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서 내가 필요 없는 것 처럼 느껴질 때
2-3월 인사평가 시즌을 겪고 나면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세상에 영원한 1등은 없다. 회사와 조직, 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도치 않게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와 연차가 무색하게 한없이 작아질 때도 있고, 내가 한 노력과 역량을 몰라주지 않아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필요성에 대해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돈, 커리어, 네트워크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반대로 상대방 입장에서 '나와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으면 하는 소망' 이기 때문이다.
쏘니의 토트넘 선배인 축구선수 이영표의 인터뷰를 가져와보았다. 그는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헌신을 하라고 조언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했어요. 공을 차면서 제가 발견한 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제 욕심이었어요. 기회가 오면 내가 골을 넣고 싶다! 팬들은 골 넣는 선수를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감독들은 달라요. 감독은 팀에 헌신하는 선수를 좋아해요. 11명이 경기할 때 결정적 역할은 2~3명이면 충분해요.
나머지 8명은 헌신해야죠. 능력자 1~2명이 있는 팀은 한 경기 정도는 이겨요. 그런데 시즌 전체 우승컵을 가져가는 팀은 헌신하는 선수들이 많은 팀이에요. 헌신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절대 못 이겨요. 저는 거기서 오는 기쁨이 크다는 걸 알았어요(웃음)."
"카메라도 관중도 박수도 다 스트라이커가 받지만, 벤치에 오면 공기가 달라요. 감독은 공을 어시스트한 선수에게 달려가 감사를 표해요. 처음엔 그게 안 보였어요. 그런데 어느새 저도 그래요. 전반전 끝나면 헌신한 친구에게 달려가 "너, 정말 열심히 하더라!" 격려가 절로 나와요.
골 넣는 사람은 한두 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그들은 자기 위치에서 결정적 기회를 기다리죠. 그런데 헌신의 역할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헌신의 기회는 모두에게 있다니까요(웃음)."
늘 헌신의 기회를 노리는 선량한 기회주의자. 지금은 손흥민의 토트넘이지만, 한때 이영표의 토트넘이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그는 토트넘의 왼쪽 윙백을 책임졌다. 최근 한 방송 채널에서 영국을 찾아가 11년 전의 이 선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 기억 속의 이영표는 놀라웠다.
"그는 하루종일 뛸 수 있는 선수같았다."
"항상 달리고 공격하는 선수였다."
"믿을만하고 꾸준하며 탄탄한 사람이었다."
"100% 헌신해서 보기에 즐거운 축구를 했다."
"(빙그레 미소 지으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보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실력으로 보면 저는 참 애매했어요. 실력이 부족하면 선택권이 많지 않아서, 저는 ‘열심히'를 선택했어요(웃음). 그런데 그 잘하던 사람들이 중간에 많이 포기를 했어요. 저는 포기를 안 해서 거기까지 갔죠.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하. 능력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게 겸손이에요. 저는 능력이 부족했어요. 제가 다른 친구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없어요. 워낙 능력자들이 많았어요."
"박지성이요.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이 친구가 잘하면서도 헌신적이에요. 같이 뛰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을 다했어요. 참 멋있었어요."
박지성과 이영표가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소속으로 영국 구장에서 싸울 때, 경기중 슬며시 손을 잡은 사진은 유명하다. 이영표가 박지성에게 공을 뺏겨 토트넘이 실점한 직후에 찍힌 사진. "미안해." "괜찮아."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준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그는 박지성처럼 헌신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출처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영표 “축구도 삶도, 나는 이기적으로 헌신을 선택했다"
팀 플레이 혹은 팀 스포츠와 관련된 콘텐츠를 좋아한다. 요즘은 JTBC <뭉쳐야 찬다2>를 자주 보는데, 멤버 중 '안드레' 라는 선수가 공격수를 희망함에도 감독의 지령으로 수비수가 되었고, 아주 가끔, 공격 본능을 발휘하여 골대로 돌진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직접 공을 차본 적이 없는 나는 '누구나 주인공과 같은, 공격수가 되고 싶겠지' 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 이면에는 '공격수가 팀의 승리를 위해 가장 필요하다'는 편견이 깔려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공은 정말 스트라이커만 될 수 있는 걸까?
최근 그 선수가 1골을 막은 것과 다름 없는 슈퍼 세이브를 하고 경기의 MOM(Man of the Match,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사람)에 선정되었다. 승리의 지표를 골의 개수로 본다면, 1골을 넣은 것과 1골을 막은 것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동료들과 감독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