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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Sep 07. 2021

직장인의 주말 루틴


죽어도 일어나기 싫은 월화수목금과 달리 토일에는 6시가 되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하기 싫은 일(회사 가기)은 최대한 미루고 싶고 하고 싶은 일(회사 안 가기)는 최대한 즐기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뭔가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 상태가 좋을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행복은 더 자주 찾아온다. 가령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다든가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거나 지난한 여름이 끝나서 시원해지는 것들 말이다.



회사원은 회사를 안 가는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당장 다음 주부터 어려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우선 회사를 안 가는 주말엔 다 잊으려고 애쓴다. 주말을 기꺼이 즐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회사를 안 간다는 것은 앞으로 영원히가 아니라 잠시 안 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돌아갈 회사가 있어야 잠시 쉬는 순간도 행복할 것이다.



아직은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주말은 1박 2일을 시작하는 시간 이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여유와 행복으로 가득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뭐 하냐고? 눈이 번쩍 떠지고 몸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테니스를 치러 나간다. 내가 속한 테니스 클럽은 주말에 6시부터 9시까지 운동을 한다. 그 사이에 아무 때나 가면 좋은 사람들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재미있는 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얼핏 보면 초록색 공 하나에 네 명의 선수들이 우왕좌왕하며 저희들끼리 노닥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모든 일을 다 잊고 뭔가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몸도 좋아지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도 있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테니스를 치러 가기 애매해지거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을 때는 집에 있는 걸 택한다. 가족들은 10시가 훌쩍 넘어야 일어나기 때문에 대략 2~3시간 정도는 나만의 시간이다. 집안은 조용하고 아침 햇살은 적당히 거실로 들어와서 차분하다. 창밖은 언제나 하늘 반 산 반이다. 하늘색, 초록색 반반이다.



요즘 맛들이기 시작한 스페셜티 커피가 좋은 친구가 된다. 핸드밀에 잘 볶은 원두 20그램을 넣고 드립용으로 간다.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와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이 경쾌하다. 원두가 갈라지고 깨지면서 짙은 향을 뿜어낸다. 드리퍼에 잘 올린 다음 툭툭 쳐서 가지런히 고른 다음 물을 조금 부어 뜸을 들인다. 다층적인 커피향이 본격적으로 풍기기 시작한다. 봉긋한 커피빵 위로 가는 물줄기를 내린다.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는 사이 서버에는 짙은 갈색의 커피가 차오른다. 두 세 번에 걸쳐 200 밀리미터 정도 내린다.



아무 컵에나 따르면 안 된다. 혼자 있을수록 더 멋있게. 제일 아끼는 컵에 커피를 따라 베란다로 들고 간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내가 만든 작은 나무 마루가 하나 있다. 앉아도 좋고 누워도 좋을 크기다. 그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신다. 혀 끝에서 음미하고 코 끝에서 음향한다. 목 뒤를 타고 거꾸로 향이 전해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회사를 가지 않는다는 가장 근원적인 기쁨에다 홀로 즐기는 커피 한 잔을 얹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있나 싶다. 나는 그 행복의 순간을 최대한으로 느끼고 기억하려고 한다. 행복하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드라마처럼 극적이지 않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당연한 하루에 감각을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불행해지지 않는 지름길이 아닐까....



큰 일이다. 아직 화요일인데, 벌써 이번 주말엔 어떤 커피를 마셔야할지 고민된다.



#일상 #주말 #주말생활 #일상이야기 #일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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