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산업이 무시하던 중국에 밀린 근본적 이유
'미호요'가 2017년 붕괴 3rd를 한국에 출시했을 때, 한국 개발사들은 이런 '미소녀' 애니풍 장르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만약 된다면 조금 선전하다가 말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그들이 예측한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고 출시 초반부터 현재까지 좋은 매출 순위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런 성공을 한국 게임사들은 애써 무시했지만 붕괴 3의 선전은 여러 의미가 있었다. 조작 중심의 'PC 게임' 또는 '콘솔 게임' 같은 장르의 애니메이션식 액션 게임의 성공, 그리고 우리가 무시하던 실력이 떨어진다고 봤던 중국 개발사의 작품이라는 것. 좋은 교훈이 될 뻔한 소식은 언론과 개발사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3년 뒤 '원신'이 출시됐다. 안드로이드, iOS, 플레이스테이션 4(PS4), 닌텐도 스위치로 말이다. 3인칭 오픈 월드 방식의 액션 어드벤처인 이 게임은 첫 공개 당시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표절했다고 논란이 됐다. 하지만 게임이 정식 출시된 이후에는 표절 논란은 사라지고 '놀라움'만 남았다.
원신은 비공식적으로는 출시 2주 만에 1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발비는 완전히 회수하고 이후에는 모두 순이익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공식적인 수치가 아니므로 공식 발표를 기다려야겠지만 각종 매출 순위 상위권에 동서양 언론들이 앞다투어 분석 기사를 내는 것을 봐서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백도어'도 신경 쓰이고 최근 틱톡이나 여러 중국 관련 앱들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의견 등이 나오고 있어 설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신의 성공, 크게 보면 중국 게임의 대선전이 한국 게임 산업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원신의 등장뿐만 아니다. 1인 개발 게임으로 유명한 '브라이트 메모리 인피니트'는 엑스박스 시리즈 X(Xbox series X)로 출시가 예정돼 있는 FPS 게임이다. 이 게임은 FYQD(중국명: 飛燕群島)라는 예명을 쓰는 1인 개발자가 언리얼 엔진 4를 활용해 만들었다. 앞서 해보기로 공개된 게임에는 엄청난 호평이 이어졌다.
우주 정거장을 무대로 우주 조종사들의 총격전을 그린 '바운더리'나 PS4로 출시가 될 예정인 '아노: 뮤테이셔님', 어두운 스팀펑크풍의 '메트로바니아', 울티제로 스튜디오의 소규모 중국 개발사가 만들고 있는 '로스트 소울 어사이드', 협동 슈터 게임 '콘발라리아', 그리고 큰 충격을 안겨준 '블랙 미스: 오공' 등이 있다.
특히 블랙 미스: 오공은 '게임사이언스'라는 중국 스타트업이 약 2년의 준비를 거쳐 공개된 신작 액션 게임이다.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로 불리는 '서유기'를 언 리얼 엔진 4로 구현했다. 뛰어난 그래픽과 부드러운 액션, 그리고 화면을 압도하는 연출 등은 전 세계 어느 게임 기업과도 견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수준을 보여준다.
중국 게임 산업의 발전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공격적인 투자 분위기, 그리고 타국을 향한 적절한 견제 등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다. 중국의 게임 산업의 형태를 들어오는 것은 막고, 나가는 건 넓히자는 형태인데, 2017년부터 벌어진 중국 판호 규제 등 여러 이슈가 더해지며 시너지를 냈다.
한국 게임이 수출 상품 1위고 음악이나 영화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보다 많은 돈을 벌어준다고 한다. 이거 실제로 게임백서나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공개된 내용이므로 사실이다. 하지만 2013년 모바일 게임이 온라인 게임을 제치고 새로운 1위 플랫폼으로 도약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게임 산업은 어떤 발전을 했나.
개인적으로 생각할 땐 '없는 것' 같다. 수천 종의 게임이 개발되고 출시됐지만 기억 남는 건 '사건 사고' 등으로 얼룩진 '가챠 게임'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정말이다. 어떠한 콘텐츠든 재미 또는 콘텐츠만의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는 거기에 돈을 쓴다. 하지만 한국 게임은 과금을 하는 과정 자체를 콘텐츠처럼 포장해 제공한다. 과금이 콘텐츠의 재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러니 '아타리 쇼크' 때 마냥 신작들이 나와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 제목만 다른데 내부 구조는 비슷하다. MMORPG나 수집형 게임은 더 심하다. 독창적인 장르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인 게임들만 쏟아진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국 중급 게임들로 인해 설자리마저 부족해지고 있다.
우선 대기업 중심의 게임 산업 구조는 현재의 상황을 만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대기업에서 출시하는 제품들은 한결같은 형태를 띄게 된다. 이를 결정하는 오너와 임원들 입맛에 맞춘 형태의 게임이 아니면 출시는커녕 개발조차 어렵다. 그들의 다양성을 포기하고 흔히 말하는 '돈이 되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으니 뭔들 되겠나.
2010년부터 대기업들은 이름 있는 중견 개발사들은 인수 합병 등을 하며 세를 키웠다. 현재의 크래프톤도 레드사하라를 비롯해 이름 꽤나 있는 개발사들은 흡수해 현재의 규모가 됐고 넷마블도 협력사들을 빠르게 합병해 다수의 스튜디오를 가진 대형 개발사로 거듭났다. 넥슨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베데스다를 8조 7천억 원에 인수할 때 내놓은 규칙이 있다. 베데스다의 현재 임원진을 모두 그대로 두고, 게임 출시 및 개발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경쟁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5(PS5)로 출시가 예정된 게임도 그대로 출시하며, 이후에도 베데스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한국 게임 대기업들은 그렇지 못했다. 모든 게임은 특정 몇 명의 입맛에 맞춰졌고 게임 진행부터 과금 모델까지 판박이 같은 게임이 쏟아졌다. 게임 장면 하나 없이 만들어진 TV 광고들만 줄기차게 나왔다. 새로운 시도에 인색한 대기업들은 돈만 많이 벌지 산업에 투자하진 않았다. 한국 게임이 뻔해 보이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중견 개발사도 없고 그나마 괜찮은 개발사가 나와도 카카오게임즈나 큰 곳이 통 큰 투자로 흡수해버린다. 참신한 게임 '가디언 테일즈'의 개발사인 콩 스튜디오에도, 달빛 조각사를 만든 엑스엘게임즈에도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곁으로는 중견 개발사 같지만 사실 카카오게임즈의 외부 스튜디오라고 봐도 무관하다.
이런 구조에서 좋은 게임이 만들어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투자하는 측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넘어가면 주가 상승이나 수익 창출의 극대화를 요구한다. 경영진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개발진들을 앉혀 수익 중심의 라인업으로 재편하는 모습은 우린 수도 없이 봐왔다.
새로운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그게 소극적이어서 문제다. 공격적인 투자부터 5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2~3년 안에 결과부터 내라고 조른다. 그리고 투자 과정에서 이미 돈이 안될 것 같은 게임은 반응조차 나오지 않는다. 한국 개발사가 콘솔을 만들기 위해 투자 제안서를 돌려도 투자 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투자자들도 반응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배틀 그라운드의 성공으로 현재의 크래프톤이 완성됐으나 이런 건 '운'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뭐라도 해야 운이라도 터지는 것이다. 전혀 하지 않고 매번 하던 것만 하니 실패하지 않지만 성공도 하지 못하는 구조가 됐다.
두 번째는 보수적인 성향을 꼽을 수 있다. 당장 일본만 보면 자국의 시대, 세계관을 활용한 게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 무쌍' 시리즈 같은 작품은 당시 전국 시대 당시의 이야기를 입맛에 맞춰 각색하고 꾸며냈다. 일개 '배달꾼'이었던 닌자가 잠입의 완성품처럼 표현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 역시 위에서 언급한 블랙 미스: 우콩을 비롯해 봉신연의, 삼국지, 수호지 등의 게임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이나 서양도 다르지 않다. 인디 언과 기차, 그리고 보안관이 등장하는 서부 시대물은 새로운 형태의 장르, 시대 배경이 더해져 색다른 형태로 재창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게임을 만들면 사방에서 난리를 친다. 영화 '명량'의 배설 장군 왜곡 논란을 생각하면 된다. 당시 배설 장군의 후손들은 영화 속 이순신 장군에게 반하는 인물로 배설 장군이 표현되자 명량의 김한민 감독 등 영화 관계자들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콘텐츠에 대한 표용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솔직히 약과다. 우리나라에서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보수적이다. 과거의 사건이나 이야기, 그리고 여러 문화적 이야기를 현대 방식으로 어레인지 하거나 바꾸면 난리가 난다. 왠지 모르지만 불편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해 고증이니 뭐니 하면서 방해하기 시작한다.
문화라는 것이 사실 고전적으로 기억해야 할 측면도 있지만 계속 가꾸고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좋은 문화를 현대적인 장치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장난감- 등으로 발전시켜 나가면 자연스럽게 이를 접한 세대들에게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과정을 원천 차단한다. 예를 들어 전국 무쌍 같은 '삼국시대' 배경의 액션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후손들은 물론 각 지역의 문화 관련 공무원들이 가만히 있을까. 우리 선조가 언제부터 레이저 광선을 쐈냐고 고소부터 날릴 것이다. '어우동' 사건처럼 한복 관련된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6.25 같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사건 역시 게임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뭐만 하면 나오는 불편한 보수적 생각 때문이다. 전쟁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전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못하다 등 원색적인 비난부터 사소한 시비까지 제작자가 감당하지 못한 무수한 공격이 쏟아질 것이다.
당장 서양만 봐도 제1~2차 세계 대전 소재의 게임들이 넘쳐나고 미국의 흑역사 중 하나로 불리는 '베트남 전'을 소재로 한 게임도 당당히 출시되고 있다. 남북 전쟁 같은 고전 사례부터 실제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워'만 봐도 그들이 역사와 문화를 대하는 측면이 어떤지 알 수 있다.
한국 문화를 써야 한다는 말은 교육적 측면이나 그런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문화를 한국에서 소비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느 나라가 이해할까. 문제는 더 있다. 이런 문화를 활용한 콘텐츠를 제작 시에 협조할 공무원 또는 정부 관계자들이 제대로 된 가이드 조차 주지 못한다. 산업을 이해를 못하니 '못하게만' 한다.
마지막은 산업의 기초인 인디게임, 동인 시장 등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있다. 아주 작게 존재한다. 하지만 겨우 숨만 쉴 정도지 어떠한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부산에서 2015년부터 해오고 있는 'BIC 페스티벌' 등 인디 게임을 위한 대형 행사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디 게임과 동인 시장은 게임 산업 또는 문화 콘텐츠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것이 산업의 뿌리이자 근간이기 때문이다. 인디 게임에서 나오는 무수한 창의력과 동인 시장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콘텐츠는 산업 전반의 큰 힘이 된다. 규제 없이 만들어진 콘텐츠는 개성과 개방성, 다양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도 좋지 못하다. 인디 게임과 동인 시장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과 콘텐츠가 크게 엇나가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약간의 제도적 제한이 있었다면 산업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됐을 텐데 무시하거나 강력한 규제로 일관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동인 시장에서 겨우 나와 성장한 사람들은 정부나 기관 쪽에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타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특히 이렇게 나온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이 큰 사건으로 번지는 일이 잦아진 것도 이런 장치들의 부족으로 인해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저런 상황도 많고 시도가 꾸준히 이어진 것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위의 문제를 깨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 중인 것도 안다. 올바른 문화 인식 마련을 위해 힘쓰는 공무원분들부터 역사적 사실을 쉽고 즐겁게 전달하기 위해 신경 쓰는 분들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게임 산업은 미래의 먹거리이자 수출 상품이 부족한 내수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선 정말 필수적인 산업이자 꼭 발전시켜야 할 과제다. 전 세계 언론에서 연신 아이돌 그룹인 BTS를 다루고 그들이 만든 한국 노래와 멋진 뮤직 비디오, 패션, 춤에 열광하는 모습만 보면 한국 게임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결국 한계는 온다. 현재의 한국 게임 산업은 도박성을 띄고 있는 '확률성' 과금 모델에 묶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게 먹힐까. 원신 같은 시도는 언제쯤 한국에서 나올 수 있고, 북미 중심의 콘솔 시장에서 BTS나 블랙핑크처럼 흥하는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