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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플 May 12. 2021

우리 엄마 말은 다 맞는 말일까?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이 가끔은 후회될 때

고향친구는 25살에 결혼을 앞둔 남자와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졌다. 최초로 장기간 관계를 이어온 연인이었고, 가정을 이루기에 안정감도 갖춘 사람이었다. 친구는 부모님에게 둘도 없는 착한 딸이었다. 친구의 부모님 역시 참 정겹고 따뜻한 분들 이셨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머나먼 갈등은 서로에게 깊은 생채기를 그려냈다. 나는 그 앞에서 어설픈 위로 밖에 건네줄 게 없었다.


"엄마 말 들어서 나쁠거 없어. 사윗감 고르는데는 다 이유가 있대더라."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누가 있었나요?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엄마의 한 마디를 표지판으로 삼곤 했다. 사람 중심 다큐멘터리와 소설에 빠진 고3이었지만 "먹고 살 걱정 없다."는 엄마의 한 마디에 광고과를 진학했다. 집을 구하는 일도, 그 동네를 선택하는 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방황에도 매번 엄마가 있었다.  


출처 : 핀터레스트 <Inyu> 계정


엄마에게 인생은 항상 조심하고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하는  다해야 결국 남들만큼   있다 말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주변이 알면 기뻐했고, 때로는 회사로 인해 하루하루가 망가져도 사회란 그저 불공평한 것이니 버티고  버텨야 한다고 타일렀다. 그것이 60년대생 부모의 사랑이었다. 그것만이 거센 풍파로부터  사람의 인생을 지킬 방법이라고 믿었고 노하우를 고이고이 물려주고 싶어했다.


지침은 때때로 맞아 떨어졌다. 지금 나는 그녀가 말한 광고라는 수단으로 돈을 벌고 있다. 팔지 말라는 주식으로 돈을 번적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 애써 번 돈을 다시 자아를 찾는 일에 쓰고 있다는 거다.




선택의 순간마다 엄마아빠가 떠오르는 이유


DNA의 기본적인 정의는 유전자의 조각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나는  매번 엄마의 선택을 표지판으로 삼곤 했을까? 인생을 먼저 겪었다는 연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기질과 성향을  알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엄마의 조각이 나의 일부를 이룬다고 생각했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학습하지 않아도 공짜로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DNA 기대어 피운 게으름은 현재의 나에게 가끔 후회를 선물한다.


지금 겪고 있는 애로사항들이 문제가 아니다. 살면서 두더지 게임처럼 잊을만 하면 다시  튀어나오는게 시련이고 아픔이다.


후회의 근원은 당시 스스로 나에게 집중하고 열실히 고민하여 내린 결론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발적인 선택은 반성을   있지만 수동적인 선택은 때론 억울함만이 남는다. 선택의 결과가 좋으면 운이 좋은  되고, 좋지 않으면 부모님을 잘못 만나 운이 나쁜게 되기 때문이다. 삶의 효능감도 느끼기 힘들다. 스스로 내린 결정을 어떻게 개선할  있을지 알기 어려우니 극복의 기회도 한정되어 있다.


문득 어제 읽은 이원흥 작가의 <신입사원이 된 딸에게>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위안부 이슈가 뜨거웠을 때 우리나라 외교의 고위 관리가 할머니들을 찾아갔었어.
그야말로 외교적 제스처와 미소로 다가오는 그에게 위안부 할머니가 뭐라고 첫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

"당신 누구세요?"

당신 누구냐, 뭐하는 사람이냐, 스스로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사느냐.

딸아, 나의 말을 기억 해주렴.
하는 일이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해야 할 말이 뭔지도 정확히 아는 법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말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이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잘 알고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자기 일의 의미 규정이
태도를 만들고 성장의 방향성을 만들고
어쩌면 행복의 디테일들을 만드는 시작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의 우편배달이
삼만 명의 연인을 죽고 살리는 일이라는
생택쥐페리의 저 주체적인 자부심을 보렴.

이번 달 이십몇일에 들어올 월급만을 위해서라면
과연 석양빛을 헤치고 저렇게 뜨겁게 달려갈 수, 아니 날아갈 수 있을까?

이원흥 <신입사원이 된 딸에게>, 2021


시간은 단호하게 흘렀고 친구는 여전히  곁에 있다. 나는 요즘도 가끔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고향에 방문한다. 단촐하게 모듬곱창 2인분, 소주 1병을 평상에 올린  얇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다.


친구는 엄마의 결정으로 인해 아픈 이별을 겪었지만 이를 전화위복으로 지금의 동반자와 만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야, 그 때 생각하면 울 엄마 말이 맞았던 거 같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쓰게 소주를 들이켰다.
불완전한 청춘은 끊임없이 내 안의 DNA와 싸워야 한다.

친구는 강렬한 격투 끝에 항복을 선언했고 나는 요즘 신랄하게 주먹을 내밀고 있다.


결투의 결과는 결국 각자의 행복에게 달려있는 거겠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참고한 글-

신입사원이 된 딸에게 <이원흥>,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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