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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Sep 13. 2021

직장인의 영어공부 꼭 해야 하나

직딩일기

제목을 보면 마치 직장인의 영어공부 하는 비법을 적을 것만 같지만 영어공부에 애당초 비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직장인의 영어공부의 목표이다.

많은 직장인이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한다. 많은 참고서를 사서 보고 학원을 다니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원어민과의 대화 기회를 찾아다닌다. 그 사이 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알아보기 위해 토익 같은 시험도 쳐본다. 내가 영어만 좀 잘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회사의 선배 하나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아이들은 최소한 그러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기도 했다. 직장인이 자기 계발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만만하거나 손쉽게 기댈 수 있는 곳이 바로 영어이다.


그렇다면 정말 영어를 잘하면 회사에서 출세하는데 큰 도움이 될까? 만일 출세에 도움이 된다면 영어를 도대체 얼마나 잘해야 할까?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도 출세할 길은 없는 것일까? 영어 말고는 나의 가치를 높일 만한 테마는 정녕 없는 것인가? 의문이 꼬리를 문다.


개인적인 경험부터 이야기해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중학교 2학년 이후부터 여태까지 영어공부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위에서 말했던 영어공부 방법 중에 안 써본 것이 없다. 몇 개월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외국 생활도 조금 해봤다. 영어 100%로 진행하는 우리나라 대학원 과정도 마쳤다. 그래서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그러면 이런 영어실력이 회사 생활하는 데는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얼마 안 있으면 직장생활 시작한 지 만 20년이 되는데 올해 처음으로 업무적으로 영어를 쓸 기회가 생겼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고 보조적으로 업무를 조금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영어 덕분에 일이 조금 수월한 면은 있지만 영어를 못하는 동료들보다 나의 가치가 그것 때문에 월등히 높아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적성에 따라 업무를 맡기 위해서는 적당한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어필을 하더라도 영어를 위주로 쓰는 업무 담당자가 되려면 시점도 맞아야 하고 부서 내 인력 구성 계획과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처럼 국내 영업을 위주로 하는 회사에 다니는 한 영어실력을 뽐낼 만한 자리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글로벌 사업부나 외국인 투자자들 상대하는 IR부 같은 곳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조직의 인력은 많아야 수십 명 수준인데 6개월 단위로 인력이 교체되지 않는 한 기회를 잡는 일은 용이하지 않다.


그리고 자리가 난다 하더라도 누구를 쓰겠냐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어가 업무에 상당히 필요한 어느 부서의 장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외국인 고객과 만남이 잦은 부서의 특성상 가능하면 외국에서 학교를 나와서 영어 실력뿐 아니라 문화적 맥락까지 제대로 아는 사람을 쓰고 싶다. 그러니까 영어를 쓰는 부서에서 근무하려면 영어를 정말정말정말정말 잘해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섣부른 결론을 내 보면,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 안 하다가 입사 한 다음에 업무적으로 영어로 빛을 내보고 싶어서  30대, 40대에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는 동료가 있다면 말리고 싶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것에 비해 효용이 너무도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 지금 당장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단어 하나라도 외워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해야겠지만 위에서 말한 그런 목적이라면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영어공부하지 말라는 것이냐. 아니다. 영어공부해도 좋다. 단 목적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30년 넘게 영어공부를 해서 덕을 본 분야는 업무가 아니라 취미였다. 취미인 요리와 영어가 만나니 취미의 깊이와 넓이가 더욱 확장되었다. 영어로 된 요리책을 보면서 요리를 공부할 수 있었고, 에어비앤비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식 쿠킹클래스를 온오프라인으로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들과 함께 한 경험과 네트워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되었고 내 삶을 풍요롭게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전 세계 에어비앤비 체험 호스트들 앞에서 멋있게 영어로 연설하는 꿈도 꿔본다.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무작정 영자신문이나 CNN을 달려가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영어로 된 자료들을 읽기 위해 용어를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외국어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꼭 어떤 특정한 취미가 아니더라도 그저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을 즐기는 것, 즉 영어 자체를 취미로 삼고 새로운 표현을 익히고 활용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면 영어공부가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번역기 수준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한 페이지를 번역해 보면 단어 몇 개만 손보면 될 정도로 정교하다. 이런 세상에 내가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경쟁력이 될까. 꼭 뭐가 되겠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마음 편하게 먹고 영어 공부하는 것 자체를 즐기면 어떨까? 더구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뇌를 깨어나게 해서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트레스만 떨쳐 내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그런 관점에서 영어를 바라보자. 직장생활 하다 보면 업무, 인간관계 등등에서 스트레스받을 일 얼마나 많은가. 기약도 보장도 없는 영어까지 내 만수무강에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나. 영어 공부를 하더라도 목표의 방향을 조금 틀어서 Just relax and enjoy!!!


PS) 나는 퇴직을 해서 시간이 많아지면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독일어를 다시 공부해 볼 생각이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고 비록 2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간 공부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한국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멋있어 보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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