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소재 영화에 대한 단편
첫사랑까진 거창하지만 군대를 막 전역한 나에게 어머님은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주셨다.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나는 흔히 말하면 돈 버는 재미와 집에서 게임하는 맛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 난 2개에 사로 잡혀 있었는데 하나는 근처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 같은 단발머리 여성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게임 '진 삼국무쌍'이었다. 둘의 개연성은 1도 없다. 그냥 그 시기에 내가 좋아한 2가지라는 것뿐이다.
물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엄청 용기 내 고백했지만 시원하게 차였다. 그 이후에는 여사친으로 남아 그녀의 결혼식까지 보고 아이 돌잔치도 갔었다. 하지만 서울로 완전히 올라온 이후에는 지방의 그녀와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새 연락처 조차 검색하지 않게 됐다.
최근에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영화 '진 삼국무쌍' 때문이다. 당시 이 게임은 내가 꿈꾸던 모든 게 들어 있는 대작이었다. 항상 꿈꿔온 대군 속 혈투, 그리고 시뮬레이션이 아닌 액션 스타일의 삼국지, 거기에 미형의 삼국 무장들까지 그야말로 완전히 내가 원하던 스타일의 게임이었다.
이 시리즈는 현재 8편까지 나왔지만 4, 5, 6편과 8편이 폭망을 하고 스핀오프 작품들 상당수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어 시리즈의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는 상태다. 그래도 진 삼국무쌍 3편까지는 나의 만족감을 100% 아니 200% 채워준 20대에 만난 가장 고마운 게임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걸 소재로 영화가 나온다니.. 기대를 안 할 수 없었는데 결과는 첫사랑 같은 씁쓸함이었다. 태산 같이 보이던 호로관 메뚜기 여포는 어좁에 얼굴도 못생긴 인물, 조조부터 관우, 장비 등 모든 인물들이 왜 이렇게 작은지.. 꼬맹이들이 아빠 갑옷 입고 설치는 것 같아 보는 내내 신경 쓰였다.
"내가 알던 진 삼국무쌍이 아닌데.."
첫사랑 그녀는 곁 모습과 달리 속도 여리고 상처를 많이 받는 타입이었다. 그녀의 보이시한 모습 하나만 보고 다가갔던 나는 제대로 까일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는 오빠의 마음으로 챙겨주는 식이 됐다. 그러던 사이 몇 번 진지하게 선을 넘을 기회가 있었으나, 어느새 우정 가까운 이 관계가 무너지는 게 싫어 포기했었다.
'진 삼국무쌍' 영화는 이런 내 마음을 송두리째 무쌍 난무해버린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괜히 배려한 느낌, 괜히 사서 본 느낌이야. 후회할걸 알면서도 봐버렸어.. 으아... 왠지 오늘 밤새 이불 킥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어쨌는 유치 찬란 허무한 이 영화는 나에게 '스킵' 신공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몇몇 전투 장면이 멋있다고 말하는 혹자들이 있던데 게임이 1000% 괜찮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캐스팅이 다 말아먹었다. 물론 괜찮은 경우도 있다. 원소를 담당한 배우. 이분은 원작 게임과 싱크로율 100%다. 너무 똑같아 CG 생각이 날 정도다.
그리고 후반부 전투에서 나오는 원작 진 삼국무쌍의 BGM은 조금 소름이었다. 그러다 저 어이없는 대군 전체가 터지고 스토리 막장으로 가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가 딱 끝난다. 정말 뭐야 하는 순간 끝난다. 나의 진 삼국무쌍은 그러지 않는다고...
어쨌든 영화가 끝났고 난 후다닥 글을 쓴 후 머릿속에서 이 영화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고 한다. 20대 초 만났던 첫사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