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새로운 챕터를 열면서
2020년 3월의 끝과 함께 모든 수업이 끝났다. 아직 인턴과 논문 대체 보고서, 디펜스가 남았지만. 수업을 듣는 과정이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것들을 느꼈다. 아직 돌이켜 보기에 힘든 기억들도 많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는지 그 시간들이 나를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는 앞으로의 나를 보며 알 수 있겠지.
프랑스어. 애증의 언어. 내가 통계를 한국어로 혹은 영어로 공부했더라면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가기 바빴던 순간들. 하루에 6시간 수업을 듣지만 그 속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쓰기만 했던 순간들. 좌절감. 자책감. 패배감. 분노. 걱정. 조급함.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득했던 과정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고, 익숙해질까 싶었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던 감정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이루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시간들이었다.
자아도취에 빠져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 날 나에게 돌아온 것은 좌절감이었다. 첫 수업은 교수의 필기조차 받아적을 수 없었고,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물론 일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심장은 그때처럼 요동치지 않는다. 이것도 잘 해내겠지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처참하게 짓밟혔었다. 생각보다 나는 대단하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나는 약한 사람이었다. 나의 한계를 마주했고, 발버둥쳤다. 별로 울지는 않았다. 첫 실습 시험 때, 나의 파트너가 예고도 없이 오지 않아서 혼자서 코드를 돌려 시험을 쳐야했을 때. 그 날 울었다. 3시간동안 두려웠고 손이 벌벌 떨렸다. 그 날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해 두었다.
오늘의 좌절감을 잊지 말자
10월 6일의 기록
혼자라는 게 이렇게 커다란 좌절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었던 것일까.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것들에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허비했다. 시간 배분도 생각하지 않았고 너무 안이했다. 혼자서 TP를 불어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에게 더 큰 패닉으로 다가왔다. 모르겠고, 답답했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시간은 흐르고, 나만 못하는 것같고, 두렵고, 실망스러웠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해내지 못한 내가 미웠다.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지 않은 내가 실망스러웠다. 다른 이에게 의존할 생각이었다.
이 기분을 기억하자. 아무런 대비없이 다른 이에게 의존하려고만 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이 좌절감과 슬픔을 기억하자. 이 속상함을 새기자.
오늘의 좌절감이 나를 집어 삼키지 못하게 하자. 오늘 일을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자. 커가는 과정,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과정이라고. 이런 경험도 없이 성장하려고 하지 말자.
그리고... C'est la vie!
돌이켜 보면 뭐 저렇게 당황하고 슬플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욕심은 한 가득인데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미웠었다. 계속 현실에 부딪히고 조각나며 계속 일어나는 법. 그리고 살아나는 법을 배웠다. 경쟁사회에서 자라온 나는 상대방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그걸 원동력 삼아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경쟁은 무슨 그저 발버둥치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비교할 수 없다는 것.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비교했다. 나의 삶에 녹여져 있었기에 그걸 벗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여정 속에서 그 길에서 잠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그걸 벗어나 온전히 나의 삶을 찾아가는 게 인생의 과정이자 숙제가 아닐까.
혹여나 나의 생활이 얼룩지고 눈물과 아픔으로만 가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나의 삶을 행복으로, 새로운 경험들로 채울 수 있었다. 그 순간들 자체로 소중하고 충분했다. 아팠던 기억, 좌절한 경험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을 겪으며 나를 다른 조각들로 채울 수 있었다.
나는 과연 깊이 있게 학문을 탐구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방법을 배웠다고. 아쉬움이 남는가? 당연하다. 더 깊게 탐구하지 못했고, 주어진 양을, 깊이를 소화할 시간도 능력도 부족했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 전혀. 물론 그 시간들이 값지고 소중하지만,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시간들도 많기에. 대신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목적은 "생존"이었으니까. 여유가 없었다.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길을 향유하기에 난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부족한 나를 채우기 위해 앞으로도 배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