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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플 Feb 17. 2022

대화가 항상 의미있을 수는 없어

제주 한 달 살기의 작은 흔적 #1

  서울살이를 할 때 이따금 마음이 허한 순간들이 있었다. 신나게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는 혼자 적적히 집으로 가는 길. 그닥 남는 이야기를 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를 온전히 지키지도 못한 것 같고. 괜히 부끄러운 이야기들만 주절 거린 거 같고.


  어제는 스텝 첫 날 이었다. 손님들을 맞이한 후 홀에서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일들을 노트북에 담았다. 답답한 마음에 맥주를 꺼내자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손수 맞은 손님들이라 안면이 있었다.


  예전에는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굉장히 낭만 어릴 줄 알았다. 평소에 하지 못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펼쳐 놓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


  그런데 어제의 그 자리도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친구들과, 동료들과 했던 실 없는 이야기들.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아픈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듣는 것도 참 재미는 있더라. 하지만 다를 바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건방진 마음을 먹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실없고 허할 뿐인데. 단지 서울이 빡빡한 도시라서, 또는 그저 깍쟁이 같은 사람들만 있다는 편견에 진실을 나눌 수 없다고 단정 지었던건 아닌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어쩌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어느 누구도 계획할 수 없었던 낭만적인 일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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