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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생이 Feb 21. 2022

최고의 작사가들이 전하는 카피라이팅 노하우 5가지

카피를 쓰는 게 어려운 초보 마케터와 UX Writer에게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가장 자신있게 쓴 카피(Copy)가 무엇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개인 채널의 포스팅 제목을 둘러댔고, 귀가를 하자마자 포트폴리오를 뒤지며 머리도 쥐어뜯었다. 많지는 않지만 나름 끄적인 카피들이 존재했거늘, 왜 당시에는 머리가 하얘졌을까.


그러나 아쉬운 이유는 단지 '기억이 안났다'는 바보같음이 아니었다. IT 종사자이자 마케터로서 라이팅(Writing)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없었고, 그 카피들을 책임감에 '열심히'는 썼지만 '나름' 적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카피를 어떤 마음으로 적어야 할까?




업계에서는 카피라이팅 이라는 단어를 더러 쓰지만, 보통 사회에서는 카피라이터(Copywriter)라는 명사가 통용된다.

카피라이터(Copywriter)

카피라이터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감수성으로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가 일반인들에게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광고 문구나 문안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한다. 상품의 효능, 기업 이미지, 대중의 생활 방식 등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촉진을 위한 아이디어와 원고를 작성한다. 광고전략에 따라 광고문안, 즉 표제어(head copy), 부제어(sub-head copy), 본문(body copy), 슬로건(slogan) 등을 작성한다.  

아이디어를 명확한 논리와 풍부한 감성으로 문장화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 네이버 커리어넷 발췌 -


잘 보면 카피라이팅은 마치 노래 작사와 닮았다.

전자는 상품에 이야기를 입히고, 후자는 노래에 이야기를 입힌다는 차이가 있지만


- 사람들에게 작게는 인상, 크게는 감동을 주어야 하고

- 적절한 운율과 발음으로 깔끔하게 문장화 해야하며

- 예술과 같이 고유함(Orginality)과 희소성(scarcity)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 서로 비슷하다.  


필자는 훌륭한 카피라이팅 사례 이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작사가들의 노하우를 찾아보았다. 우선 카피가사 모두 고작 몇 글자로 '생면부지 남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데, 카피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 때로는 '남의 마음'보다 '나의 자랑'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 반면 작사는 마음을 얻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음을 움직이자'는 목표가 더 간절한 영역이지 않나싶다.


매일 어떤 제목을 써야 할 지 고민하는 브런치 작가, SNS에서 소비자와 소통하는 콘텐츠 마케터, 전환율을 높여야 하는 퍼포먼스 마케터, 유저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UX Writer나 CRM 마케터까지- 더 나은 문장을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카피라이팅과 UX Writing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브랜드 대신 유저와의 접점에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문구를 쓴다'는 공통점을 전제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참고 부탁 드립니다.






최고의 작사가들이 전하는 카피라이팅 노하우 5가지


1. 사진이나 영상과 같이 장면을 정확하게 떠올리도록 써라   

2. 초안이 가사가 될 수 없다. 고쳐라, 또 고쳐라. 좋은 가사가 무엇인지 경험으로 체득하자. 

3. 가사를 부르는 사람의 페르소나에 맞추어, 단어 하나하나를 전략적으로 디자인하라.
4. 좋은 가사는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5. 사연과 단어를 열심히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써라.







1. 사진이나 영상과 같이 장면을 정확하게 떠올리도록 써라   


박주연 작사가는, 우리나라에서 작곡가보다 *저작권료를 더 많이 받는 작사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사는 노래의 도입부 1-2줄로 상황설명이 끝난다.


* 저작권협회 등록곡 329곡 & 김이나 작사가 인터뷰 발췌 -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 <2021.01.10>


이미지 출처 : 인사이트 및 미디어스


<오래전 그날>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뒤 스무살에 만난 첫사랑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를 기억할지 추억하는 가사다. 박주연 작사가는 10여년 전 사랑의 시작을 '스무살'이나 '첫사랑'으로 설명하지 않고 '교복을 벗고 만났다' 라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가장 촌스러워 지는 때가, 이 상황을 말 또는 글로 설명하는 순간이예요.
박주연 작사가의 가사는 글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영상이나 상황을 떠오르는 느낌을 갖게 해줘요.

- 작사가 김이나 & 작곡가 김형석 인터뷰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 2021.01.10>  -


어떤 경우에는 가슴에 사진처럼 찍히는 순간들이 있다.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처럼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 박주연 작사가 -


그녀는 본인이 성격이 급한 편이라며, 모와 도를 빼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친구들하고 이야기 할 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가장 먼저 얘기한다고. 가사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내가 뭐 때문에 가장 마음이 움직였지? .. 이 이야기 부터 먼저 가장 쓰고 싶어져요."




*K팝 아이돌의 노래를 컨셉츄얼하고 감각있게 만드는 서지음 작사가 역시 가사를 쓸 때 영상을 많이 떠올린다고 한다. 그녀의 팬들도 "서지음씨의 가사를 들으면 눈앞에 그림이 떠오른다"고 한다.


*서지음 작사가의 대표적인 노래로 EXO의 으르렁, 오마이걸의 살짝 설렜어 등이 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걸 앨범 자켓 & 민다


오마이걸의 <BUNGEE>라는 노래에서는 바다위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한다. <BUNGEE>는 바다를 상대방의 마음에 빗대어, 그 마음에 번지하듯이 뛰어들어가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다. 보통 번지점프를 하면 눈 앞에 보이는 바다가 뒷 편의 하늘을 반사해서 보여주곤 한다. "또 다시 한번 번지, 하늘은 바다가 돼" 이렇게 바다와 하늘이 뒤바뀌는 장면을 가사에 넣음으로써, 생생한 번지점프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지금은 유재석을 영입한 안테나의 수장이지만 한 때 90년대를 풍미했던 싱어송라이터 유희열 역시 "모든 음악은 하나의 순간"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은 모두 하나의 순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순간이 없으면 음악을 만들지 못해요. 저는 숲이 있다면, 드론처럼 전체를 조망하는 대단한 사람은 안됩니다. 대신 어떤 꽃이 폈는지, 어느 나무가 있는지, 거기에 감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나무나 새를 보는 일로 벌어먹는 사람이예요. 제 곡 중에 다수가 그렇습니다.

- 유희열 인터뷰 <현대카드 DIVE, 2020> -


이미지 출처 : tVN <도깨비>, <슬기로운 의사생활>


<거짓말 같은 시간> 전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순간에서 나왔습니다. 전여자친구가 숙명여대를 다녔었고, 저는 꽃다발을 들고 전여자친구를 찾아갔습니다. 날이 너무 좋았습니다. 햇살이 바삭거리는 느낌일 정도로 너무 좋아서 가사를 썼어요. 스스로 바보 같은 장면이 떠올라서 잊지 않겠다며  노래 입니다.

<좋은 사람> 친한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친구가 삼수를 해서 홍대 미대에 들어갔는데, 당시 미대생들은 작업실을 공유했었어요. 그 때 친구가  작업실의 여학생을 너무 좋아하게 된거죠. 저도 친구가  되게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여학생에게 남자친구가 이미 있어  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연예인이라고 생일파티도 열어서 여학생을 초대한적이 있었어요. 여학생이 잔뜩 술에 취했는데, 남자친구가 데리러  겁니다. 그날 , 속상해하는 친구를 데리고 노래방에 갔습니다. 친구가 술을 잔뜩 먹고 18 '인형의 ' 불렀어요."이거다,  프레임을 보면서 노래에 담아야겠다." 생각했죠.

- 유희열 인터뷰 <현대카드 DIVE, 2020> -


유희열 작사가는 주변에 빚진게 많다고 말한다. 다 이런 순간들로 자신의 음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순간에 민감하고, 한 장면의 디테일함이 전달되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디테일이 촘촘하게 이루어져 있는 작품은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어떤 순간 비슷한 장면을 맞딱드리게 되었을때, 생각이 나게된다.
무엇을 만드는 분이시라면 디테일에 관심을 많이 가져보시라.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 질거라고 생각한다.
1년 365일 중 350일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디테일한 순간들로 인생을 버티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희열 -   




[카피에 대입해보면] 오감이 느껴지는 카피가 있나요?


한 줄로 상황과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카피가 있는가?  배너 하나로 즉각적인 세일즈를 유도해야 할 경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카피는 적합한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거나, 촉각이나 후각이 중요한 제품의 경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카피는 일본 카메라 제품 <캐논>의 카피, "아버지가 되면, 사진은 훌륭해진다." 이다. 단 한문장으로 제품을 누가, 어떤 감정으로 쓰고 있는지 생생히 느껴진다.

이미지 출처 : 프렌디클럽


채널톡의 비즈인사이트에서 광고 카피를 모아놓은 요긴한 포스팅을 놓고 간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시길!

<광고 카피 222개 모음집, 채널톡 비즈인사이트>






2. 초안이 가사가 될 수 없다. 고쳐라, 또 고쳐라.

    좋은 가사가 무엇인지 경험으로 체득하자. 


좋은 카피의 비법을 한 문장으로 말하라면, 도통 쉽지 않다. 글은 정성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엔 별로이고, 누구의 눈엔 깊이 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작사가들은 몇십개 되지도 않는 문장을 깎고, 다듬고, 다시 주무른다. 막연했던 '좋은 가사'에 대한 법칙들을 경험을 통해 정량적으로 쌓아나간다.


이미지 출처 : 아이유의 집콕시그널 <아이유x김이나 작사가들의 토크>


작사라는 부문이 조금 쉽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편하게 돈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중에는 작사가 더 힘들다는 분들도 있다.
"정성과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 일이지"

(중략)

노래를 직접 누르지 않는 전문 작사가들은
가수를 통해 좋은 소리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간다.   

- 아이유 & 김이나 인터뷰 <아이유의 집콕시그널> -


이미지 출처 : JTBC 신비한 레코드샵
작사를 입문하시는 분들께 조언하자면, "다 내라."
학원을 다니다 보면 큰 기획사, 레이블의 곡들만 쓰시는 분들이 있다.

가리지 말고 다 내는 걸 권장한다.
가사를 쓰는 게 삶의 루틴처럼 자리가 잡혀야, 이 일을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 작사가 조윤경 인터뷰 <JTBC 신비한 레코드샵 8회> -
이미지 출처 :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작곡가 분들도 경험이 많아서, 들으면 알아요. 이건 아니다. 그래서 저도 곡 하나로 3-4번도 쓰고 그랬어요. 마음에 안든다고 그래서. 그럼 저는 '난 수정 전문이야' 라며 써주고, 다시 써주고..

전문 작사가로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수정을 요구하거나, 다시 쓰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됐어요. 생각의 깊이 이런게 아니라 테크닉적으로. 아, 이렇게 해야 노래에 잘 맞는구나.  

- 박주연 인터뷰 <우리가요 ARCHIVE-K> -




[카피에 대입해보면] 카피도 그로스 해킹하라


정성적일수록 정량화하자

TV와 같은 ATL의 파워가 약해지고 고객 단위가 매스(Mass)에서 마이크로(Micro)로 바뀌면서, 마케팅 역시 빠르게 실험해보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그로스 해킹> 방식이 주효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멋진 카피로 파급력 있는 대중광고를 하면 제품이 팔리는 세상이었지만 TV 시청시간과 광고 집중력이 낮아지고 있는 지금, 비용 대비 효율적인 방법인지는 의문이 든다. "정말 이 카피를 보고 고객이 마음을 움직일까?" 만약 여러분이 한 회사의 대표라면, 실무자들의 추측과 몇백명 수준의 사전조사로 몇백만명에게 던질 카피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이 적은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어떤 카피가 더 반응이 좋은지> 테스트 해볼 수 있다. 작사가들이 스트리밍 청취자와 작곡가들의 피드백을 받는다면, 작가나 마케터들은 소셜 미디어 유저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대형 미디어 사이트 업워디는 기사의 제목을 선정하기 위해 최소한 25개의 후보를 기획한다고 한다. 이 중 우수한 헤드라인 4-5개를 선택하고 페이스북, 비틀리를 활용하여 제한시간안에 유저들의 클릭수와 점유율을 가장 많이 확보한 제목을 골라낸다고 한다. 이러한 실험은 기사의 입소문을 강화하면서 가장 매력적인 단어/문구를 알려준다.

"표제(헤드라인)에 따라 기사를 읽는 사람이 1,000명에서 100만명까지 차이가 납니다."

- 엘리 프레이저 Eli Pariser <업워디 설립자> -




3. 가사를 부르는 사람의 페르소나에 맞춰서,

    단어 하나하나를 전략적으로 디자인하라.


작사가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김이나 작사가는 가사의 영감을 본인이 아닌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서 찾는다고 한다. 이별 노래를 짓는다고 가정하면 -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 단어 선택부터,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가 내 안에서 끄집어 내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김이나 작사가 -



그녀가 작사한 노래 중 가장 아끼는 한 구절은, 국힙원탑 아이유의 <분홍신>에 있다. 당시 아이유가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에 있었기에, "넌 이런 애야. 뭘 해도 되는 애야" 라며 응원차 쓴 가사였다고 한다. 김이나 작사가는 말의 힘을 믿는다고 한다. 그 말을 자꾸 하다보면 자기암시가 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아이유 공식 앨범 자켓


가사는 들려야 되는 말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읽으려고 보는 글이 아니라, 들으려고 보는 글이다.

글로 봤을 때 명쾌하고 좋은 일이지만 막상 노래에 얹혔을 때  가수의 발음, 호흡, 발성 등 모든 걸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2차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간다. 가수들이 부르기 좋게 깎는 작업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귀에 꽂히는 발음, 라인, 곡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가는 -- 즉, 재미와 메시지를 함께 가져가는게 어렵다.


아이유가 직접 작사한 <밤편지>를 보자.

"지금 우리 함께 있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요" 가사의 '아 얼마나'를
'참 얼마나', '더 얼마나'로 썼을 때 상상하면 느낌이 다르다.

발음에서도 감정이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유의 가사는 부를 사람이 가사를 써서 그녀만의 감정을 잘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아이유 & 김이나 인터뷰 <아이유의 집콕시그널> -




박주연 작사가가 쓴 명곡, <숙녀에게>의 원곡자 변진섭은 처음 노래를 받고 다소 어색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변진섭, 이승철 앨범 자켓


늘 해왔던 패턴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을 가사에 넣었다.
'숙녀에게'...
제목부터 어색했다. 가사 중에 유독 낯설었던 단어가 '허면'.

"허면 그대 잠든밤 꿈속으로 찾아가 살며시 얘기 듣고 올래요"
이 '허면'이 옛날 시조에 나오는 것 같았다."


- 변진섭 인터뷰 <우리가요 ARCHIVE-K> -


사실 이 '허면'도 작사가 입장에서 허투루 쓴 게 아니라고.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성격을 고려하여 단어 하나하나를 디자인한다.


가수랑 얘기를 해보면 
 사람은 어떤 발음을 하면 예쁘겠다.
 사람은 어떤 발음에 강점이 있구나.

고음에서 '' 편한 사람인지 '' 편한 사람인지..그게  달라요.

변진섭씨가 발음해서 예쁜 가사가 있고, 이승철 씨가 발음하면 멋있는 가사가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변진섭씨 같은 경우에는, 스윗하고 예쁜 곡을 쓴 반면
이승철씨 같은 경우는 터프해도 되고, 진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사에 '핏빛울음을 삼킨 저노을을' 이라는 단어를 넣었죠.


- 박주연 인터뷰 <우리가요 ARCHIVE-K> -


<이 사람은 이런 발음을 해도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어를
이 곡에 내가 처음으로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 박주연 작사가 -  




[카피에 대입해보면] 카피는 마케터가 아닌 기업이 말하는 것


약 4-5년 전부터 서비스 기획, CRM 마케팅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UX Writing 역시 IT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특정 행동을 이끌기 위한 신청/가입/구매 UX writing, APP push 등에서 "유저 친화적인 톤앤매너"를 많이들 사용하고 있다. 유저의 이름을 넣는다던지, 오늘 날씨를 고려한다던지,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던지...

"OOO님 고생했어요! OOO님을 위해 준비했어요. OOO님 시작해볼까요?"

그러나 가끔 모든 회원가입과 푸쉬가 <같은 사람>이 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는 뉘앙스가 트렌드가 되다보니, 모든 앱들이 비슷한 말투를 쓰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필자가 생각할 때 메시지를 보내는 기업을 정말 '사람'인 냥, 캐릭터(페르소나)화 하여 유저에게 접근하는 브랜드는 아직 배달의 민족이 유일무이 하다고 본다.


출처 : Bigpicture님 브런치 포스팅


위의 문구들이 독특하거나 인상 깊어서가 아니다. "배민이니까 이렇게 말하지" 라는 느낌이 와닿는 카피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처음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지 생각해보자. 어렵다면, 이야기를 마치고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 지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더라."

"그 사람은 좀 까탈스럽지만 쿨해보이더라."


의외로 <그 사람이 무엇을 말했는지> 보다 <그 사람의 말투와 표정>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 이름 석 자가 아닌 우리 브랜드라는 가면을 쓰고 말하는데, 막상 그 브랜드는 유저에게 어떤 사람처럼 느껴질까? 그리고 유저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바라보자. 착하지만 무색무취의 서먹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 가끔 얄미운 행동을 하지만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





4. 좋은 가사는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3번과 모순되지만, 때로 작사가들은 본인의 가사는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1~3번을 생각하며 가사를 만들어도, 결국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작사가의 경험이 묻어있을 수 밖에 없다.


이미지 출처 : JTBC 신비한 레코드샵
작사는 말을 거는 것이다. 남을 설득시키는 행위다.
생면부지 일면식 없는 남에게 노래로 설득하려면 나를 오롯이 다 드러내야 한다.

나를 내려놓고, 다 벗어라.

- 작사가 황현 인터뷰 <JTBC 신비한 레코드샵 8회>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월간 유종신


가사가 왜 중요하냐고 생각하냐면, 생각이 담기는 거거든요.
곡은 감성, 음악적 능력의 영역이지만 가사는 생각이예요.
감각보다 중요한 건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뮤지션이야.
자 팀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아티스트야.
이런 생각들이 아티스트를 오래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좋은 가사란? 작사가는 특정 이유로 썼지만,
듣는 사람이 자기만의 이유로, 자기만의 이야기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런 가사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이해가는 가사.

작사가는 상당히 음악적인 일입니다.
작사가는 글 쓰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뮤지션에 훨씬 더 가까운 사람.
오히려 글보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 윤종신 인터뷰 <유튜브 월간 유종신 채널> -





[카피에 대입해보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카피라이터


국내에도 작가 혹은 아티스트화 된 카피라이터 분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카피는 제품(브랜드)의 카피 그 자체로서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 그 카피들을 만든 가치관 혹은 재료들이 또 다른 영감을 주는 경우, 이 역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적인 카피로 많은 사랑을 받고 다수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TBWA 박웅현 대표, 선릉역 근처에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제일기획 최인아 전 부사장, 채널예스에 이원흥의 카피라이터와 문장을 기고하고 있는 이원흥 작가 등 삶의 전반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로 인사이트를 주고 계신 분들이 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좋은습관 연구소



카피를 자주 쓴다면 내가 왜 이 카피를 썼는지, 이 문장과 단어를 선택했는지 곱씹어 보자. 그리고 가볍게 메모하고 공유하자. 그 메모들이 모여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고, 스스로 브랜딩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지 모른다.





5. 사연과 단어를 열심히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써라.


"내가 불행해질수록 일을 더 잘하는게 참 아이러니 했어." 주변에 심리상담가로 일하는 지인이 한 말이다. 삶의 희로애락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작사 역시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이 많을수록, 알고 있는 언어의 양이 풍부할 수록 이야기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 노래는 이게 좋겠다. 생각했으면, 웬만한 글감은 일기장에 있습니다.
일기장을 보면 그 때 그 마음이 확 다가옵니다.
그 마음을 발전시켜서 여기서 따오고, 저기서 따와요.

- 박주연 작사가 -



이미지 출처 : unsplash
어렸을  연남동에 살았어요.  주택이었잖아요. 초등학교 5학년 부터 30년을  집이 있어요.

 집에서  꺾으면, 외등이 있었어요. 아카시아가  피어있고.
어렸을 때니까 ',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여기까지  데려다 주겠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걸 가사에   써먹었었죠.

- '사랑일뿐야' 비하인드 인터뷰   <우리가요 ARCHIVE-K> -


박주연 작사가는 일기를 통해 글감을 얻는다고 한다. 인터넷 서치보다 일기가 더 효과적인 것은, 글감을 꺼낸 당시의 감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어 작사의 재료가 더 풍부해지는 데 있다. 더 나아가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단순히 하나의 단어로 단조롭게 얘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작곡가들이 양보못하는 멜로디 숫자가 있잖아요. 이건 죽었다 깨어나도 세글자여야해.
그런 멜로디 숫자까지 고려해서 비슷한 단어를 분류해두기도 했어요.

"버릇? 릇이 이라는 단어가 노래랑 안맞는데?" 하면
'버릇'과 비슷한 말을 동시에 20개 쯤 이야기 했었죠.

예를 들면 "갑자기"라면, 비슷한 말들을 준비해둬요.
문득, 불현듯, 느닷없이 이렇게 분류해서 좀 준비해두죠

- '이별의 그늘' 비하인드 인터뷰   <우리가요 ARCHIVE-K> -


앞서 소개한 서지음 작사가는 이과와 문과의 차이를 '같다'를 의미하는 부등호(=)를 통해 설명한다. 이과의 업은 1+1=2와 같이 <서로 같음>을 증명하는 일이지만, 문과의 업은 A=B와 같이 <서로 다른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여 같게 만드는 일이라고.



이미지 출처 : 오마이걸 MV & unsplash


예를 들어 이별은 조명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은 바람개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마이걸의 Windy day라는 노래를 작사할 때,
"내 마음에 수천개의 바람개비"라고 써놓은 메모를 참고했어요.

멜로디를 들으며 맑은 날씨의 언덕에, 바람개비가 많이 꽂혀있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바람개비는 내 마음이라고 가정하고, 상대방을 떠올리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이야기로 써내려갔어요.  

- 서지음 인터뷰 <tVN 유퀴즈온더블럭> -



이별 = 조명에 대한 이과의 반응 -- <이미지 출처 : tVN 유퀴즈온더블럭 71화>



[카피에 대입해보면] 필요할 때 꺼내먹을 수 있는 단어상자를 만들자.


혹자는 창의성과 창조를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창조는 신이 인간을 만들듯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일이지만, 창의성은 기존에 합쳐지지 않은 A와 B를 조합하는 일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에 100% 순수한 창조행위가 있었을까?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우리가 가진 재료를 색다른 관점에서 조합 또는 분리하여 새로운 혁신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새로운 만남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작사와 카피 역시 마찬가지다. 경험과 단어가 많을 수록 그들을 색다르게 매칭할 기회가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저자로 유명한 <이승희>님이 언급하신 '좋은 제목을 뽑는 훈련'이다. (2번 - '카피도 그로스 해킹하라' 와도 어느정도 연관된 사례다.)


카피라이터 출신의 다른 선임은 본인이 광고 회사에서 받은 훈련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이를테면 '세모와 네모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각각 100개씩 써보기.'
그러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모양이나 꼭짓점 개수를 언급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쓸 게 없어서,
새벽, 아침 같은 전혀 상관없는 것까지도 비유하게 된대요.
이렇게 시간을 들여 다양한 설명을 쓰는 연습을 하면서 점점 감을 익히죠.

'이 카피로 썼을 때 반응이 좋을 것이다.'라는 가설일 뿐이지 정답은 없더라고요.
가설을 여러 번 검증하면서 조금씩 패턴을 찾는 거죠.
A/B 테스트를 통해 실제로 반응이 좋은 콘텐츠의 공통점을 거꾸로 분석하면서,
어떤 카피나 이미지의 효과가 좋은지 엿볼 수 있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SNS에서 반응이 좋았던 카피도
앱의 배너 카피로 쓸 때는 별 반응이 없었다는 사실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앱에서는 '몇천 원 할인'처럼 숫자로 적힌 실질적인 혜택의 클릭률이 훨씬 높더군요.
그래서 앱과 SNS마다 전략을 달리 했어요.

- 이승희님 인터뷰 <글쓰기의 쓸모, 손현> -




<최고의 작사가들이 전하는 카피라이팅 노하우 5가지> 요약


1. 사진이나 영상과 같이 장면을 정확하게 떠올리도록 써라.

[카피에 대입해보면]

한 문장만으로, 오감이 느껴지는 카피를 만들어보자.  

2. 초안이 가사가 될 수 없다. 고쳐라, 또 고쳐라. 좋은 가사가 무엇인지 경험으로 체득하자. 

[카피에 대입해보면]

카피도 그로스 해킹하자. 실험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는 카피를 찾아내자.


3. 가사를 부르는 사람의 페르소나에 맞추어, 단어 하나하나를 전략적으로 디자인하라.

[카피에 대입해보면]

카피는 마케터가 아닌 기업이 말하는 것임을 인지하자.

마냥 친절한 카피보다 캐릭터있는 카피가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다.


4. 좋은 가사는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카피에 대입해보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카피라이터가 되어보자.

카피를 쓴 이유와 배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해보자.


5. 사연과 단어를 열심히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써라.
[카피에 대입해보면] 필요할 때 꺼내먹을 수 있는 단어상자를 만들자.

사용할 수 있는 문장, 단어의 풀을 넓히고 새롭게 조합하는 훈련을 하자.




* [카피에 대입해보면] 을 제외한 주요 내용은 아래 콘텐츠를 토대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아이유의 집콕시그널2] 아이유x김이나 작사가들의 토크 <EDAM 엔터테인먼트, 2020>

순간을 붙잡는 작사/작곡법 - 유희열 [OVER THE RECORD] <현대카드 DIVE, 2020>

우리가요 ARCHIVE-K 2화 - 한국형 발라드의 계보편 <SBS, 2021>  

배달가요-신비한 레코드샵(recordshop) 8화 <JTBC, 2021>

김이나 작사가 - 노랫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스페이스 오디티, 2017>

작사장인! 윤종신만의 작사법 대공개!! (Feat.와인) [탈곡기 ep09] <월간 윤종신, 2019>

유 퀴즈 온더 블럭 71화 - 문과 vs 이과 <tVN, 2020>


* 그 외 이미지 및 콘텐츠 출처

인사이트 기사 <2020>

미디어스 기사 <2022>

더 민다 상품 페이지

Case study #01 배달의 민족 <Bigpicture님 브런치, 2019>  
글쓰기의 쓸모 <손현, 2021>

모두가 다 카피라이터고 마케터인 시대 <좋은습관연구소, 2020>
익숙한 언어가 이루는 말의 힘 <더워터멜론님 브런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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