 번역을 이용하는데 영어로 번역된 문장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면 원문인 한국어부터 살펴보자. 한국어가 훌륭하게 쓰였다면 구글도, 파파고도 더 잘 이해한다. 어차피 기계 번역은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의 마지막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원문이 완벽할수록 오차의 범위도 줄어든다. 잘 쓰인 문장은 기계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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