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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May 03. 2020

조금씩 방향을 틀며 살아갑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미친듯이 하고 싶은 게 없습니다.

인턴은 4번째입니다. 왜 이리 인턴을 많이 했냐고요?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 있고,

이리저리 발을 내디뎌보며 걷는 사람이 있다.

그 애매한 어딘가에 내가 있다.



불타오르는 열정. 한 길만 파는 집요함. 계속된 도전 끝에 얻어낸 성공.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춤을 추는 게 좋아서. 노래를 하는 게 좋아서. 역사가 좋아서. 과학이 좋아서. 로봇이 좋아서. 공룡이 좋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부럽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좋다고 행복하다고 내뱉는 그 말이 부럽다. 하나밖에 모르는 열정이 부럽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심장을 내놓을 수 있는 일이 있고, 불태울 열정 하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들었다. 그렇게 읽었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삐빅- 삐빅- 삐삐 삐삐 삐삐- 찾았다 내 사랑.

내 심장은 모래사장에 파묻힌 동전을 찾는 금속탐지기가 아니었다. 유난히 쿵쾅거리는 일도 없었다. 새로운 일들을 하면서 설렘으로 가득 차나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제자리도 돌아왔다. 주기적으로 건강하게 잘 뛰고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길이든 갈 수 있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일이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나를 기다려야 했다. 미친 듯이 하고 싶은 게 없는 나는 초라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타일렀다. 조급했다. 7년이 흘렀다. 난 왜 미치지 않을까. 겁이 많아서 그런가.



억지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1학년 때, 정치학 입문 수업으로 정했다. 구체적인 이유도 세웠다. 나의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 레포트를 작성하며 영감을 얻고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고. 2학년 때, 국제 인권 수업으로 정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소중하니까. 3학년 때, internatinal negotiation (국제 협상) 수업으로 정했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걸 배웠으니까. 4학년 때, 베이지안 통계학. 이름조차 있어 보였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게 내가 추구하는 인생이라며 살아갈 방향도 설정했다.

  

매 학년마다 이 과목이 너무 좋다고 혼자 주입해봤다. 계속하다 보니 자기소개서도 쓰고, 면접도 보고 석사를 하러 물 건너왔다. 거창한 이유들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는 않았다. 나를 속이기는 힘들었다. 나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연기는 나의 길이 아닌가 보다. 거부감이 들었다. 삐빅- 삐빅- 여전히 잠잠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 미친 과목이 없었다. 다 무난했다. 특별히 뛰어난 능력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난 슈퍼히어로가 아니었다.



인턴을 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밤을 새우며 미친 듯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내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한 달은 그랬다. 무슨 일을 하던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니까. 회사가 준 사원증과 밤늦게까지 일하는 멋진 나라는 뽕에 취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들이붓는 노동에 비해 쥐꼬리만 한 인턴 월급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 차리라고. 그렇게 매번 빠져나왔다.



해야 하면 하게 되는 게 일이고, 거기서 인생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한 우물만 파지 않았다. 인내심이 부족했다. 파다 보니 큰 돌이 나와 막히기도 했고, 때론 팔이 아파 모든 걸 내던지기도 했다.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지금 이 길에 서있다.


미친 듯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봤는데, 아직 못 찾았다. 하고 싶은 일들은 많다.

"미친 듯한" 형용사에 집착해 오랫동안 나를 재촉했다.

이제는 안다. 그거 몰라도, 그거 없어도 좋은 인생이라는 걸.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 있고,

이리저리 발을 내디뎌보며 걷는 사람이 있다.

조금씩 방향을 틀며 걷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나에게 인턴은 경험이고, 지워가는 과정이다.
책 밖에서의 삶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 2019년 5월 7일 <세 번째 인턴을 하면서 남긴 기록>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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