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아 이번 주에 리허설 한 번 와줄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서울을 떠나며 '필요하다면 한 두 번쯤은 서울 다녀와야지'라고 쿨하게 마음 먹고 왔지만 막상 정말 그 날이 오니 쿨했던 나의 마음이 점점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가는 길 세 시간, 오는 길 세 시간. 여태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혼자서 운전해 본 적은 없었다. 길어봤자 왕복 네 시간 정도였고 더 먼 곳은 항상 언니와 번갈아가며 운전했기에 혼자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기분이었다.
리허설 시간 오전 11시, 극장이 있는 방배동까지 정말 빠르게 달린다면 2시간 40분이면 갈 수도 있지만 넉넉히 3시간을 잡으면 최소 아침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마다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화상 수업이 있다. 미지근해진 마음이 점점 뜨거워짐을 느낀다.
6시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업까지 하고 바로 출발하면 되겠거니 계획을 세우고 열한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또 시작되었다.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시계를 보면 열두시, 한 시, 두 시. 결국 네 시까지 그렇게 뒤척였다. 그 때마다 '지금 잠들면 두 시간은 잘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간절히 빌었다. 제발 자고 싶다고...
원래 불면증이 자주 있기도 하고 다음 날 중요하거나 부담되는 일이 있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지만 강릉에 온 이후 열흘 간은 바닷속을 헤엄치듯 꿀잠을 잤기에 불면증이라는 강적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긴급용으로 수면 유도제를 집에 구비해두는 나는 이 곳에 와서 이미 너무 안일해져 있었다. 날 그렇게 괴롭히던 불면증을 잊다니. 절대 졸음운전을 해서는 안되기에 필사적으로 잠들기 위해 노력했고 새벽 6시 알람이 울리기 직전까지 두 시간 정도 꿈속에서 온갖 삶의 양상을 경험하며 침대 속에 빨려들어가듯 잤다.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수면량이었지만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배도 안 고픈데 꾸역꾸역 아침을 먹었다. 화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데 그 날 수업을 듣는 학습자님께 문자가 온다.
"제가 늦게 일어나서 오늘 수업을 못하겠네요."
지난 1년간 단 한 번도 늦거나 취소한 적이 없는 분인데 이 날 딱 하루 이런 문자가 오다니. 나는 에이전시를 통해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수업하기 때문에 수업 12시간 전에 취소할 경우 강의료를 그대로 받는다.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20분간 지난밤 밍밍하게 날려버린 7시간보다 농축된 양질의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드디어 차에 시동을 걸고 안전한 여정을 위해 잠깐 기도를 한 후 활기차게 출발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했지만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것이 뻔하므로 그 역시 참았다. 강릉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랬고 달리는 길 양 옆으로 나무들이 푸릇푸릇 빛났다. 신호에 몇 번 걸린 것을 제외하고는 홍천 휴게소까지 거의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린 것 같다. 오랜만에 신나게 악셀을 밟으니 속이 시원했다. 긴장을 조금만 풀면 어느새 160까지 밟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에 정신을 바짝차리고 계기판과 속도 제한을 확인하며 달렸다.
홍천 휴게소에서는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참았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고 이쪽엔 가평, 이쪽엔 양평, 이쪽엔 남양주가 있다는 표지판을 차례로 지나 서울에 입성했다. 역시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건 서울의 바벨탑 롯데월드타워였다. 평소엔 가는 곳마다 달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날 내려다보는 그 건물이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조금 반갑기까지 했다.
롯데월드타워를 지나 삼성동에 이르러 낯익은 풍경이 보이자마자 얼른 사진을 찍어 홀로 강릉에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언니에게 보냈다. '숨막혀', '답답해'라는 답을 예상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조금 그립네."
겨우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린 마치 서울을 영영 떠나 귀농한 사람들처럼 오바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해외로 떠난 것도 아니고 고작 차로 세 시간 거리에 가 있으면서. 하지만 숨이 막힌 건 사실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층 아파트가 얼마나 많고, 또 얼마나 많이 지어지고 있는지 하늘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아파트만큼 많은 차들을 뚫고 정확한 시간에 극장에 도착했다. 아무도 내가 강릉에서부터 세 시간을 달려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 시간 동안 리허설을 참관하고 피드백을 듣고, 공연과 음악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맥북 메모장에 한가득 채운 후 인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서울 집에 잠깐 들를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시간도 없었기에 미련 없이 바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만만치 않았다. 양양에 여행갈 때에도 단 한 번도 그렇게 막힌 적이 없었는데 공사가 연달아 이어져 차들이 한 차선으로만 겨우 움직였다. 거의 네 시간이 걸려서 주문진 숙소에 도착했다. 브루노 마스 3집과 신화 2집이 없었다면 나는 마지막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수도 있다.
내린천 휴게소에서 리터당 1604원에 셀프 주유까지 완료해 차도 든든하게, 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방금 실시간으로 검색해보니 옥수동 우리집 근처 주유소의 휘발유는 1935원으로 무려 300원 이상 차이난다. 서울 도심의 무서운 물가가 오랜만에 날 덮쳤다. ‘네가 감히 날 우습게 봐?’ 라며.
다음 날 오후, 이렇게 뻥 뚫린 바다를 바라보며 화상 수업을 했다. 사무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비해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으로 수업하는 내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기가 조금 민망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런 전망이 코 앞에 있다면 활용할 수 밖에.
만약 일 때문에 서울에 한 번 더 가야한다면? 오만가지 핑계를 다 대서 피하려 할 것 같다. '가야되면 가지 뭐!'라는 말을 지금이라도 취소해야겠다. 어떻게든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이런저런 모든 방법을 동원한 끝에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야겠지만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하다.
그럼에도 쓸쓸한 밤바다를 거닐 때 '다시 서울로 가도 좋을 것 같기도 하네'라는 애매모호한 문장이 머리속을 맴도는 건 왜인지.
나의 패기 넘치는 서울로의 첫 출장(?)은 이렇게 끝났다. 한 가지를 가지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몸소 체득한다. 당분간은 후텁지근한 매연보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지련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내 앞에 드넓은 바다가 주어졌으니까. 다행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