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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Mar 12. 2023

당일치기 혼자 안산여행(1)

집 나서면 고생이라도

입춘이 지나서 이제 봄일까 싶었지만 그리 호락호락하면 봄이 아니지. 날은 여전히 쌀쌀해서 바깥나들이를 주저하게 했다. 여섯 시에 맞춰둔 알람은 여섯 시에 울렸다. 야속하게도 봐주지 않는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니 10분만 더 자겠다며 알람을 눌러 껐고 싸한 느낌이 들었을 때는 이미 20분이 더 지나 있었다. 안산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어젯밤 일이었다. 스스로 정한 소도시 기행의 후보지에 집에서 멀지 않은 안산은 늘 들어 있었고 멀리 가기 애매한 상황이 오면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상황이라는 것이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혼자 놀러 다니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관용도를 따른다. ‘나 이번 주에 소도시 기행 할 건데.’라고 던졌을 때 아내의 표정이 부드러우면 의성을 갈 참이었고 ‘가도 되긴 하는데…’를 암시하면 안산이었다. 주말에 우리들 저녁은 누가 해주냐는 말에 안산으로 결정되었다. 의성까지 내려간다면 밤 12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올 것이므로. 의성아 다음에 만나자꾸나.


인구가 64만이나 되는 도시를 소도시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지만 안산을 간다고 하면 ‘거기 가서 뭐 하게?’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관광지로 이름나지 않는 곳을 찾는 소도시 기행의 대상으로는 적합한 곳이었다. 아내의 반응도 그랬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가서 마구마구 정처 없이 돌아다닐 수는 없으므로 일정을 짜기 위해 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안산시청이 소개하는 안산 9경은 순서대로 시화호조력발전소, 대부해솔길, 구봉도 낙조, 탄도 바닷길, 풍도, 동주염전, 안산 갈대습지, 다문화거리, 노적봉공원이다. 안산 하면 대부도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9경 가운데 네 군데가 대부도에 있는 곳이었다. 하룻만에 다 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선을 짜보기 위해 네이버 지도에 아홉 곳을 즐겨찾기 했다. 대략 대부도 남단인 탄도항에서 시작해서 대부광산퇴적암층을 거쳐 동주염전까지 걷고, 시화호조력발전소에 들렀다가 다문화거리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면 물 흐르듯 적당할 듯했다. 안산역 근처에 있는 경기도미술관이나 산업역사박물관도 혹시 몰라 점찍어 두었다.


일단 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목적지는 대부도 탄도항이었다. 전날 밤에 미리 챙겨두긴 했지만 출발 직전에 이것저것 챙기느라 6시 40분이 돼서야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6614번 버스를 타고 오류역 버스 정류장으로 간 뒤 거기서 시흥으로 가는 5200번 버스를 갈아타고 이지더원(아파트 이름이더라)이라는 곳에서 다시 대부도 들어가는 123번 버스를 타면 된다. 경기도지만 어쨌든 수도권이니 배차시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10분에 한 대씩은 있겠거니 하고.  오류동에 도착하니 5200번 버스가 좀 전에 떠났다. 그다음 버스는 20분 뒤에 왔다. 날이 생각보다 쌀쌀했다. 덜덜 떨면서 더 부지런하지 못함을 탓했다. 5200번 버스는 달렸다. 신도림을 출발해 부천을 지나 시흥까지 가는 버스는 금세 시골 같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다음 환승장소 도착 시간 15분 정도 전부터 123번 버스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이지더원 정류장 기준으로 5200번과 123번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5200번이 8분 28초 남았을 때 123은 7분 55초였고, 다시 123번이 6분 14초가 되자 5200번은 6분 43초가 되는 식으로 두 버스가 엎치락뒤치락했다. 이지더원에서 다음 123번은 50분이나 뒤에 온다고 하니(아뿔싸!) 무슨 일이 있어도 5200번이 이겨야 했다. 마음속으로 5200번 버스 기사님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데 배차시간 조절 때문인지 뒷자리에 앉은 손님이 그러거나 말거나 버스는 특별히 더 빠르게 가지 않았다. 거의 10초 단위로 두 버스 도착시간을 조회하고 있는 꼴이라니. 10분만 일찍 나왔어도 마음 편하게 버스를 갈아탈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한테 늘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일렀는데 저절로 부끄러워졌다.


두 버스의 숨 가쁜 레이스 끝에 이지더원 정류소를 앞두고 직진하는 5200번 버스는 좌회전을 해야 했던 123번 버스를 1분 차이로 따돌렸다. 조바심에 전전긍긍, 안절부절못했지만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나는 차분하게 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듯 123번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이다!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버스벽에 배차시간이 적혀 있는데 평균적으로는 40분 정도고 빠르면 20분 정도였다. 대부도가 시골이었구나. 허허벌판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50분씩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어져서 편안한 마음으로 풍경을 감상했다. 달리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은 123번 버스는 제때 나와서 기다릴 사람들을 위해 느림보 걸음으로 대부도를 향해 움직였다.


시화호 방조제 위에 올라 선 버스는 오른쪽에는 인천 앞바다, 왼쪽으로는 시화호를 끼고 이른 아침 해무를 갈랐다. 바다와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버스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아슬하게 줄타기하듯 미끄러져 갔고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을 벗어났을 뿐인데 짙은 안개로 가득한 바다와 호수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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