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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Apr 22. 2020

쟨 되는데 넌 안돼.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불편합니다(4)  네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쟨 되는데 넌 안돼.


무슨 일이냐고? 또 그 교수다. 미쿡인 영어 교수. 프랑스 생활의 여러 일화를 만들어준 존재.  



학교에는 영어 수업이 있다. 여느 학교들과 같이. 어떤 영어 수업이냐고? 어릴 때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역할 놀이를 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뤘던 수업들을 기억하는가. 그거였다. 이 수업이 너무 싫었다. 우린 어린애들이 아니었고, 영어에 "흥미"를 붙여야 하는 나이가 아니었다. 프랑스 이공계 학교의 영어 수준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이들에게 영어는 필수가 아닌 환경에서 자라왔으니까. 학교 영어 수업은 문제덩어리로 보였다. 그저 시간 때우기 용이었으니까. 이미 난 지쳐있었고 이 3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지금 해야 할 과제가, 프로젝트가 산더미인데.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3시간이면 마음 편히 장도 보고, 방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인니까.



이번 해 영어 수업은 1학기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매일 6시간의 수업과 각기 다른 과제와 시험이 공존하는 와중에 큰 프로젝트가 추가된 상태였다. 이번 주도 시험이 있고, 다음 주도 시험이 있어서 영어 수업을 쨌다. 결석받고 말지 뭐. 같은 과 친구 몇 명도 누구는 시험공부를 누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Hello" 아니나 다를까 그 교수다. 작년에는 영어와 프랑스어 수업으로 만났지만 올해는 강의실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반갑게 인사했더니 바로 훅 들어온다.


"어 안녕. 근데 너 지금 뭐해? 영어 수업 시간 아니야? 많은 애들이 결석했다는데?"


"오늘 안 갔어. 할 일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었어"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 네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그의 눈을 쳐다봤다. 뭐야. 결석 처리한다니까 내가 무슨 허락을 받아야 해? 내 교수도 아닌데? 정적이 흘렀다.


친구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인사 전해 달래요."  



도서관 옆에 4명이서 들어갈 수 있는 팀 방에 들어가서 각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20분 뒤에 같은 과 모로코 친구가 들어왔다.


"너도 수업 안 갔구나"


"응 필요 없잖아"


오는 길에 그 교수를 만났다고 했다. 우리도 만났다고, 난 내 행동이 용납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깔깔거리며 웃더니 자기에겐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어디 가냐고 묻길래 할 일이 많아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더니, "그래 이해하지. 너 영어 잘하잖아."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 뒷목이야. 영어 잘하잖아? 헛웃음이 나왔다. 친구가 놀라서 나를 쳐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야ㅋㅋㅋㅋㅋ영어는 네가 제일 잘하잖아. 와 그 교수 너 진짜 싫어하나 보다."



교수의 표현에 의문이 들었다. 대화를 할 때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니까. unacceptable.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도 아니고 대상도 아닌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순식간에 뱉어낸 공격적인 표현. This does not convince me 라던가 I am not convinced라는 표현도 있는데. 설득도 아닌 허락.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내게 납득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기분은 나빴지만 별거 아닌 일이었다. 이 정도는 사건에 낄 자리도 없었다. 그 교수에게 예쁨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날 싫어할 수도 있지. 나도 그 교수가 좋은 게 아니까.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점심 때는 10명의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는데, 그 날은 영어 수업과 그 교수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한창이었다. 한 친구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우리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뭐야 이게. 그래 백번 양보해서 영어 수업 안 갔다고 뭐라고 한다고 치자.

근데 내가 화나는 건 왜 같은 잣대로 학생들을 대하지 않느냐 이거야. 뭐라고 할 거면 똑같이 뭐라고 해야지.

누구에겐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누구에겐 웃으면서 영어 잘한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뭐냐고.

넌 되는데 넌 안돼. 대놓고 차별하는 거. 그게 교수의 태도야? "


"야야야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


"네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웃으면서 말했다. 한동안 용납할 수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쓸 것 같다고. 우리들만의 표현이 생겼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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