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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Sep 03. 2021

글 좀 써봐도 괜찮으실까요?

퀴즈와 질문의 차이

말투의 유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과도한 친절과 공손함에서 불필요하게 덧대는 말이 생기고 그렇게 새로 생긴 말 형식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요새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표현은 -일까요? 이다. 신기할 정도로 최근 몇 달간 모든 사람들이 '-일까요?' 형식을 빌려서 질문 한다. 카페에 가면 '큐알 체크 하셨을까요?', 식당에 가면 '예약 하셨을까요?', 계산할 때에는 '영수증 필요하실까요?'라고 묻는다. '하셨나요?'와 '필요하신가요?'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좀 더 친절하고 공손하게 무장한 신흥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제주로 잠시 출장을 가게 되어 단기로 살아보실 분 계실까요?’

제주도 한달살이를 알아보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살아볼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니 계실까요? 라고 물어볼 수 있다. 그리고 답변이 달린다. 

‘8/1-15일까지 얼마일까요?

얼마인지 사람들에게 맞혀보라는 것 같아서 아래 댓글을 달아야할 것 같지만 아니다. 단순한 질문이다. 


요즘 자주 받는 문자에서도 이 대유행은 존재를 드러낸다. 

‘7월 3일 수업 언제 취소하셨을까요?’

‘000 상무님 이번 주에 수업 진행하셨을까요?’

이제 유행이라는 내 말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언제 취소하셨나요?'

'이번 주에 수업 하셨나요?'

이렇게 쓰면 이제 허전해 보인다. 왜 '하셨을까요' 일까. 마치 나에게 내가 한 일이 아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묻는 것 같다. 보는 내가 다 알쏭달쏭 하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게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무분별한 사용에 있다. 방금 전, 부동산 관련 카페에서 본 댓글이다.  

‘안녕하세요. 집 앞 도로는 좁은 곳일까요?’

집 앞 도로가 좁을까요? 넓을까요? 라고 묻는 퀴즈가 아니다. 도로가 좁은지 넓은지 본인이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다. 집 앞 도로의 너비는 이미 정해져 있다. 좁거나 넓거나 굽었거나 어쨌든 답은 정해져 있다. 점점 '일까요'가 이상한 위치에 마구 끼어든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번 시작된 유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퍼진다.  

점점 이 대유행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의아해질 때쯤, 대미를 장식하는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온다.

‘안녕하세용. 여쭤볼 게 있는데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용?’

대체 누구한테 괜찮냐고 묻는 것일까. 본인이 물어봐도 괜찮겠냐고 묻는 건데 존대를 하는 걸 보니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나한테 괜찮냐고 묻는 말인데 앞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몇 번이고 문장을 다시 읽었다. 

나도 이미 대유행에 서서히 물들고 있나보다.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반복해서 읽다보니 저 문장이 말이 되어 보이고 다른 문장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분석도 불가능한 알쏭달쏭의 끝판왕이다. 


왜 이상한지 이해가 안 된다면 다른 문장에 대입해보면 즉시 도움이 된다. 헬스장에 새로 등록 하러 가서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안녕하세요. 헬스장 등록하려고 하는데 등록해도 괜찮으실까요?'

전부터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왠지 이렇게 질문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온다. 

'이 주제에 대해 글 좀 써 봐도 괜찮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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