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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Dec 18. 2018

에어비앤비 트립 호스트 이야기

남자 넷은 처음이라

내 트립은 한식 집밥 쿠킹 클래스다.

손님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제 발로 찾아오는 남성은 별로 없다. 있다 해도 어쩌다 한 명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나 여자친구를 따라 와서 혹독한(!) 주방일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이나 우리 나라나 남자는 요리보다는 다른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올해 마지막 클래스에는 처음으로 남자 넷이 왔다. 네 명이 전부 일본사람으로만 구성된 것도 처음이다. 이래 저래 유의미한 마지막 클래스였다. 


손님의 예약이 들어오면, 먼저 에어비앤비에 공개된 프로필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나름대로 떠올려본다. 손님의 정보를 가능하면 많이 알고 있어야 더 친숙하게 대할 수 있고 손님의 특성, 취향, 직업 등에 맞춰서 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명 가운데 예약을 한 케이의 정보만 확인이 가능했는데, 밝게 웃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 말고는 딱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이들이 누구일까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아내의 가설은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프로 요리사들이 한식 집밥 강의를 들으러 온다고? 그것도 네 명이 무리를 지어서? 


늘 그랬듯이 목동역에서 그들을 만났고, 20대의 젋은 직장 동료들이었다. 나는 직장 동료와 해외 여행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만, 그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우리만큼 직장 동료를 가족(!)처럼 생각하나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일본 사람 개개인한테는 배울 점이 많다. 2년 동안 쿠킹 클래스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네 명이 동시에 자기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들어왔다. 이 녀석들 참 예의바르다고 매너 있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깜짝 놀란 아내는 바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이들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서란다.


그런 첫인상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쿠킹 클래스 내내 바뀌지 않았다. 젊은 청년들이 어쩜 그렇게 차분하고 섬세하고 반듯한지.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역대급으로 편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 한다.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어떨 때는 분위기가 좋아도 클래스가 끝나면 지칠 때가 있는데 이날만큼은 후유증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이들이 모두 친구인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사실 네 명이지만 서로 다른 그룹에서 오면 호스트 입장에서는 에너지가 더 크게 소모되기 마련이다. 


좋은 분위기 덕에 요리도 잘 됐고, 식탁 위에 올라간 음식도 거의 다 먹어서 흐뭇했다. 해놓은 밥이 모자랄까봐 걱정한 것도 처음이었다.


유쾌하고 반듯한 청년 네 명과 함께 한 클래스로 올해 에어비앤비 트립은 마무리했다. 올 한 해도 전 세계에서 와 준 수많은 손님들과 함께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 수 많은 손님들로 행복한 한 해였다.


다음 포스팅은 2018년 결산으로 부문별(재미 부문, 감동 부문, 당황 부문 등등) 최고의 손님들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자체 연말 시상식 같은 거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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