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따뜻하지 않다.
커피를 꺼내 마신 후 조용히 생각해봤다. 어디서부터일까. 내 생각, 내 마음, 그리고 어려움. 별거 없었다. 사실 이렇게 커질 상황도 아니었고. 시동을 끄고 내린 후 탄 엘베에서 그냥 속이 상했다.
삶은 항상 이랬다. 내 생각과 다르게 항상 흘렀다. 강물처럼. 맑은 물이 흐르던 상계천의 속은 누런 이끼가 가득했다.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포기하는게 좋았을까.
이길 수 있는 싸움은 누구의 편일까. 작고 비좁은 방안에서 겨우 몸을 구겨넣어 수 년이 지났다. 난 조금이라도 자란 걸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한심한 생각이 머리를 장악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징. 바보 같은 진동소리. 휴우. 한 숨이 오간 후 든 전화기엔 오랜 친구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고맙다. 살아 있나. 못 본지 10년이 넘었다. 애가 유치원이야. 어떻게 사냐. 한참을 떠든다.
그러다 꺼낸 말. "미안." 턱 밑까지 올라온 헉 소리에 말을 못했다. "뭐가." 그냥, 모든 게다. 불연듯 넌 어떻게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방의 작은 학교를 나와 대학도 다니지 못했던 넌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젊은 패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은 가난했고 부실한 몸은 아팠다. 서울에 회사를 다니는 내가 어느 순간 미웠다고 했다. 그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건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평생 좋은 걸 챙겨 드셨지만 간암 진단 받은지 2년도 안 돼 떠났다.
해외에 있던 난 그날 상에 가지 못했다. 그런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한참 말이없던 친구는 조심스럽게 숨을 쉰 후 말을 꺼냈다. "괜찮지?, 아프진 않고?" 누굴 걱정할 상황인지가 궁금했다. "넌? 애는?, 제수씨는?" 연달아 꺼낸 말에 피식 웃는 놈.
"이혼한다" 항상 이랬다. 이놈은.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이야길 이놈은 이렇게 했다. 집안의 사정부터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 근데 항상 이 친구는 그랬다. "그래서." "별거 없어. 그냥 그래" 덤덤하게 표현한 건지, 커피에 몽롱한 내가 그런건지 알 수 없다. 공기는 차가웠고 난 술이 고팠다.
"넌? 별일 없고?" 뒤늦은 엉성한 안부에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대단하지 않다. 아프지도 않다. 그냥 허탈하다. 식어버린 커피를 구기듯 털어내자 "그래 쓸 때 없이 건강하다. 얼굴 봐야지"라는 말이 나왔다.
구긴 너의 자존심이 아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네, 나의, 너에, 그리고 모두의 인생은 원래, 식어버린 커피 마냥 부실했다. 그 부실함 끝에 우린, 삶이라는 무게를 알게 된다.
한숨이 나온다. 커피가 땡긴다. "미안" 뭐가라는 답변이 나오기 전에 통화는 멈췄다. 어렵구나. 인생은 모두에게 식어있다. 난 부쩍 추워진 방 온도에 뜨거운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얼마나 걸릴까.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진. 어렵고,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