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뚱땅뚱땅 얼렁뚱땅

by 바쁜 거북이


가끔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딸은 혹시라도 건망증이 아닌 심각한 병일까 봐 걱정을 했다.


번 그런 일이 일어나자 딸이 피아노 얘기를 꺼냈다.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니 치매예방에 좋을 거라고


나는 설마 하면서도 드라마에서 보던 일이 나한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녀 보기로 했다.


동네 가까운 곳에 성인대상 피아노 학원이 있었다. 나는 어떤 것이든 처음 시작은 열심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려고 했고 주말에 문을 열지 않을 때는 원장에게 출입문 비밀번호를 물어봐서 혼자 연습하기도 했다.


손가락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진도는 내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그렇게 5개월쯤 다녔을 때 원장이 연말에 발표회를 한다고 했다. 나에게도 한곡을 연습해서 발표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떨려서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원장과 협의 끝에 내가 정한 곡은 ‘히사이시 조'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였다.


목표가 생기자 피아노가 더 재미있어졌다. 연습을 더 할만한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웬만큼 치고 있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마침내 발표회 날! 아들과 딸이 꽃다발을 들고 발표회에 참석했다.

막상 학원에 도착하니 평소 못 보던 학원생이 많았다. 발표자만 20명은 되었다.


그런데 팸플릿을 펼치는 순간 내 순서가 1번이었다. 또다시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스스로 주문을 걸며 ‘까짓 거 하면 되지'라고 되뇌어도 심장이 나대었다.


결국 늘 틀리던 부분을 좀 버벅거리며 내 연주가 끝났다. 모두들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고 나는 홀가분했다.


80프로 정도를 차지하는 20~30대 젊은 연주자들은 현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어려서부터 배웠겠지! 싶었으나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 시작했다는데 집중력이 남달랐다.


내 또래 분들의 연주자들은 많이 긴장했는지 연습한 만큼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처음 순서였던 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내 연주영상을 찍어 보여주면서 ‘자랑스럽다'라고 말해주었다. 아들도 ‘엄마가 정말 연주하는 사람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이날 연주회가 끝나자 원장은 연말파티처럼 많은 음식을 차려내었고 참석자들은 피아노와 인생얘기를 하며 친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연말 연주회를 끝으로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연습하면서 긴장을 했는지 허리가 많이 아파왔고 열정도 이전 같지 않았다.


이제는 피아노 악보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연주하던 그 순간은 기억에 박제되었다.


내 연주는 어린아이처럼 뚱땅거렸지만 아름다운 음악이었고 나도 잠깐 아름다워졌다.


혹시나? 싶어 시작한 피아노는 여기까지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현란한 연주자를 잠깐 꿈꾸었지만 그건 그냥 꿈이었다. 건망증이 좋아졌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신감’이라는 소득을 얻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