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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Oct 12. 2021

엄마의 시골밥상 #3

손칼국수

시골 출신들은 저마다 손칼국수에 대한 향수가 있다.

어릴 적 할머니가 엄마가 만들어 주신 손칼국수 맛은 이후에 먹게 될 모든 종류의 칼국수의 기준점이 된다.

그리고 그 칼국수 맛에는 항상 밀가루를 치대서 반죽하고 홍두깨로 둥글넓적하고 얇게 밀어서 접은 다음 가지런하게 자르는 장면이 겹친다.

그래서 나같은 시골내기는 손칼국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의 다섯가지 감각이 동시에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시계를 대략 40년 전으로 돌려보면 칼국수를 미는 사람은 늘 할머니였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할머니는 대청마루에서 자리를 펴고 앉아 홍두깨를 앞뒤로 밀며 고운 밀가루를 길다랗고 납작한 면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

할머니는 안 계셔도 칼국수는 먹고 싶었다.

그 때 그 시골집 마루에서.

시골에 계신 엄마께 넌지시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다.

할머니가 그랬듯이 엄마도 당연히 그동안 칼국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칼국수를 직접 밀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의 기력이 쇠한 뒤로는 칼국수가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간장, 된장을 기가 막히게 만들면서 고추장을 담글 줄 모른다는 고백 이후 두 번째 반전.

모든 엄마가 특히 시골에 사는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엄마는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할 때 주저함이 없다.

반죽은 이웃집 아지매와 내가 맡았다.

중력분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고 물을 부어 갠다.

시골 레시피가 그렇듯 양은 적당히이다.

반죽이 어느 정도 뭉쳐지고 부드러워지면 본격적으로 펴나갈 차례.

홍두깨라고 부르는 이 나무막대기가 핵심 도구.

나무판과 홍두깨 모두 할머니 때부터 쓰던 귀한 것이다.

대를 이은 물건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쓰이고 있을 때 과거와 현재를 잇던 느슨한 끈이 팽팽해지는 것을 느낀다.


엄마는 역시 엄마였다.

칼국수 밀어 본 적 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홍두깨를 잡으니 할머니가 부리던 마법이 엄마의 손끝에서도 재현되었다.

엄마의 손은 반죽을 따라 좌우로 분주하게 오갔다.

둥근 반죽은 조금씩 면적을 넓혀갔다.

그리고 얇아졌다.

홍두깨에 말린 반죽은 눌러지고 펴지기를 반복했다.

골고루 흩뿌려진 덧밀가루는 한 몸인 듯 아닌 듯한 반죽의 경계를 뚜렷하게 해주었다.


칼질은 칼국수면을 만드는 마지막 정수.

차곡차곡 접은 반죽 위로 칼이 슥삭슥삭 지나가면 납작하고 긴 칼국수면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말랑한 반죽의 적당한 저항감과 도마 끝에 닿을 때의 둔탁하고도 경쾌한 감촉은 칼질에 즐거움을 더한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큰 냄비에 물을 끓인다.

채소도 숭덩숭덩 썰어 더한다.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칼국수가 붙지 않도록 툭툭 털면서 넣는다.

집에서 담근 간장으로 간을 한다.


시골집 손칼국수는 나눠 먹어야 제 맛.

가까운 이웃들이 모였다.

마루에 자리를 펴고 앉아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씩 받아든다.

반찬은 김치 두 어 가지면 충분하다.

후루룩후후룩.

얇고 부드러운 면은 훌훌 넘어간다.

뽀얀 국물에는 밀가루 풋내가 배어 있지만 그게 시골의 손맛이고 기억의 맛이다.

니 집 내 집 할 것이 없는 이웃들이 모여 손칼국수 한 사발 나눠 먹는 이 정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100도로 끓던 칼국수보다 더 따스한 사람살이의 온기와 함께.


[영상에세이도 함께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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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vNYMYWYY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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