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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Mar 26. 2023

당일치기 혼자 안산여행(2)

섬은 해무로 가득하고





느린 시골버스(어엿한 안산버스인데 시골버스라고 불러서 미안한데 생각보다 느긋한 버스의 운행 속도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소심한 비난이라 어쩔 수 없다.) 123은 한 시간 후에야 대부도의 남쪽 끝 탄도항 종점에 나를 내려주었다. 커피가 딱 생각나는 시간이라 두 군데 있는 카페 가운데 별 차이도 없지만 그나마 바다가 가까운 카페의 첫 손님이 되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집을 나와서 거의 레이스 하는 조바심으로 목적지에 닿으면 잠시 그 지역과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쓸 것도 없지만 노트북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잔뜩 낀 해무 덕분인지 차분한 풍경의 작은 포구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오갔다.

 

대부도는 경치도 좋은 곳이지만 재미난 곳이기도 하다. 이 섬은 위로는 시흥에 닿고 아래로는 화성이 건너편이다. 그래서 이 섬을 연결하는 방조제의 이름은 시(흥)화(성) 방조제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안산에 속해 있는데 안산 땅만 밟고는 갈 수 없다. 시화호를 건너가면 모를까. 그 와중에 뜬금없이 인천이 등장하는데 전화 지역번호는 032를 쓴다. 광명시가 경기도이지만 02를 쓰는 것과 비슷한데 지리적으로나 지역번호적으로나(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보나 대부도 주민들은 안산시민이라는 정체성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인천이나 화성에 가까울 듯한데 대부도 토박이를 만나 물어보진 못했다. 아래위로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 대부도는 섬인 듯 아닌 듯 하지만 섬이고 안산인 듯 아닌 듯 하지만 안산이다. 해무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화성 전곡항에서 시작해 대부도 말고 제부도 가는 케이블카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전국 각지 명승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거나 설치 중이거나 설치를 추진 중이다. 가기 힘든 곳을 쉽게 데려다주고 보지 못하던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줘서 좋긴 한데 꼭 그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이방인이 속단하기 힘든 주제라 케이블카를 보는 마음은 늘 깔끔하지 못하다.


탄도항은 안산 여행의 시작점이자 대부광산퇴적암층을 가기 위해 닿아야 하는 곳이라 특별히 뭘 찾아보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카페에 차분히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전곡항 케이블카도 보이고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면 닿을 수 있는 누에섬과 그 바닷길 위에 있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도 있었다. 케이블카까지는 탈 시간이 없을 것 같고 열린 바닷길을 따라 섬을 다녀오는 것은 좋을 것 같아서 마시던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서 카페를 나왔다.

때마침 썰물이라 바닷길이 계속 열리고 있었다. 누에섬까지 가는 콘크리트 길은 반듯했다. 밀물썰물에 따라 열리는 바닷길을 신비라고 부르는 건 물이 들어왔을 때 범접하지 못하는 바다 깊숙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비로운 바닷길을 감싼 건 짙은 해무였다. 뿌연 해무는 모든 풍경을 다 삼켜서 해무톤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단순한 바다의 모습이 더 단순해져서 사진에 욕심을 내고 말았다. 사진을 찍자고 나선 여행이 아님에도 좋은 구도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풍경 사진에 풍경만 있으면 밋밋해서 사람을 담으려고 애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의 전속 모델이 아닌 그들이 내 입맛에 맞게 움직여줄 리가 없으므로 찾고 기다려야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정작 마음에 드는 사진은 찍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실 사진에 너무 집착하면 정작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풍경을 자꾸만 사각 프레임 안에 가둬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오로라를 보러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갔을 때도 그랬다. 좋은 사진 몇 장은 건졌지만 그 사진은 전문가들이 찍은 사진보다는 당연히 못했고 좋은 사진은 그들의 사진으로 보면 되니까.


나의 사진과 무관하게 탄도항에서 누에섬에 이르는 바닷길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을 만큼 멋진 곳이었다. 다만, 누에섬 꼭대기에는 등대전망대라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등대가 있고(제 기능을 하고 있겠지?)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전시관이 그 아래에 있다. 딱히 볼 것은 없지만 엉성하게 만든 팸플릿도 비치하고 있고(읽은 만한 내용이 없다.)  관리인도 있다. 뭘 지어놓았으니 관리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데 굳이 이 자리에 이런 건물을 올렸어야 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등대 하나만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머리 꼭대기에 뭔가 무거운 걸 지고 있는 누에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되돌아오는 길에는 고개를 한참이나 젖혀야 끝이 보이는 높이에서 바람개비는 맞는데 바람개비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삼발이(삼팔이인가?)가 부웅부웅 돌아가고 있었다. 해무는 솟아오르는 대로 바람을 따라 흐르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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