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인턴 - 이러다가 재택근무만 하다가 끝나겠다
인턴 시작 5주 차. 연구에 쏟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표류하는 시간이 더 길다. 뇌 속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시간보다 멈춰서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사수랑 하는 미팅이 아니었다면 인터넷 표류기로 끝났을 것이다. 일을 하겠다고 나무도 주기적으로 심고 있고, 빗소리 amsr을 들으며 정신을 붙잡아 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마지막 10분을 못 버티고 시들었으며, 소리로 들으면 오늘도 내일도 장마다. 입으로 소리를 뱉으며 읽기도 하고 읽어야 할 범위를 정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논문만 읽는 게 재미가 없어서 괜히 데이터 분석 대회에 참여해 코드를 수정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금요일 오전 10시에 사수랑 미팅을 했다. 다음 주에 회사에서 노트북을 택배로 보내준단다. 재택근무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겠지. 적어도 8월까지 우리는 연구소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말도 했다. 우리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는 사람들이라. 실험을 하고 약을 제조하는 사람들이 우선순위이기에. "곧 너를 연구소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미팅 때마다 하던 사수도 이 날은 그 말을 쏙 뺐다. 사수를 실물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인턴을 마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번 주는 어땠냐고 잘 지냈냐는 말에. 친구가 이사를 가서 정말 캠퍼스에 혼자 있는 기분이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툭 내뱉었다.
그러면 저 한국 가서 해도 될까요?
한국이 더 잘하고 있지 않냐며 아예 들어갈 생각이냐고 아니면 돌아올 거냐는 말이 돌아왔다. 여름만 보내고 돌아오겠다고. 너무나 흔쾌히 사수는 동의했다. 어차피 자기 입장에서는 바뀌는 게 없다고. 계속 이렇게 온라인으로 미팅하고 너 혼자 알아서 일하는 데 뭐가 달라지겠냐고. 서울에 연구소 있으니까 거기서 일하면 안 되냐고도 물어봤다. 한국은 우리 팀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회사 노트북을 들고 가는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팀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오? 오? 오? 진짜?
프랑스, 미국, 벨기에, 독일에 있는 팀원들이랑 하는 팀 회의도 다 줌으로 하는 데 내가 한국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3개월 한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차피 노트북으로 일하는 데 자가 격리하면서 일하면 되고, 회의만 시간 맞춰서 하면 되고. 방은 2주 내로 빼고 친구한테 겨울 옷으로 가득 찬 캐리어 하나 맡아달라고 해야겠다. 가서 뭐 먹을지부터 고민했다. 돌아와서는 연구소 근처에 방을 잡으면 되겠다. 한 친구가 이사하던 날 다른 친구들 메신저에 씁쓸하다고 푸념할 때 툭 아이디어를 내준 친구가 고마웠다.
그날도 같은 마음이었다. 진작 떠났어야 했지만 아직도 떠날 날을 품고 있었다. 그 사이에 친구들이 파리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했고, 씁쓸한 마음으로 그들을 떠나보냈다. 마지막으로 한 친구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통계청 친구들은 어느새 파리에서 일한 지 1년 차가 되었고, 캠퍼스에 홀로 남겨진 나를 걱정하며 몇 주동안이라도 파리로 오라는 말을 한다. 한 친구가 재택근무 집에 가서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땐 어이가 없었다. 그게 말이야 방귀야. 말이 쉽지. 갈 수는 있지. 회사에서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회사는 모를 꺼라면서 급하게 방 빼는 게 힘들겠다고 했다.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했다. 갔다가 잘리면? 그러면 나 졸업장 못 받는데?
이랬던 내가 "저.... 한국 가서 하면 안 돼요?"라고 뱉었다. 붕 뜬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새로운 고민과 걱정, 설렘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오후 3시.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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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매니저한테 물어봤는데..
시차, 보험, 보안 상의 이유로 힘들 것 같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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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 없이 싹이 잘렸다. 씁쓸했다. 슬펐다. 꿈과 환상의 나라로 잠시 떠나 있었다. 4시간 동안 부풀린 기대가 뻥 터져버렸다. 뭐 먹을지 고민하던 생각은 아 냉장고에 뭐가 있지로 변했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시켜 먹고 싶은 마음은 아 커피 원두는 남았나라고 변했고. 가서 서핑도 배우고 복싱을 배우려던 마음은 아 오늘은 어떤 비디오를 따라 할까로 변했다. 혼자 사발로 들이킨 김칫국을 소화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래도 좋은 시도였다.
여기서 잘 살아보자.
노래방 블루투스 마이크를 주문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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