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고구마인줄 알았는데
황토색 흙으로 덮여있는 땅을 조심스레 낫으로 마사지를 해대니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행여 다칠세라 고구마 주변 흙을 깎아내리고 고구마를 구출한다.
‘아' 작은 탄성이 나오고 신이 난 나는 다음 고구마를 향해 전투적으로 다가간다.
시골밭에 고구마를 심고 노심초사하며 기다린 끝에 정말로 다 자란 고구마가 눈앞에 나타났다. 사실 이 고구마는 남편이 이것저것 심어본 농작물 중 하나이다.
퇴직 후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는 남편은 자투리 밭에 배추, 고추, 가지, 파 등을 심어놓았고 날마다 초보농사꾼의 열정을 쏟아부었다.
땅속에 돌이 많은 곳인데 남편은 일일이 돌을 들어내 옮기고 땅을 다독여 작물이 잘 자랄 환경을 만드느라, 얼마 전 수술받은 허리가 고장 나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나 있었다.
남편은 우리가 내려가면 많이 자란 작물을 보여주며 내가 “이거 좋네, 가져갈게"라는 말을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욕심을 내고 가져와도 빠르게 소진하지 않으면 상해서 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땅에서 바로 나온 고구마의 자태에 반해서 나는 전부 다 가져가겠다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남편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너무 좋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엔 고구마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심겠다고 했고 순간 나는 ‘내가 말을 잘못했나'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뭘 이렇게 신이 나서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정작 본인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줄 수 있어서 기쁜가 보다.
그런 점에서 우린 닮았다. 칭찬할 구석이 별로 없는데 유일한 장점이라고나 할까.
짐 트렁크가 유난히 작은 내차에 꾸깃꾸깃 최대한 실어 나른 고구마를 지금 아파트 현관문 앞에 쌓아 놓았다.
우리 집은 고구마를 잘 먹지 않는다. 맛을 보려고 익혀 보았고 ‘호박고구마'라고 들었는데 ‘밤고구마'였다. 그리고 중요한 ‘맛'은 너무 좋았다. 한 개를 다 먹고 나니 속이 더부룩해서 약을 먹어야 했다.
결국 고구마를 나눠줄 리스트를 작성하고 열심히 나눠준 결과 현재 소량의 고구마만 남아있다. 고구마를 받은 이들이 ‘먹어보니 맛있었다’는 말이 너무 좋았다
남아있는 고구마를 가만히 바라보니 참 모양이 제각각이다.
땅속에서 자라서 캐기 전까진 모습을 알 수 없으니 그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양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남의 양분을 많이 뺏어 먹어서 통통해진 고구마, 양분을 빼앗겨서 자라다만 고구마,
자리다툼에서 밀려 작은 공간에서 자라서 날씬한 고구마, 가족인 양 서로 엉겨 붙어 크기가 다양한 고구마 등 정말 제각각이다.
파는 고구마는 크기가 일정하던데 아무래도 우리 고구마는 상품성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고구마를 쳐다보면 저절로 ‘고구마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