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을 바라보는 친구의
70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회사 포탈에 올라온 부음에는
고인과의 관계
장례식장의 위치와 발인 날짜
계좌번호가 알아보기 좋은
포맷에 정돈되어 있었다.
부음을 읽은 사람들이
직접 조문을 해야할지
조위금을 얼마나 전달해야 할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것들이다.
누군가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일도
사회생활의 일부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게 회사다.
나는 거기에 딱 맞는 만큼의
성의 표시를 했다.
그리고 그의 슬픔을 헤아리지 않았다.
장례가 끝난 친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의 방식대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도하고 추억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친구가 올린 아버지의 사진을 보자
7년 전 돌아가신 울 아버지 생각이 났다.
댓글을 달까 하다 전화를 걸었다.
이제 고아가 되었다는 그의 글에
70을 바라보는 울 엄마가
90 넘은 할머니를 보내시고
똑같은 말을 하시더라는 말로
위로를 전했다.
이제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는
50을 바라보는
우리는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너의 목소리도 나의 목소리도
같은 주파수로 떨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