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물애호가의 어린시절

"그렇게 밟히고 밟히다가 결국엔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는거야."

by 하제

어릴 적 나의 아빠는 오토바이 앞에 딸을 태우고 산으로 들로 사냥을 다녔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키우던 개나 닭을 잡아먹는다던지, 산토끼 같은 산짐승을 사냥해서 먹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막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고작 10살 남짓 한 여자아이에게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진이 빠지도록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내 동생이 나처럼 유별나지 않은 것을 보면, 나라는 사람은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구보다 견디기 힘들게끔 태어난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직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 사실은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기껏해야 여섯 살부터 열 살 즈음의 일들인데 나에겐 아주 선명한 기억들이 있다.





날씨가 아주 좋은 가을이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 양평에 있는 산에 올랐다.

마땅한 사냥감이 없자, 아빠는 공기총으로 새를 쏘아 떨어뜨렸다. 작고 예쁜 새였다. 땅에 떨어진 작은 새는 총에 맞은데다가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이미 숨이 멎어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새를 조심스레 주워서 휴지로 감쌌다. 빨간 피가 빠른 속도로 새하얀 휴지를 적셨다.

서럽게 엉엉 우는 나를, 아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빠가 원망스럽고 미웠다.



이 날도 날씨는 좋았다. 가족여행을 가던 길 고속도로에 하얀 강아지가 뛰어든 것이다. 앞차에도 치였고, 우리 차에도 밟혔다. 덜컹! 하는 느낌이, 강아지의 비명소리에 나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서 서럽게 우는 나에게 아빠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렇게 밟히고 밟혀서 나중엔 먼지가 되어서 사라지는 거야."

당장 차에서 내려 강아지를 돕고 싶었지만 내가 할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한 무기력증을 느꼈고 아빠가 악마로 보였다.




살생.

성악설이라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인것이, 나도 어릴땐 곤충이나 물고기를 죽인 기억이 많이 있다.

심지어 그것을 즐겼던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 나보다 약한 생명체에 대한 측은지심은 자라나면서 느끼고 배웠다.


집에는 항상 강아지가 있었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강아지들은 배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엄마에 의해 누군가에게 보내졌다. 여러 마리와 가슴아픈 생이별을 했지만 가장 사랑했던 건 '뽀미' 라는 이름의 황금색 털을 가진 포메라니안 믹스 강아지였다.

대학 졸업 후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소중한 강아지를 엄마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심지어 길에 돌아다니는 유기견을 주워다가 보살피기까지 했다.

직장엔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였는데 내가 눈이 좋은것인지, 고양이 귀신이라도 붙은 것인지 자동차 도로에서 죽거나 부상입은 동물들, 특히 고양이를 정말 많이 보았다. 걔중엔 목숨이 붙어있는고양이들도 많았어서 몇 마리는 살려서 입양을 보냈고 제일 처음 도로에서 구해온 아이는 내 소중한 딸이 되었다. 그리고 몇 마리는 구조 도중에 죽기도 했다. 그 탓에 나는 한동안 운전대를 잡을 때 마다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몇년 후 입양을 가지 못 한 개와 고양이로 우리 집은 동물이 11마리가 되었다. 다행히 엄마아빠는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반대는 커녕 길고양이를 함께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개와 고양이를 돌보며 온 에너지를 쏟던 '비혼 주의자'였던 나는 세월이 흘러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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