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호스트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그도 나도 오프라인 호스팅을 못하고 있지만 그때 맺은 인연으로 가끔 안부를 주고 받고 있다. 그는 플로리스트다. 자영업자다. 소위 꽃집이라 부르는 매장을 갖고 있지 않지만 꽃꽂이 강좌(플라워 클래스라고 불러야 되나)를 운영하거나 꽃 주문을 받아서 생업을 이어가는 분이다. 어쩌다 보니 그 분의 클래스도 한 번 들은 적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어 꽃이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주문을 한다. 그가 만든 작품은 단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다. 고객의 개떡 같은 요구사항을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
요즘 저녁에 사람들 못 만나게 되어 있으니 모임에서 만날 일은 없고 어쩌다 꽃을 주문하면 짧지만 얼굴을 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도 회사에서 꽃이 필요해서 주문했더니 직접 들고 오셨다. 회사 1층 로비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나 주제는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였다. 건물에 갇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직장인과 달리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하루하루를 직접적인 수치로 체감한다. 최근에 단골집이 문을 닫아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말에 J님은 존버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꽃은 경기를 많이 타는데 불경기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찾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한다. 그래서 꽃바구니 하나, 꽃다발 하나 주문이 들어오는 것도 너무나 고마운 상황이란다. 사람이 모이지 못하니 클래스는 언감생심. 그래도 버텨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하는 한숨 섞인 말은 절규처럼 들렸다.
워낙 평소에 편하게 이야기를 하던 터라, 나도 모르게 지난 상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올해 12월이면 직장생활 만 20년이 되는데 아홉수 때문인지 올해가 제일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다. 매일 아침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씻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짐짝처럼 실려와서 좀비처럼 회사 현관문으로 들어갔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생기를 되찾는 이 일상이 너무도 지겹고 그걸 20년이나 할 줄 몰랐다.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배부른 소리 같아도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인 것이니 누구에게나 각자의 맥락과 상황이 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여도 직장도 천국은 아니다. 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도 전쟁은 여지없이 벌어져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희로애락이 예상치도 못한 때에 시도 때도 없이 점멸한다. 그 어떤 것도 다 감수할 만큼 좋기만 하다면 퇴사자도 열외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먹고사는데 크게 걱정 없을 만큼 든든한 직장이 있다면 괜찮지 않냐며 나올 생각을 하지 말란다. 직장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영업자가 된다는 것, 코로나 시기를 버텨나간다는 것은 눈앞에 절망의 그림자가 수시로 어른거리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감히 그 그림자의 짙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언어는 경험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말을 하니 그럴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막상 그만 둘 용기도 없고 그만둔다 한들 뭘 할지 계획도 뚜렷하지 않아서 아마도 당분간은 그냥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남들은 이것저것 취미로 즐기는 활동이 좋은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전업이 될 만한 정도의 노력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이러나저러나 대안이 없으니 다닐 수밖에 없지만 죽겠다 죽겠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자영업을 하는 그의 말대로 그래도 직장인은 그것도 번듯한 곳에 다니는 직장인은 상황이 낫다. 이 가시덤불 속에서 힘들다 한들 저 밖의 거대한 정글의 삶에 갖다 댈 수 있겠나.
호강에 겨워 배부른(실제로 요새 배가 많이 나와 걱정이다) 직장인은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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