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별곡
연말 인사철, 회사에서는 사람이 들고 나고 오르내린다. 축하할 일도 생기지만 정해진 미래에 따라 안타까운 이별도 있다. 누군가는 조직에서 그만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훌륭한 선배를 떠나보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회사 생활을 25년 가까이 하는 동안 운이 좋은 편이어서 닮고 싶은 등을 보여준 선배들을 많이 만났고, 그 선배들에게 배운 것들이 하나씩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큰 빚을 진 셈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회사의 선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존경하고 좋아하는 어떤 선배가 올해를 끝으로 조직을 떠난다고 하니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보자 싶어 그와 함께 일하면서 큰 배움을 얻었던 두 가지 결정적인 장면에 대한 이야기로 그를 기억해 본다.
# 장면 1
그는 우리 부서의 부장이었고 나는 팀장이었다. 팀원은 두 명이었다. 우리 부서는 그룹의 내로라하는 어르신들 수십 명이 참석하는 1박 2일 일정의 워크숍을 주관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장소에서 개최된 워크숍 첫 번째 날 일정은 실내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었고, 둘째 날은 야외에서 하는 오전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편은 3시 정도로 잡혀 있었다. 첫째 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날 일정을 준비하는데 난데없이 새벽부터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길 기대했으나 비가 그치기는 난망해 보였고 둘째 날 야외 일정은 소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마땅한 플랜비가 없어서 비행편을 변경하고 일찍 서울로 돌아가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수십 명의 항공권을 한꺼번에 변경하느라 나를 포함한 실무진은 거의 공황상태가 되었다. 항공사와 여행사에 전화를 돌리고 비행편을 수소문했다. 심지어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일분일초가 긴박하게 돌아간 비상상황이었고 비행편 변경 말고도 후속 조치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거의 한 시간 만에 상황이 수습되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상황을 수습하는 내내 책임자였던 그는 한 번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당연히 재촉 한 번 하지 않았다. 내가 알던 우리 조직의 장들은 대개 그런 상황이면 10분 단위로 ‘어떻게 됐어?‘, ‘된대?’, ‘몇 좌석이나 확보했냐?’, ‘몇 시 비행기냐?’, ‘어르신들 좌석은?’ 이러면서 조바심을 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조직 생활을 했었고.
나중에 그에게 물었다. 한 번쯤은 중간에 상황 보고라도 받았을 법한데 신기하게도(!) 왜 나타나지 않았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내 새끼들이 잘 해결해 낼 거라고 믿는데 직접 전화 한 통 돌릴 거 아니면 나타나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 그리고 부장인 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재촉하면 너희들 긴장하고 쫄려서 일을 침착하게 할 수 있었겠냐. 그래서 그랬다.”
처음이었다.
그런 여유를 갖고 고도로 의도된 행위로서의 리더십을 보여 준 부장은.
# 장면 2
그의 보스한테서 어떤 사안에 대한 검토 지시가 내려왔다. 그는 보스한테서 들은 내용과 행간에 있는 뉘앙스까지 설명해 주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보라고 했다. 대체로 조직에서 검토 지시라는 것은 검토가 아니라 실행 지시에 가깝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보스는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분이라 당연히 그 지시에는 어떤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업무 경험과 지식 범위 안에서는 리스크가 제법 큰일이었다. 암묵적 지시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가 없어서 있는 서너 가지 꼭지를 잡고 그대로 다 드러내놓고 보고서를 썼다. 쓰다 보니 ‘저언하 아니 되옵니다’급의 격문에 가까워졌는데, 실무자의 미덕은 모든 정보를 다 보고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나의 보고서가 좀 과하다면 보스의 뜻을 아는 그가 적절하게 톤을 조절하거나 일부는 들어낼 것이라는 생각도 당연히 있었고. 앞뒤 안 가리고 내 주장을 내세우던 시절이었다. 평소에도 받아줬으니까.
그런데, 그는 내가 쓴 보고서를 슥 읽어 보더니 곧장 보스의 방으로 올라갔다. ‘괜찮을까? 진짜?’ 얼마 후 그가 돌아왔다. 보스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는 보고하는 사람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기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보고를 받은 보스의 레이저를 원 없이 맞았다고 했다. 그 대가로 보스의 뜻을 어렵게 꺾었다고도 했다.
원망 섞인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레이저 맞을 걸 뻔히 아셨으면서 왜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가셨냐고.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야 이 사람아. 네가 쓴 말이 다 맞고 내 생각도 같은데 내가 고치고 말 게 뭐 있나. 그냥 내가 보스한테 레이저 몇 방 맞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그랬다.”
처음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희생하면서 부하 직원이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부장은.
# 에필로그
그때 당시 그의 나이와 비슷해진 지금의 나는 저 두 장면을 등대삼아 그를 닮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반쯤이나 되는 부장인가 싶다.
이제 바야흐로 그렇게 원했던 딴따라 한량으로 돌아가는,
멋과 풍류를 알고 단단한 품격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나의 선배 YS를 기억하며…
[퇴임하는 어느 멋진 선배 이야기]
연말 인사철, 회사에서는 사람이 들고 나고 오르내린다. 축하할 일도 생기지만 정해진 미래에 따라 안타까운 이별도 있다. 누군가는 조직에서 그만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훌륭한 선배를 떠나보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회사 생활을 25년 가까이 하는 동안 운이 좋은 편이어서 닮고 싶은 등을 보여준 선배들을 많이 만났고, 그 선배들에게 배운 것들이 하나씩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큰 빚을 진 셈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회사의 선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존경하고 좋아하는 어떤 선배가 올해를 끝으로 조직을 떠난다고 하니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보자 싶어 그와 함께 일하면서 큰 배움을 얻었던 두 가지 결정적인 장면에 대한 이야기로 그를 기억해 본다.
# 장면 1
그는 우리 부서의 부장이었고 나는 팀장이었다. 팀원은 두 명이었다. 우리 부서는 그룹의 내로라하는 어르신들 수십 명이 참석하는 1박 2일 일정의 워크숍을 주관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장소에서 개최된 워크숍 첫 번째 날 일정은 실내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었고, 둘째 날은 야외에서 하는 오전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편은 3시 정도로 잡혀 있었다. 첫째 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날 일정을 준비하는데 난데없이 새벽부터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길 기대했으나 비가 그치기는 난망해 보였고 둘째 날 야외 일정은 소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마땅한 플랜비가 없어서 비행편을 변경하고 일찍 서울로 돌아가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수십 명의 항공권을 한꺼번에 변경하느라 나를 포함한 실무진은 거의 공황상태가 되었다. 항공사와 여행사에 전화를 돌리고 비행편을 수소문했다. 심지어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일분일초가 긴박하게 돌아간 비상상황이었고 비행편 변경 말고도 후속 조치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거의 한 시간 만에 상황이 수습되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상황을 수습하는 내내 책임자였던 그는 한 번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당연히 재촉 한 번 하지 않았다. 내가 알던 우리 조직의 장들은 대개 그런 상황이면 10분 단위로 ‘어떻게 됐어?‘, ‘된대?’, ‘몇 좌석이나 확보했냐?’, ‘몇 시 비행기냐?’, ‘어르신들 좌석은?’ 이러면서 조바심을 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조직 생활을 했었고.
나중에 그에게 물었다. 한 번쯤은 중간에 상황 보고라도 받았을 법한데 신기하게도(!) 왜 나타나지 않았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내 새끼들이 잘 해결해 낼 거라고 믿는데 직접 전화 한 통 돌릴 거 아니면 나타나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 그리고 부장인 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재촉하면 너희들 긴장하고 쫄려서 일을 침착하게 할 수 있었겠냐. 그래서 그랬다.”
처음이었다.
그런 여유를 갖고 고도로 의도된 행위로서의 리더십을 보여 준 부장은.
# 장면 2
그의 보스한테서 어떤 사안에 대한 검토 지시가 내려왔다. 그는 보스한테서 들은 내용과 행간에 있는 뉘앙스까지 설명해 주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보라고 했다. 대체로 조직에서 검토 지시라는 것은 검토가 아니라 실행 지시에 가깝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보스는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분이라 당연히 그 지시에는 어떤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업무 경험과 지식 범위 안에서는 리스크가 제법 큰일이었다. 암묵적 지시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가 없어서 있는 서너 가지 꼭지를 잡고 그대로 다 드러내놓고 보고서를 썼다. 쓰다 보니 ‘저언하 아니 되옵니다’급의 격문에 가까워졌는데, 실무자의 미덕은 모든 정보를 다 보고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나의 보고서가 좀 과하다면 보스의 뜻을 아는 그가 적절하게 톤을 조절하거나 일부는 들어낼 것이라는 생각도 당연히 있었고. 앞뒤 안 가리고 내 주장을 내세우던 시절이었다. 평소에도 받아줬으니까.
그런데, 그는 내가 쓴 보고서를 슥 읽어 보더니 곧장 보스의 방으로 올라갔다. ‘괜찮을까? 진짜?’ 얼마 후 그가 돌아왔다. 보스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는 보고하는 사람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기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보고를 받은 보스의 레이저를 원 없이 맞았다고 했다. 그 대가로 보스의 뜻을 어렵게 꺾었다고도 했다.
원망 섞인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레이저 맞을 걸 뻔히 아셨으면서 왜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가셨냐고.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야 이 사람아. 네가 쓴 말이 다 맞고 내 생각도 같은데 내가 고치고 말 게 뭐 있나. 그냥 내가 보스한테 레이저 몇 방 맞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그랬다.”
처음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희생하면서 부하 직원이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부장은.
# 에필로그
그때 당시 그의 나이와 비슷해진 지금의 나는 저 두 장면을 등대삼아 그를 닮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반쯤이나 되는 부장인가 싶다.
이제 바야흐로 그렇게 원했던 딴따라 한량으로 돌아가는,
멋과 풍류를 알고 단단한 품격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나의 선배 YS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