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이드 플랜엑스를 시작하며
나의 스물다섯은 대기업 입사가 유행이었다. 나는 유행에 뒤쳐지는 사람이었다. 야속하게도 공채, 인적성 넣는 족족 떨어졌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남들 모르는 곳에 가고 싶지는 않아 계속 허우적 댔다. 때로는 음침한 상상을 하곤 했다. 지금 이 원룸에서 죽으면 누가 몇일만에 나를 발견할까? 방은 유독 좁았다. 방의 크기만큼 참 좁게만 생각했다. 6월 어느 날, 비좁은 원룸에서 차려입은 정장을 입고 나는 면접에 합격했다. 스물여섯의 여름이었다.
회사는 2개 층을 쓰는 대기업 자회사였다. 나름 상장기업이었고 일도 재밌었다. 좋은 사수를 만나 울고 웃으며 야근을 했다. 동기들과 9시에 퇴근해도 아쉬워 10시부터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많은 감정과 교훈이 교차했지만 나는 스물다섯에 살던 원룸마냥 2개 층을 반복해서 맴도는 회사의 유령이었다. 남을 이겨서 위로 가는 게 다인 줄 알았다. 그렇게 옆을 채 보지도 못한 채 2년이 흘렀다.
시키는 일을 너무 열심히 했던 나는 두 번째 회사로 중견기업의 마케팅팀을 선택했다. 대행사에서는 주인의식이 독이었기 때문이었다. 1년은 조직관계에 2년은 인간관계에 몰입했다. 나의 해결 과제는 관계의 개선과 나를 향한 사람들의 인정이었다. 일과 나의 성장은 없었다.
경기도라 서울에 가기도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건 똑같은 사람들과의 똑같은 이야기, 똑같은 술뿐이었다. 만 30을 넘기자 돈이 아까워 죄책감에 쉽사리 먹지도 못했다. 어느 새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만다.
이제는 싫어도 꽤 웃으며 거절할 줄도 안다. 20대에 나를 울렸던 진심이 떠나고 든든한 의심이 와서 나의 멘탈을 지킨다. 뜨거움보다 적당함이, 진한 울분보다 드라이한 평화가 매일 함께한다. 나는 외롭지만 차마 외로움을 벗어날 수 없었다. 회사 건물은 2개층의 5배가 넘었다. 그러나 내 세상은 움츠러들고 또 쪼그라들어 1평 남짓한 책상에서 빙빙 돌고만 있었다.
그리고 서른둘 오늘, 나는 6년 전과 재회했다. 다음 스텝을 위해 밑져야 본전이라고 신청한 기획자 스터디였다. 바로 스타트업에서 고군분투하는 스물여섯들. 꽉 막혔을 원룸과 답답하기만 할 사무실, 나만 없는 사수가 대수롭지 않게 내 세상을 넓혀가는 2명의 청춘들. “열심히 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열심이라는 단어. 마치 아이들의 뒤에는 끝이 없는 평야가 펼쳐진 것만 같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 내가 두 다리로 밟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두 눈의 시야일지도 모른다고.
참 유치하지만 나이에 의미를 두게 된다.
다시 또 6년이 흘러 서른여덟의 내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때는 내 책상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훨훨 헤엄치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