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소중한 추억.

악몽같았던 기억과 소중한 기억이 공존하는 그 곳 "양평할머니집"

by 하제

양평 용문산 근처 작은 마을에는 아빠 친구의 처갓집이 있다.

우리 할머니 집도 아니고, 관계를 설명하기 복잡한 이곳에 나는 어린시절 꽤 자주 보내졌다.

(심지어 그 아저씨 나중에 이혼을 했드랬다.)


어쨋거나 양평 할머니집은 내 어린 시절의 보물같은 장소이다.
이곳 개울에서 처음 수영을 배웠고, 집 뒤에는 손을 뻗으면 열매를 딸 수 있었던 작은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뒷산 계곡엔 가재가, 길건너 논두렁엔 개구리가 가득했던 그 곳.
전통 한옥도 아니고 툇마루 있는 시멘트 집이었는데 아궁이로 불을 떼는 방식으로 난방과 음식 조리를 했다. 흙마당 한구석에는 손님용 별채도 있었다.

내 최애 장소는 외양간이였다. 소 여물은 작두?로 손질해서 줘야 했는데 서걱서걱 잘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던 날에는 외양간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 시골엔 온 사방에 놀 꺼리 천지였다.

툇마루에 덩그라니 놓여있던 요강은 내 전용 화장실이었다. 파란 새벽, 비틀비틀 걸어나와 요강에 앉으면 엉뎅이부터 타고 올라오는 한기에 잠이 확 달아났다. 나는 푸세식 화장실이 싫었다. 더러운것도 싫었지만 아저씨들이 토끼를 잡아먹는다며 토끼를 죽여 변소 안에 그 가여운 동물의 가죽과 내장을 버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용문산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봄이면 산나물을, 여름엔 과일과 옥수수, 겨울엔 군밤과 번데기를 파셨다. 시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아저씨들이 도룡뇽 알을 꿀꺽꿀꺽 먹기도 했고, 뱀술과 개구리튀김은 평범한 음식에 속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줄줄이 엮여 팔리고 있던 말린 왕지네였다.

나물캐는 할머니를 따라 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둑어둑 해가 지자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소쩍새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던 며느리가 죽어 귀신이 되어 운다는 이야기인데 솥에다가 밥을 해놨는데 안해놨다고 모함을? 당한 모양이었다.


"솥적(다).. 솥적(다).."


적막속에 소쩍새의 울음만이 구슬프게 들렸고 할머니는 묵묵히 나물만 캤다. 무서웠다.

나는 산을 무서워했으면서도 혼자 자주 놀러갔다. 산토끼를 잡겠다며 설치다가 땡땡 얼어들어온 기억, 해맑게 개구리 잡아 구워먹던 기억, 밥시간도 잊은 채 썰매타던 기억.

얼음안에 얼어죽은 물고기를 구하겠다며 동상이 걸리는 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얼음을 푹푹 찔러대던 기억..


아빠와 아저씨들은 사냥을 했다. 개도 잡았다. 지금까지도 날 힘들게하는 끔찍한 기억들 몇가지는 이곳에서 생겼다. 왜 죄 없는 생명들을 죽였을까? 내가 물고기와 가재를 잡을 때와 비슷한 재미였을까.

어른들은 그 순간 만큼은 나에게 악마로 보였다.





불장난은 너무 재미있었다.
내동생 입가에는 이 때 아궁이 앞에서 놀다 덴 흉터가 아직 남아있다.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캄캄한 어둠에 휘두르면 빛이 남긴 찰나의 흔적이 아름답고 황홀했다. 불이 꺼진 후 라이터를 가져다 손으로 몇 번 문지르고 숯덩이에 갖다 대면 어두운 아궁이 안에서 반짝반짝 은하수가 흘렀다.


언젠가 불장난을 하러 나왔을 때 아궁이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송아지와 만났던 적이 있다. 그 커다란 눈망울과 긴 속눈썹을, 까만 눈에 비친 불을 꽤 긴 시간 동안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실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여담.


이렇게 기억을 끄집어내어 한바탕 글을 쓰고 나면 기억이 소진되어 버리는 것을 느낀다.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이 구체화되고 약간의 가식이 보태어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몽환적 장치들이(내 머릿속에만 있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본래 기억이라는 것이 자꾸 떠올리려 애쓰다보면 바닥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잊고싶지 않은 좋은 기억은 망각하기 전에 기록을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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