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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겜노인 May 14. 2019

결국은 DOOM만 남았다. '레이지2'

[한 장 리뷰] 이드소프트웨어 레이지2(RAGE2)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이자 1인칭 슈터 게임(FPS)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카멕'(John D. Carmack)은 1992년 1인칭 슈터 게임 둠(DOOM)을 개발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 


"게임 내 이야기는 포르노 영화 속 이야기와 같다"


이 말은 게임 내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게임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그래픽, 액션, 파밍 등)보다 낮다는 표현에서 비롯됐다. 나중에 존 카멕은 관련 말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며 이야기(스토리)가 주는 부분이 게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것에 왜 중요한지에 대해 역설한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2019년 5월14일 출시된 게임 '레이지2'(RAGE2)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2016년 출시된 둠 리부트의 경우 원작 둠(DOOM)이 가졌던 본연의 재미, 즉 이야기의 비중이 크지 않아도 학살, 스테이지를 완수하는 재미에 초점을 둬 평단과 게이머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미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물론 이야기와 세계관의 탄탄한 구성도 눈에 띄었지만 일단 그런 것 생각 없이 본인이 생각하는 마음 그대로의 플레이로 화려하게 악마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과정은 실로 통쾌했다. 새롭게 준비되고 있는 신작 둠 이터널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어찌보면 둠 시리즈에게만 허락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아발란체 스튜디오와 이드 소프트웨어는 레이지2를 통해 오픈 월드 속 둠을 선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전작의 세계관보다 훨씬 괴상해진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 신기한 모험은 게임이 장르로 구분되는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준다. 호쾌한 액션도 좋지만 오픈 월드 게임이라면 해당 장르 팬들이 추구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다.


레이지2는 전작으로 약 30년이 지난 2185년을 무대로 동면으로 깨어난 과거 인류가 적대적 세력 '어쏘리티'(Authority)에 의해 거의 궤멸된 시점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바인랜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워커'(Walker)가 돼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어쏘리티와 싸운다. 게임은 이렇게 흘러간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인물 크바시어 박사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이 복수하는 이야기는 흔한 클리셰다. 이런 클리셰가 재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조연 캐릭터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생동감 넘치는 멋진 세계관과 강력한 라이벌, 그리고 무언가 비밀 등이 나와야 한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주인공 바인랜드의 입장을 느끼기 위해선 당연한 대목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게임엔 이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창한 시작에 비해 레이지2는 포르노 속 이야기 마냥 어색하고 건조하게 진행된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이상하게 생긴 걸 제외하면 그 어떤 인물도 눈길을 끌지 못한다. 세계관은 멈춘 것 마냥 조용하고 이야기 진행은 재미 없고 더디다.


아~ 몰라! 그냥 닥치고 사살이다!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특히 이야기와 상관 없이 등장하는 보조 임무는 게임 몰입에 방해가 되는 무의미한 내용으로 전개돼 게임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주 임무는 주인공의 성장과 관련이 있어 전개하는 동안 이야기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즐길 수 있지만 대부분의 보조 임무는 그냥 '학살'을 위한, 또는 오픈 월드니 필요해서 등의 건조한 내용들로 진행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을 즐긴 이후에는 주 임무도 보조 임무도 왜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둘 다 개성이 사라진다. 여기에 강력한 라이벌이나 이야기를 이끄는 조연의 등장이 있다면 좀 덜 할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레이싱은 정말 최악이다. 재미 없어..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오픈 월드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다는 것도 레이지2의 아쉬운 점이다. 최근 유비소프트의 오픈 월드 게임들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주, 보조 임무와 수집 등의 찾기 요소, 비밀 요소 등이 등장한다. 단순히 찾는 것을 떠나 공감하게 만드는 요소도 잔뜩 마련돼 있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세계관에 공감하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오픈 월드가 액션 외에 이야기와 세계관 구성,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지2는 넓은 공간만 존재할 뿐 그 안을 어떻게 채우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게 할지 찾지 못했다.


독특한 녀석들이 잔뜩 나온다고 게임이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다.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물론 전투의 흥미진진함은 이 게임을 사야할 몇 안되는 이유다. 게임 내 전투는 성장하는 주인공의 능력에 따라 매우 다양해지며 상대방을 무기로 제압하는 걸 떠나 다양한 형태로 학살을 완성(?)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과정은 복잡하지 않고 둠 리부트처럼 매끄럽고 호쾌하게 전개된다.


전투의 재미는 분명 좋은 편이다. 아니 즐겁다.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오히려 아발란체 스튜디오가 개발한 '저스트 코즈' 시리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기믹의 전투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는 아발란체 스튜디오의 그간 경험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근미래 세계관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신나게 전투를 하고 있을 때쯤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크러시다. 게임 내 다수의 버그로 인해 튕김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최적화 이슈도 있어 안정적인 플레이가 어렵다. 또한 현지화 언어 부분에서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상당히 있다.


전투만 모아서 보면. 아주 좋은 게임처럼 느껴진다.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전투의 재미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아발란체 스튜디오는 저스트 코즈4에서 이런 문제를 상당히 노출했는데 레이지2 역시 이 부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다. 주인공과 인물들을 붕 뜨고, 이야기 전개는 어설프고 건조하게 흘러다가 갑자기 끝이 나버린다. 그리고 오픈 월드는 죽어 있는 상태다.


게임 내 이야기의 비중에 선택이 상위 기준이 되진 않지만 특정 장르에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오픈 월드 게임에서 말이다. 우리가 부수고 파괴하고 상대방을 날려버리는 과정이 계속적으로 즐거우려면 이런 활동이 통용되는 세계관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그래.. 전투는 정말 재미있다니깐. 그 뿐이서 문제지. <사진 출처: 이드 소프트웨어 홈페이지>


그게 없다면 레이지2 역시 학살을 즐기는 단순한 킬링 컨셉의 게임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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