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inko Jul 09. 2021

바닷가에 살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

벌써 주문진에 온지 일주일이 되었다. 정말 다행인 건 아직도 2주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 평소대로 짧게 온 여행이라면 이미 서울로 떠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아직도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현실이 놀랍다.


원래 처음 마음 속에 정해둔 목적지는 양양이었다. 이미 여러 번 와 봤고 올 때마다 좋은 기억만 남았기 때문에 한 달간 살 곳을 고르라면 당연히 양양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직접 살아볼 생각을 하니 힙한 서퍼들로 넘치는 양양은 어쩌면 내향적인 나에겐 조금 지나치게 활동적인 장소가 될 것 같아 목적지가 바뀌었다. 어차피 서핑하러 주 2회 양양에 갈 테니 좀 더 조용하지만 바다와 가까운 곳을 물색하던 중 주문진이 눈에 띄었다. 어릴 때 가족들과 주문진에 사는 아빠 친척집에 놀러갔던 기억도 있고 양양과 강릉 시내 중간인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자면 지리적인 위치만 바뀌었을 뿐 내 일상은 바뀐 게 없다. 아, 매일 바다에 들어가는 루틴이 추가된 것만 빼고.


"이제 여기에서 살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점심에 막국수를 먹다가 갑자기 언니가 말했다. 그렇다. 더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이곳에 살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돌아갈 이유가 없어진다. 내 삶에서 또 한 번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기 전에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따져보았다. 과연 어떤 선택이 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알아내기 위해. 겨우 일주일 살아놓고 뭘 알까 싶지만.




좋은 점


1. 바다를 아무 때나 볼 수 있고 바다에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다.

일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고개만 돌려 바다와 숲을 바라볼 수 있으니 시력도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전망이 좋은 집에서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지만 엄청난 가치이다.

80일 된 아들을 두고 무언가에 홀린듯 놀러왔던 친구는 뜨거운 햇살 아래 바다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들어가야겠다며 그냥 들어가버렸다. 서른 다섯살 된 애엄마가 언제 또 즉흥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볼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나와 언니도 거의 매일 바다에 뛰어든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지고 숨이 턱까지 차는 상태에서 뜨거운 모래 위로 올라올 때의 그 상쾌함이란.


2. 잡생각이 줄어든다.

물론 여기에 아예 눌러앉아 살게 되면 잡생각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역시 돌아오겠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산과 바다, 숲과 꽃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그들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3. 주차공간이(평일에만 해당) 매우 여유롭다.

차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데 인구 밀도가 현저히 낮다보니 주차 걱정을 할 일이 없고 주차요금 걱정 역시 없다. 서울에선 카페에 갈 때 발렛비 3천원을 내고 두 시간을 초과하면 시간당 6천원을 내야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유류비도 저렴한 건 당연. 어제 확인했을 때 휘발유가 리터 당 1636원이었으니 서울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주유소가 늘 1800원대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경고등이 깜빡여도 그 주유소에서는 단 한 번도 주유한 적이 없다.


4. 넓고 한적하고 전망 좋은 좋은 카페가 많다.

관광지스럽지 않은 곳을 잘 찾아가야 한다는 전제 하에 참인 문장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도 많고 차로 2,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유명한 관광지 주변이 아니고서는 차 막히는 일이 거의 없고 가는 길이 청량한 나무로 가득하기 때문에 운전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오로지 평일에만 해당! 금요일부터는 카페 안에 찰칵찰칵 소리가 가득하다.



5. 물가는 싸지 않지만 방울 토마토는 싸다.

과일을 아주 싫어하는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과일이 방울 토마토이다.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되고 씨가 남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과일에 비해 보존도 꽤 오래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한 입에 쏙 들어가 편리하다. 이 방울 토마토가 서울에서 어찌나 비싼지 한 팩에 쌀 땐 7천원대, 비쌀 땐 9천원대에서 만원대까지 올라간다. 여기에서는 방울 토마토를 들었다 놨다 할 일이 없다. 무려 한 팩에 3500원! 그런데 더 맛있기까지 하다. 일주일만에 벌써 방울 토마토를 네 팩째 먹고 있다.



단점


1. 물가는 관광지

부족한 인프라에 비해 물가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싸다면 더 비싸다. 쾌적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가 4천원 대이면 매우 저렴한 편이고 대부분 5천원, 비싸면 7천원까지 한다.


2. 가끔 무섭다.

밤이 되면 동네 자체가 칠흙같이 어두워진다. 인적도 드물어서 밤 외출은 삼간다. 또 하나 무서운 건 사람이다. 이건 대도시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이상하게 시골 마을에 대한 공포심이 조금 있다.

며칠  소돌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이끌려 소돌항에 들렀다가 미래에 내가  동네가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을을   둘러봤다. 이름처럼 작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어촌이었는데 곳곳에 상의를 벗어재낀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상인데 '내가 만약  동네에 산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안돼!라는 마음부터 들었다. 영화와 뉴스를 너무 많이 봤나보다.


소돌항

그런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동네 곳곳에서 술자리를 벌이고 었다.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겁만 없었다면 나도 자리 잡고 앉고 싶을 정도였다. 오른쪽에 보이는 아저씨들은 바다  바위에서 자리를 펴고 소주를 마시고 있다. 저기에서 마시는 술은 대체 얼마나 달단 말이냐! 자연이 제공하는  엄청난 혜택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단점을 모두 상쇄하는 가장 강력한 한방이   있다.


3. 엄마 아빠와 강아지들이 그립다.

다같이 내려와 마당 있는 집에서 함께 살면 좋겠다는 막연하고 엉뚱한 상상을 한다. 강아지들은 마당에서 뛰어 놀고 엄마 아빠는 텃밭을 가꾸고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역시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결국 바닷가에 살지 않아야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비성수기나 겨울엔 너무도 외로울 거라 걱정한다. 하지만 여름이 있으면 겨울도 있고 붐빌 때가 있으면 고요할 때도 있는 , 오히려  템포 느리게 충전하는 시간이  수도 있지 않을까?

강원도까지 집값 폭등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에 빨리 내려와 터를 잡아야   같은 생각도 들고 어물쩡대다간 강원도에도  곳이 없어질  같다는 조급함도 밀려온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10년 뒤 내 모습은 아주 달라져 있겠지.


어딘가에서 숯불 향이 사르르 올라와 내려다보니 숙소 테라스에서 보이는 다이버들의 아지트 공간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당에 천막을 치고 바베큐를 하고 있다. 마음이 요동친다.  5 열심히 일하고 일주일에  번씩만 저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불을 지피고 저녁을 함께 하면, 그것도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하루의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방에 풀릴 같다.


숯불 향이 솔솔 흐르고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오늘 저녁도 완벽한 장면이 연출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택트 시대 적극 활용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