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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Jul 27. 2021

바다여 안녕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  하나인 <슬픔이여 안녕>에서의 안녕은 'goodbye' 아닌 'hello(bonjour)' 안녕이다. 슬픔을 맞이하는 인사인지 떠나보내는 인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우리나라  번역이 그래서  매력적이다.


나도 어제 바다에게 안녕을 고했다. 지금은 떠나보내는 인사이지만 곧 맞이하는 인사가 될 수도 있는 '안녕'을 영진해변을 지나며, 주문진 수산시장을 지나며, 죽도해변, 기사문해변을 지나며 한 번씩 던져주었다. 한 달간 견줄 데 없는 행복을 누리게 해줬기에 인사하는 마음이 얼얼했지만 모자람 없이 마음껏 누렸기에 보내줄 수 있었다.


숙소에서 보내는 마지막 새벽, 바다가 보여준 하늘

 

떠나기 바로 전 날, 그러니까 바닷가에서의 마지막 밤, 갑자기 아직 서울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딱 하루만 더 있다가 갈까?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레 흘러나왔고 프리랜서가 가진 혜택을 또 한 번 누리기로 했다. 하지만 극성수기인 7월 말이었기에 하루 전에 숙소를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방이 없었을 뿐더러 설령 있다해도 너무 비싸기도 했고 우리가 원하는 지역에는 방을 찾을 수 없었다. 한 군데 민박집을 찾긴 했는데 빨간색 포인트 벽지에 역시나 빨간색에 가까운 꽃분홍색 침구로 뒤덮인 방 사진을 보고 차마 예약을 클릭할 수 없었다.


그러자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에겐 차가 있잖아?’ 차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매우 급하게 차박을 알아봤다. 좋아하는 카페를 찾아 남애리에 갔다가 갯마을해수욕장에서 차박  캠핑이 가능하다는 현수막을  기억이 났다. 바로 앞에 이마트 24 있고 샤워장,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차박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런 곳이라면 밤에도 무섭지   같았다. 하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차박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전혀 아무런 정보가 없던 우리는 급하게 강릉 시내 다이소로 향했다. 다이소엔 정말  있으니까... 예상했던 대로 차량용 방충만 하나만 빼고  있었다! 시선을 차단할 목적으로 앞유리 가리개와 차량용 암막커튼  , 캠핑용 매트와 목베개를 샀다. 그렇게 매우 부실한 준비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아늑하고 포근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일찍이 갯마을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에서 차량 바닥을 평평하게 하는 평탄화 작업을 해야한다는 걸 본 기억이 나서 뒷자석을 젖히고 앞좌석을 앞으로 밀어 온갖 짐들을 앞좌석에 모두 쑤셔 넣었다. 아, 우리의 차는 매우 아담한 미니쿠퍼 3도어 3세대이다. 캐리어 두 개와 늘어난 짐들을 차곡차곡 쌓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거기다 우리는 둘 다 키가 큰 편이라 다리를 펼 수가 없어서 앞좌석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자야 했다. 밖에서 누군가 봤다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같았을 것이다.


밑에 까는 매트나 이불이 없어서 요가 매트를 깔고(그래도 스트레칭은 해야한다고 서울에서부터 요가 매트를 들고 왔다) 서핑 후 입으려고 산 판초를 깔았다.

매우 엉성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럴싸한 잠자리가 마련되었다. 미니쿠퍼 3도어에서 텐트 없이, 트렁크 문도 닫은 채 성인 두 명이서 차박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렇게 대충 차박을 준비한 다음 실행에 옮기는 사람 역시 있을까 싶다. 좁고 덥고 바닥은 딱딱해서 다음 날 몸은 좀 쑤셨지만 화이트 와인의 영향으로 꽤 깊게 잘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새카맣게 탄 손발과 녹초가 된 몸을 보고 이제는 정말 바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마트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떼우고 갯마을 해변에도 '안녕!'을 외치고 이번엔 정말 떠났다.


우리 둘다 얼마나 졸렸는지 난생 처음 졸음 쉼터에서 30분을 졸다 갔다. 졸음 쉼터가 이렇게 유용하고 소중한지 몰랐다. 역시 좁고 더웠지만 30분의 휴식이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피곤했으면서도 바로 서울에 입성하기 아쉬워 괜히 우회해 청평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남양주 카페에도 갔다가 오후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다.

서울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1.5배는 더 뜨거웠다. 아스팔트에는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고 텁텁한 공기는 들이마시는 게 두려울 정도로 열기를 품고 있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로 리허설까지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니 밤 열시였다. 열대야 + 뒤숭숭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다음 목적지를 찾고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계약이 10월에 끝나기 때문에 어차피 다음 목적지를 또 찾아야 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여행하듯 살아야한다면 실제 여행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직 매 순간 고민 중이다. 복에 겨운 행복한 고민이다. 이번 새해는 어디에서 맞게 될까.


이렇게 정확하게 천사의 날개 같이 생긴 구름을 본 적이 없다(@영진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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