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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Sep 07. 2021

듣기(hearing)와 듣기(listening)

의도적으로 선택할 가능성


맥락의 영어: 듣기(hearing)와 듣기(listening)


다음 중 옳은 답을 고르시오.

1. I heard the rumour.

2. I listened to the rumour.


둘 다 옳아 보이지만 정답은 1번이다. Listen과 hear는 우리나라 말로는 둘 다 ‘듣다’로 해석되기 때문에 혼용의 여지가 많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두 문장 다 ‘나 그 루머 들었어.’이다. 하지만 이 두 단어에는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Listen에는 주체의 의도가 수반된다. 무언가를 들은 주체가 어떤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들을 때 listen이라는 동사를 (전치사 to와 함께) 쓸 수 있다. 반면 hear는 주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귀에 흘러 들어왔음을 말한다. 한 밤중에 정체모를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때 우리는 ‘Have you heard it?’ 이라고 묻는다. 루머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로 흘러 들어오는 게 루머다. 이 때에는 나의 목적이나 의도가 수반되지 않았음으로 ‘hear’를 쓴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hear이지만 운전을 하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들을 때에는 listen이다.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를 본인도 모르게 흘려 듣다가(hear)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귀를 기울여 들으면 listen이 된다. 영어 듣기 테스트를 ‘listening test’라고 하고 청각이 멀쩡한지 확인하기 위해 하는 청각테스트는 ‘hearing test’라고 하는 이유다. 

음악은 주로 listen과 짝이고 소리는 hear와 짝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나오는 음악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 그 음악은 일상의 여느 다른 소음처럼 listening의 대상이 아닌 hearing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배경음악은 단지 귀를 스쳐가는 소리에 불과하다. 집중해서 들을 대상이 아니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소리에 예민한 나에겐 세상 모든 소리가 listening의 대상이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와 소음이 가득하지만 현실에서는 때에 맞는 동사의 ‘듣기’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듣기의 대상을 선택하듯 그 고유한 듣는 행위를 글자와 언어로 나타내줄 꼭 맞는 동사 역시 잘 선택해야 한다. 


일상에서 너무도 흔하게 사용하는 see와 watch도 마찬가지다. 두 단어 모두 우리말로는 ‘보다’로 해석되어 조금 헷갈릴 수 있지만 두 가지 '듣다'를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두 가지 '보다'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1. I saw a rainbow in the sky.

2. I watched the rainbow in the sky.

이번엔 정답이 무엇일까. 답은... 둘 다이다! 시험 문제는 항상 이런 식으로 비틀어서 출제된다. 굳이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1번이 더 정답에 근접하다. 무지개는 우연히 보는 것이다. 내일 무지개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물들인 무지개가 시야 안에 들어온다. 그럴 때는 무지개를 본(see)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무지개를 본 후에도 무지개를 쭉, 유심히 관찰하듯 볼 수도 있다. 그럴 때 watch를 쓴다. 그래서 2번 예문에서는 무지개rainbow 앞에 있던 관사 a를 the로 슬쩍 바꾸었다.

'듣다'와 조금 다르게 이 두 단어는 섞어서 쓸 수 있는 경우가 많다. 'I saw a movie yesterday.', 'I watched a movie yesterday.' 둘 다 옳은 선택이다. 그럼 대체 언제 쓰고 언제 쓰지 말라는 걸까. 대부분의 규칙에는 예외가 있고 변칙이 있기 때문에 규칙을 외우려고 하기보다는 때에 따라 옳게 사용한 문장과 상황을 익혀놓는 것이 현명한 학습방법이다. 

영어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이번에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본 적 있냐고 물으면 'Yes, I watched it.'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 학교에서, 또는 학원에서  영어시간에 ‘see: 보다’, ‘watch: 보다’의 순서로 단어를 외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짧게는 십년에서 길게는 30년까지 단어를 이렇게 단순하게 외워왔으니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단어를 선택하기보다 우리말로 번역된 해석만 생각해 단어를 골라낼 수밖에. 


맥락을 알자

영어 단어와 단어의 정의를 매치해 외우는 것도 물론 효과적일 때가 있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단어 학습의 핵심은 '맥락context'이다. 문맥이라고도 하는 ‘context’는 함께(with)라는 의미를 지니는 접두사 con-과 text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단어다. 언어에 있어서의 맥락은 문자 그대로 글자 또는 단어들끼리 함께 맺는 관계를 뜻한다. 여기에서는 문자적인 관계에서 조금 더 넓게 뻗어가 상황으로까지 확장해본다. 단어나 숙어의 정의만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닌 그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장 안에서 쓰이는지 함께 익히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바꿔 말하면 단어를 대할 때에도 미시적 관점이 아닌 거시적 관점을 갖자는 이야기이다. 나무를 보기보다 숲을 봐야 한다. 각 단어에는 한 두 개의 단어로 된 정의보다 더 깊고 더 넓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단어 하나로부터 시작되어 소설이 쓰이기도 하고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단어를 접하면 반드시 그 단어가 쓰인 문장을 함께 익히고 다른 문장에서도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꼭 확인해보자. 단어에도 옷을 입을 때처럼 TPO(Time Place Occasion)가 있다. 이를 무시하면 ‘Remain: 남다’가 머릿속에 각인 되어 ‘I remain some food(나에게 음식이 조금 남아 있다).’, ‘The time is remain(시간이 남았다).‘처럼 습관적으로 아무렇게나 단어를 끼워 맞춘 문장을 만들게 된다. 실제 내가 직접 여러 번 들은 문장들이다. 학습하고자 하는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떤 순서에 위치해있으며 어떤 형태로 쓰이는지 역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문장 내 단어들만 조금씩 바꿔가며 응용할 수 있게 문장 전체를 외우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가르칠 때 기억이 나는 한 최대한 그 표현이 쓰인 영화나 드라마, 또는 책 속의 장면을 덧붙여 말해준다. 돈을 조금씩 모아 낸다는 뜻의 ‘chip in’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나오면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로스가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간 에피소드부터 떠오른다. 로스가 새 아파트에서 짐을 풀자마자 입주자 대표가 찾아와 25년간 건물을 위해 일했던 관리인을 위한 파티를 열기 위해 주민들이 돈을 모으고 있다며 100달러를 내라고 말한다. 로스는 취지는 좋지만 자신은 방금 이사 왔기에 미안하지만 돈을 낼 수 없다고 말하고 둘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오간다. 결국 로스는 입주민들 사이에서 구두쇠(cheapskate)로 낙인찍히고 돈을 낸 피비는 환대를 받는다. 입주자 대표가 피비에게 ‘Thanks for chipping in.’이라며 고마움을 표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로스는 ‘You chipped in?’이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때에 따라 바뀌는 단어의 형태도 함께 배우고 따라해 보면 효과는 배가 되고 나중에 chip in이라는 표현을 다시 접하거나 직접 써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헷갈리는 일 없이 정확하게 쓸 수 있다. 

비슷한 예로 과거에 무언가를 하곤 했다는 뜻의 ‘used to-’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면 영화 라라랜드의 사운드트랙 중 하나인 Audition에서 과거 파리에 살았던 고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My aunt used to live in Paris.’를 들려준다. 시간이 된다면 전체 노래도 들어보고 가사 내용도 함께 살펴본다. ’My family used to go camping on the weekend.‘, ’Didn’t you use to live downstairs?‘ 등과 같은 예문도 만들어본다. 이제 ’used to-‘를 잘못 사용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훗날 어디에 살았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게 될 때 노력하지 않아도 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귀에 흘러 들어오는 hearing의 대상은 선택할 수 없지만 listening의 대상은 선택할 수 있다. 눈을 감지 않는 이상 보이는 seeing의 대상은 시야에 자연히 들어오지만 watching의 대상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보고 살 순 없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은 있다. 맥락 없이 외우는 단어는 듣는 대상, 보는 대상의 성격까지 흐려놓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단어 안에는 이야기가 깃들어있다는 것도. 단어가 가진 이야기와 맥락을 함께 익힐 때 단어는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우리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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