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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Apr 24. 2020

부당합니다. 교수님.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불편합니다(5) 코로나 대응 전국 봉쇄령

3월 17일. 전국 봉쇄령이 시행되었다. 학교는 문을 닫았다. 15일, 16일에 이미 친구들은 방을 빼고 본가로 돌아갔다. 한 친구는 다음 기차가 취소되지 않기를 바라며 기차에서 레포트 마지막 문단을 써 내려갔다. 한 친구는 파리로 짐으로 가득 찬 자동차를 몰고 새 집으로 향했다. 한 친구는 모든 짐을 박스에 넣고, 전입신고를 하러 시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쁜 발걸음 사이에서 난 210호에 있었다. 내 방, 발코니가 있는 19 제곱미터의 공간. 버스 정류장만한 기차역 앞. 초록색으로 가득한 풀밭을 마주하며 발코니에 의자를 펼쳤다. 읽히지 않았다. 눈 앞의 레포트 속 글자들이 요동쳤다. 불안했다. 나는 이 자리에 있었고, 이 자리에 있는데. 모두 급하게 나를 떠났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 분주함 사이에서 움직일 수 없는 내가 불안했다. 두려웠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레포트 제출일이 18일에서 20일로 늦춰졌다. 국가 재난 상황을 고려하였고 학생들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기에 마감일이 미뤄졌다는 말과 함께. 18일. 19일. 20일.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9시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오트밀에 그릭 요거트와 꿀을 섞어 의자에 앉았다. 3개월을 함께한 "신 재생 에너지 생산이 전력 가격에 미치는 영향" 프로젝트를 뜯어고쳤다. 10시에 친구와 통화를 하며 해야 할 일을 정했다. 세 가지 모델 중 마지막 모델 결과물을 담은 표를 수정했고, 어제도 본 문장들을 읽으며 오늘도 고쳤다. 4명이 모두 마지막 검토를 마치고, 프로젝트 단체 방에 확인 메시지가 올라왔다. "끝" "끝" "끝" "끝" "제출 완료".



24일부터 26일까지 디펜스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 조는 25일 9시. 예정대로라면 제출을 마친 오늘부터 피피티를 만들어야 했다. 디펜스에 대한 공지는 없었다. 19명이 함께 있는 과 왓츠앱 방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학과장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디펜스는 어떻게 진행되냐고 어떤 소식도 없어 불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교수가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게 아닌데 지금 얘기하는 걸 봐서는 영상회의로 진행하려고 한다고. 공지는 23일에 내려갈 것이라고. 과 왓츠앱 방은 분노의 표현들이 채웠다.



전날 통보 예정이라니. 애초에 불만의 목소리를 받지 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다음 날 아침에 프로젝트 책임 교수, 학과장, 학교장, 과 전체를 참조하며 메일을 보내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나도 할게.
나도.
나도.
나도.
나도.


우리는 각자의 말로 이 상황을 써 내려갔다.



21일 아침 캠퍼스 프랑스에서 메일이 왔다. 장학생들을 대상으로 석사 과정이 끝나면 제공되기로 했던 비행기 표를 임시로 귀국하는 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임시 귀국하면 장학금 지급은 일시적으로 중단되며 프랑스에 돌아오면 다시 받을 수 있다고. 집에 가고 싶었다. 가족들과 친구들 품으로. 마스크를 매일 써야 해도 그 공간에, 그 주변에 있고 싶었다. 갈 수 없었다. 15일에 합격 통보를 받은 인턴은 4월 말에 시작하기에.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낸 후, 학과장에게 내가 받은 내용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써 보냈다.



프로젝트 책임 교수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썼다. 영어로. 한국어는 못 알아볼 테고, 프랑스어는 자국민들이 더 잘 써줄 것이라 믿었다. 나의 표현으로 내가 보는 상황을 설명했다. 학교장, 학과장, 프로젝트 책임 교수, 우리 과(GS) 모두에게 보냈다.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GS 전공 3학년 학생입니다. 왜 디펜스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설명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학과는 이 시점에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하는 3가지 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시험 대체로 주어진 4페이지짜리 과제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국 봉쇄로 인하여 물리적으로 만날 수도 없는 상태에 팀으로 일해야 하고, 학생들은 대부분 급하게 짐을 싸서 집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팀으로 일해야 하는 공간도 시간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30장짜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험난했습니다. (12월 이후 저희 GS 전공은 단 한 주도 시험이나 프로젝트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는 점 또한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최종 프로젝트는 "팀 워크"라는 의미가 최소한 물리적으로 보장된 단체 프로젝트여야 합니다. 온라인 회의로 디펜스를 진행하겠다는 결정은 인터넷이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이들을 고려조차 하지 않은 대안입니다. 팀 워크가 보장되지 않고, 그 의미가 무색한 환경에서 온라인 디펜스는 학생들, 교수들, 기업들 모두에게 문제점을 떠안깁니다.


당장 문제점들이 예상되고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디펜스를 유지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저희 팀은 4명입니다. 동서남북 서로 다른 지역에 몸을 가누고 있고, 인터넷 연결 문제도 겹치면서 발표 준비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담당 교수와 기업인 멘토까지 6명이 비디오로 발표를 진행하는 게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예상이 됩니다.


당장 인턴쉽이 취소된 학생들도 코로나 사태가 나아지기 전까지 무기한 보류된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희는 강한 압박 속에서 과제와 시험뿐만 아니라 인턴쉽, 이사, 전국 봉쇄령의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에서 비행기 귀국 티켓에 관한 안내 메일을 받았습니다. 곧 시작하는 인턴을 위해서 이사하기로 되어 있던 파리에 있는 국제 기숙사촌은 모든 외국인 학생들에게 방을 빼거나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디펜스를 유지하고 하는 대안은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지금 서로를 돌보고 각자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8명의 메일이 연이어 보내졌다. 공식적인 발표가 23일에 나기 전에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때는 너무 늦다. 프로젝트 책임 교수가 답장을 보냈다.



"의견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학교장이 처리할 것입니다."

"의견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학교장이 처리할 것입니다."


"의견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해당 사항은 학교장과 내일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해당 사항은 학교장과 내일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해당 사항은 학교장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의견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학교장이 학생들의 메일에 곧 답장할 것입니다."



학교장이 답장을 보냈다.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근거를 들어가며 의견을 내줘서 고맙다고. 디펜스는 학생들이 팀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책임 교수가 설문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빠른 판단에 감사를 표한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던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한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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