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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Sep 18. 2021

TMI 시대

인간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얼마전 미국 시트콤을 보다가 'TMI'라는 단어가 들려서 앞으로 돌려서 다시 봤더니 정말 TMI였다. 우리나라에서 생긴 신조어인줄 알았는데 영어권 국가에서도 실제 쓰이는 단어였다니. 이렇게 직접 보지 않았으면 콩글리쉬인줄 알았을 텐데. 영어로 된 미디어 시청은 재밌기도 하면서 동시에 공부도 되는 참으로 완벽한 취미 생활이다. 


TMI가 우리나라에서 외래어로 굳건히 자리 잡으면서 내가 늘 과하다고 생각하던 정보의 홍수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은 어디에나 있다. 당장 스마트폰으로 아무 소셜 미디어나 웹사이트를 열면 알고 싶지 않은 온갖 정보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어느 연예인이 건물을 얼마에 사서 얼마의 시세차익을 남겼는지, 어떤 인플루언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등, 알지 않아도 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가 예고 없이 내 머릿속에 박힌다. 


TMI가 넘치는 곳은 온라인 세상 뿐만이 아니다. 어딜가나 나에게 온갖 정보와 경고를 전달하는 수단은 널려 있다. 공원이나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으면 항상 배경에 걸리는 게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제는 풍경처럼 자리 잡은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이다. 현수막에는 주로 반려동물과 관련된 에티켓이나 흡연 및 음주, 고성방가 금지 등 경고문이 크고 굵은 글씨로 써져있다. 공공장소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우리가 지키지 않는 게 많기 때문일 테다. 너무 당연한 공공장소 에티켓이지만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알록달록하고 굵은 글자를 빌려 신신당부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현수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여기에도 현수막, 저기에도 현수막, 현수막이 없는 곳엔 표지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안내문에도 TMI가 넘친다. 요즘엔 많이 사라졌지만 몇 년전만 해도 화장실 칸 문에 고리가 있으면 아래에 '이곳에 옷을 걸어주세요', 선반이 있으면 '가방이나 소지품을 올려놓으세요' 등의 안내문이 꼭 붙어 있었다.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옷을 걸 수 있고 가방을 올려놓을 수 있는 걸 아는데. 




장마철에 지하철역에 붙어있던 안내문이다. 아주 친절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우산커버를 사용하지 않고 물을 뚝뚝 흘린채 지하철에 탑승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수고로운 일을 한 거겠지만 인력 낭비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하철에는 이런 종류의 안내문 외에도 TMI가 또 있다. 


시를 정보라고 볼 순 없지만 과하게 던져주는 글자임에는 틀림없다. 비평가 황현산 선생님의 책『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는 지하철을 점령한 시에 관한 트윗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를 옮겨보자면,


지하철 시나 등산로 명언들의 또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저마다 수행해야 할 명상과 성찰을 거의 강제적으로 대신해주려는 그 오지랖에도 있다. 그게 자기계발서의 문화로 이어지기도 하는 듯.



가만히 서서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사방에서 자기 좀 봐달라고 외치는 화려한 시각과 청각까지 더해진 광고성 정보를 흡수하고 눈으로는 스크린 도어에 촘촘히 박혀 있는 시까지 읽느라 바쁘다. 각자 조용히 사유할 시간을 박탈당한다. 안내문에서 아주 간단한 것조차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세세하게 알려줌으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이것 좀 보라고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떠먹여주는 것보다 스스로 보고 생각하기를 원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의 동기부여다. 








지하철을 자주 타고 다니던 시절, 아빠는 내가 일 때문에 멀리 이동해야 할 일이 생기면 목적지 역이 몇호선이니 어느 역에서 몇호선으로 갈아타고 그 다음 어느 출구로 나가서 어디로 가라고 일러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에게 내가 설마 아직 그것도 모를 것 같냐고 핀잔을 주었다. 딸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다만 혼자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여정이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찾아가는 일이 반복되면 도움을 요할 일도 점점 줄어든다. 


처음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설명서가 없는 최초의 휴대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그 전까지 우리는 휴대폰을 사면 매뉴얼을 보며 사용방법을 하나씩 익혀야 했었다. 휴대폰은 매뉴얼이 없으면 절대 사용법을 알 수 없는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기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큼 애플이 혁신적으로 운영 체제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휴대폰은 설명서가 없어도 써가면서 알아서 파악할 수 있는 기기였다. 이케아 설명서에는 글자가 없다. 이미지가 조립 방법을 알려주고 우리는 이미지를 행동으로 바꾸어 가구를 조립한다. 이런 게 북유럽 교육 스타일인가 생각도 든다. 


꼭 글이 필요한 곳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과한 설명과 안내는 글이 주는 힘을 약하게 할 뿐이다. 가끔은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도 좋다. 인간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드르륵, 휴대폰이 진동한다. 흘긋 모양새만 봐도 어느 지역 어디에 몇 명이 감염되었다는 재난문자임을 알 수 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와서 일상생활까지 방해하던 문자 횟수가 다행히도 요즘엔 조금 줄었다. 

읽어보지 않는다. 또 똑같은 내용이겠거니 생각하고 휴대폰 화면을 닫는다. 과한 정보의 전달이 정보의 가치와 희소성을 뚝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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