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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Apr 10. 2020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두려움을 마주하며

수학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수학을 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자.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면 됐다.

그거면 된다. 그 순간들을 버티며 되새긴 말이다. 6시간 듣는 수업 때마다 울고 싶었지만, 하나라도 얻어가면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온전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들. 나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석사 2년 차 때 전공을 선택했다. 심화 통계, 마케팅, IT, 생물 통계, 리스크 관리, 경제 분야 중 심화 통계를 했다. 가장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을 깊게 다루는 전공이자, 가장 general한 분야이도 했다. 왜 선택했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나의 질문은 한결같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몰라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미친 듯이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니까. 그걸 찾기 위해 시도하는 중이니까. 통계는 하고 싶은데 아직 특정한 분야로 빠지기에 내가 배우고 싶은 이론, 학문적인 분야가 많이 있어서. 그 길을 더 파고 싶어서였고. 마음에 담아둔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수학은 고3 때까지 나에게 두려움 그리고 기피의 대상이었다. 복잡한 수식은 나를 숨 막히게 했고, 자신이 없었다. 고1 때 첫 수학 시험에서 48점을 받았다. 공부를 하고도. 다행히 고3 때 좋은 인강 선생을 만나서 수학의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흥미롭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푸는 과정이 재밌었고, 수능에서도 수학은 다 맞았다. 처음으로 수학이라는 과목에서 받은 만점이었다.



그래도 나는 뼛속까지 문과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통계학 전공으로 살면서, "수학"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과 베이스가 부러웠다. 나는 어렵고 막막한 것들이 저들에게는 더 쉽고 이해하기 편했으니까. 이해가 안 되니 여러 책을 찾아 읽고, 인터넷으로 설명을 찾아 읽었다. 나는 이해가 필요했다. 왜 이것을 쓰고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그 짧은 수식은 그 많은 내용을 담으며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기록되었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저 숨 막힐 뿐이었다. 알지 못하면 두렵고 불편한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공부하면서 재미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통계는 내 삶으로 스며들었지만 수학의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난 계속해서 선을 그으며 내가 좋아하는 통계와 내가 멀리하고 싶은 수학을 분리하려고 했다. 분리할 수 없었다. 선으로 그을 수도, 뽑아낼 수도 없었다. 통계는 수학이었고, 수학은 하나의 언어이니까. 애초에 내가 정의한 방법 그리고 접근 방법이 잘 못 되었다.



박사까지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나에게 석사 2년 차는 공식적으로 학교에 머무는 마지막 학년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을 마주하기로 했다. 힘든 선택임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언제 안 힘든 길만 걸어왔는가. 그렇게 전공을 선택하며 나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니 꽃밭이었다. 이렇게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섰다...



라고 끝맺을 수 있으면 얼마나 인생이 쉬울까. 해피엔딩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엔딩이 없는 지속된 여정이 바로 삶이었다. 그 여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가시밭들로 가득했다. 꽃을 밟으면 가시가 박히는 게 당연한 순리이지 않은가.



2019년 9월에 첫 발을 내딘 석사 2학년. 8개월 동안 힘들었고, 더 좌절했다. 일 년 동안 내가 머물던 곳이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더 떨어질 나락이 있었다니. 6시간 프랑스어로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은 더 이상 숨 막히지 않았다. 또 다른 벽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공의 깊이는 너무나 얕았기에 수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질문조차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궁금증도 질문도 생기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과연 두려움을 극복했는가? 아니. 이전보다는 덜 하지만 아직도 한숨부터 나온다. 그저 품고 가기로 했다. 내가 부족한 분야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더 노력하고 모르면 물어보기로 했다. 수많은 고민의 나날을 보내며, 선택의 순간에 두려움을 마주하기로 한 내가 대견하다.

오늘도 틈을 메꾸며 살아갑니다.


통계는 오차의 학문이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오차를 줄이며 살아가는 .
 <2018. 대학원에 발을 내딛으며>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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