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첫날,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 없어?
'저 애, 좀 차가워 보인다.'
'나랑 안 맞을 것 같은데.'
'뭔가 셀 것 같아.'
아직 한마디도 나눠보지 않았는데,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이 내려져 있어. 얼굴과 분위기만 보고도 우리는 사람을 꽤 빨리 판단하거든.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뒤로 그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전부 그 첫인상에 맞춰 보여. 조용히 있으면 '역시 차갑네.' 웃으면 '겉으로만 웃는 거 아냐?'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결정해 버려.
그림을 그릴 때를 떠올려봐.
먼저 밑그림을 그리지. 나비를 그려 놓으면 어떤 색을 칠해도 결국 나비야. 빨간색을 칠해도, 파란색을 칠해도, 노란색을 올려도 나비. 왜냐면 밑그림이 이미 나비니까.
선입견이 바로 이거야.
내가 먼저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밑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 뒤에 어떤 경험이 와도 그 위에 덧칠될 뿐이야.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려 놓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할 게 있어.
지식에서는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돼. 구구단을 알아야 나눗셈이 보이고, 자연수를 알아야 분수가 이해되는 것처럼. 이미 아는 것 위에 새로운 지식이 쌓이는 거니까.
하지만 사람한테 같은 방식을 쓰면 이야기가 달라져.
"쟤는 이기적인 애야." 이 밑그림이 한 번 그려지면, 그 뒤로 그 아이가 뭘 해도 이기적으로 보여. 자기 물건을 아끼면 '역시 이기적이지.' 친구를 도와주면 '뭔가 속셈이 있겠지.' 같은 행동도 밑그림이 다르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돼.
지식은 쌓을수록 정확해지지만, 사람에 대한 밑그림은 쌓을수록 왜곡돼.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는 밑그림을 조심해야 해.
물론 첫인상은 자동으로 생겨. 누군가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다만 그 생각을 확정 짓지 않는 거야.
'이기적인 애'라고 결론 내리는 대신, '이런 면이 있구나'로 두는 것. '차가운 애'라고 단정하기보다, '아직 잘 모르겠네'로 남겨 두는 것.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커.
교실에서 아이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가장 많이 본 장면이 이거야.
3월에 만들어진 첫인상이 12월까지 이어지는 관계. "쟤는 원래 그런 애야." 이 말이 한 번 붙으면, 그 아이가 얼마나 달라져도 주변의 시선은 잘 바뀌지 않아.
그런데 반대로, 밑그림 없이 만난 아이들은 전혀 다른 관계를 만들어 냈어. 처음엔 전혀 안 맞을 것 같던 두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예상 밖 모습을 발견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봤지.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넓은 존재야.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면 어떤 그림이든 나올 수 있어.
하지만 나비를 그려 놓으면 어떤 색을 올려도 나비밖에 나오지 않아.
밑그림을 내려놓고 만나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여.
사람을 알려주는 건 첫인상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