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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플 May 10. 2021

20대 카톡방에서 숨은 30대를 찾으며

돈이 나를 지킬까, 돈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할까

유교 문화권 대한민국은 '나이가 만드는 마법'들이 제법 많다. 인생의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기도 하고, 경험과 연륜으로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는 단단한 방패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건 '나이가 만드는 공감대' 일 것이다.



"몇 살이세요?"

"90이에요."

"오, 저도요. 말띠 시구나, 백말띠. 동갑이네요? 반가워요!"  

"아... 저는 빠른 이라서..." (꼭 말꼬리를 흐려야 한다.)  


특히 '빠른'이라는 시스템은 강력한 오리지널리티를 뽐낸다. 이따금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토크 프로그램을 보면 '엄격한 형/동생 제도와 빠른 년도 출생자들의 예민함'으로 꽤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년배'를 기준으로 내집단/외집단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미디어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세대차이 콘텐츠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동년배 사랑'을 반증한다고 본다.




이제 신조어 공부로 세대격차를 줄일 수 없다.  


가장 유명한 세대차이는 아무래도 언어다. 세대별로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다는 건 역사가 반복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이 바로 '신조어'.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1020대가 만든 단어들로, 이 단어들을 알고 모름이 젊음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2021년 3월 발행된 '신조어 능력평가'. 내 점수는 0점.



나와 친구들 역시 이따금 카톡방에서 <신조어 퀴즈>를 주고받는다. 퀴즈를 공유하는 자체가 젊음과 정서적 거리가 멀다는 증거지만 나름 애쓰는 서로의 모습에 영혼 없는 응원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최근 이 신조어 공부로도 건널 수 없는 또 하나의 벽이 세워졌음을 알아버렸으니, 바로 유튜브 *Pixid 채널<동년배 카톡방에 숨어 있는 다른 세대 색출하기>를 통해서다.  




*Pixid 채널은 디지털 콘텐츠 회사 <세미콜론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채널로, 화제의 인물 인터뷰, 세대차이 실험 등 신선한 영상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참고로 <세미콜론 스튜디오>는 네이버의 웹드라마 플랫폼으로 유명한 '플레이리스트' 산하 콘텐츠 제작사로 출발, '19년 8월 물적분할 후 영화, 비디오물 및 프로그램 배급업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콘텐츠는 *총 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50대의 카톡 패턴을 파악하여 연기했던 20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 처절하게 발각된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발각된 이유에 신조어는 없었다. 사소한 이모티콘이나 기호, 프사나 닉네임 등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왔다고 한다.

*50대 카톡방에서 숨은 20대 찾기 https://youtu.be/ONr81d7mbtE 
  중2 대화방에서 숨은 고3 찾기 https://youtu.be/67HGQ_qzJ5c 
  20대 카톡방에서 숨은 30대 찾기 https://youtu.be/GH--UqTuN4s


물결과 눈웃음은 20대가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레거시의 절정인 카카오 기본 이모티콘과 신조어가 어설프게 만나면 들키게 된다.
중학생 세계에서는 커플을 쉽게 티내지 않는다고 한다.



유일한 세대공감, 불안과 번민


각 동년배 사이에 다채로운 균열 사이에서도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의도적인 질문에서 나온 답이긴 하지만, 바로 불안과 번민이다.  

관대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성공에 대한 소망이 있는 20대
여유롭지 못한 일상이 지치는 50대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제가 하고 있는 것을 제 욕심대로 할 수 없으니까 그게 제일 고민이예요.
상당히 불안하고, 대학교 과를 무얼해야 하나, 나는 뭘 좋아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30대는 뭔가 고비를 거쳤을거다. 30대를 너무 먼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직도 불안해요 30대.


우리 시기(중2)가 사춘기가 올 시기기도 하구.
내가 나를 조금 싫어해서 드는 고민도 많구.
왜 나는 애들보다 못하지? 나는 나름 열심히 했는데.


언어라는 색깔은 달라도 그것이 새겨지는 인생의 패턴은 결국 비슷하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일어나는 주변과의 비교,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생존에 대한 걱정.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게 떠밀려 가는 기분이 드는데, 남들처럼 어딘가에 정착하고는 싶어 끊임없이 노를 젓는다. 그 파도에 현재는 없다.




불안할수록 나 자신을 더 지켜야 한다.



*김영하 작가는 이런 시대일수록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빛의 제국>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작가. 대중들에게는 tvn <알쓸신잡>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쌓았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입학하고 ROTC에 지원, 임관을 곧 앞두고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내렸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개인적인 간절함보다 당시의 경제성장률이었다.


대학시절의 경제성장률은 10~15%, 지금의 4~5배였어요.
굉장한 낙관주의가 있었어요.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저래도 먹고살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도 직장에 있으셨고, 신도시 아파트 분양도 기다리고 있었죠.
앞으로 나아질 날만 있었으니까,
저는 (일반적인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작가가 된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죠.



출처 : 이데일리 (2018), 2019년도는 2.0%, 2020년은 -1.0%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층이었다면, 학자금 대출이 있다면?
졸업을 하자마자 그걸 갚아야 되고.
저희 아버지는 쉬고 계시고, 모든 집이 담보 대출에 묶여있다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는 없죠.
지금 같은 시대에 마음을 따라 결단을 내리는 건 어려워요.

지금은 기대 감소의 시대죠. 기대를 줄여야 되는 시대입니다.
길고 지루한 저성장의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질 겁니다.
좋아질 것 같은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예전보다 엄혹한 시대를 겪게 될 것이 분명한데요.

이런 시대에는 자기 내면을 지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회사에서도 영혼, 자존심 다 내놓으라고 하잖아요.
요즘은 집도 없잖아요. 자기 것을 가지기가 점점 힘든 시대예요.



낙관이 사라진 빈자리엔 불안이 자리 잡는다. 사유재산이 허락된 자본주의에서 자신의 것을 쉽게 가질 수 없다는 박탈감. 요즘은 <벼락 거지>라는 말도 있다. 월급을 벌어도 물가상승률에 비해 오르지 않는다거나, 가만히 통장에 넣어두면 오히려 돈을 잃게 되는 구조. 그러다 옆에서 자산을 배로 증식한 남들에 비해 거지가 돼버린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가치가 낮아지는 화폐를 더 이상 유의미한 사유재산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산을 쫓아다닌다. 이 문이 더 좁아질수록 많은 이들의 시간과 에너지는 문을 열기 위한 노력에 집중된다. 어느새 각자 스스로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문을 향해 더 빨리 달리려는 양 옆의 레이서들.  



작가는 이럴수록 자신의 내면을 지키라고 말한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영혼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내가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이냐?'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럴 때 내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내가 책에서 읽은 것들, 내가 느낀 것들은
자기 안에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남과 똑같이 생각하고, 남과 똑같은 것을 원하고,
남과 똑같은 것을 행하는 데에서는 내면이 생기지 않아요.

남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것을 가지는 건데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많이 느끼는 것이죠. 많이 느끼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가는 삶이죠.
자기가 느낀 것은 남이 가져갈 수 없습니다.


나 역시 불안이라는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첫 사회생활을 했던 2016년부터 연봉 상승에 초점을 두고 회사생활을 했다. 요즘은 매일 아침 재테크 팟캐스트를 듣고, 청약 홈과 주식앱을 번갈아가며 방문한다. 심지어 원활한 자산증식을 위해 인륜지대사를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자유다. 하고 싶은 일을 돈이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인간답게 사는 일을 돈이 가로막지 않기 위해.


"돈은 오히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들의 1순위는 돈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작가는 내 의문에 보기 좋게 스크라이크를 던진다.


성공의 기준은 기존에 하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10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100개의 기준이 있게 되지 않을까?

어차피 저성장 시대라 모두 잘 안되니까!


여러분은 이 스트라이크를 맞고 기분이 어땠는가? 나는 이 의견으로 인해 100% 삶의 방향성을 틀기는 어려울 듯하다. 내일도 팟캐스트를 들을 것이고, 주식앱을 휘젓고 재테크 유튜브를 자장가 삼아 잘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조금은 도망칠 구석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자유와 돈’이 주객전도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을 내려두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는 일이 자유가 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작가가 말한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사실 최근 관심 있는 주제이긴 했다. 나도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싶기는 했나 보다.   



-참고한 콘텐츠-

힐링캠프 김영하편 (161회)  <SBS>

50대 카톡방에서 숨은 20대 찾기 <Pixid>

중2 대화방에서 숨은 고3 찾기 <Pixid>

20대 카톡방에서 숨은 30대 찾기 <Pix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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