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역에 내려 택시 무작정 잡아 타고 바닷가 아무데나 가자고 하니까 택시 기사님이 데려다 주신 곳이 대반동 해수욕장이었어.
목포에서는 바닷가 하면 말 그대로 아무데를 의미할 텐데 우울해 보이는 젊은 녀석이 가면 좋을 것 같은 데를 고르느라 나름 고심했겠지. 그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이름이 대반동 해수욕장이었어. 그가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어딘지 몰랐을 거야.
그렇게 내려준 해수욕장은 컴컴했어. 26년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여태 또렷해. 내 등 뒤의 검은 산은 유달산이었고 검은 바다 건너편 실루엣으로 보였던 섬은 고하도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지.
스물 한 살의 사랑은 뜨겁기도 했지만 그만 차가울 때도 많았어. 냉담하기만 하던 그녀를 견디지 못해 대책없이 서울역으로 향했고 아홉시 몇 분인가에 출발하는 목표행 무궁화를 탔지.
꼭 목포여야 했던 것은 아니었어.
서울에서 제일 먼 곳으로 가서 연락을 끊고 싶었지.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했으니까.
대전역에서는 우동도 한 그릇 사먹었던 것 같아.
그렇게 남으로 남으로 달려 새벽에 목표에 도착하니 갈 데가 어딨어? 그래서 택시 탄 거지.
바다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보면 먼 산 보면서 한 숨 쉬는 주인공의 뒷모습 그냥 멋있어 보이잖아.
대반동 해수욕장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어. 목적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게 혈기왕성한 스물 한 살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목포에서 다시 비둘기호를 타고 광주로 가서 해남을 거쳐 배타고 노화도까지 갔다가 서울로 가는 24시간의 여정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었지. 나의 그 객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더 단단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녀가 마누라가 되어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언젠가 한 번쯤은 26년 전 객기의 24시간을 그대로 재현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해.
혼자 당일치기 목포 여행 와서 대반동에 왔더니 해수욕장은 2006년에 폐쇄되었고 손바닥만한 모래사장만 사람들의 기억을 돕고 있더라.
그 사이 대반동은 유원지가 되었고 목포대교와 해상케이블카가 목포의 새로운 명물리 되어 있더라.
26년 전 어느 새벽에 앉아 있던 그 언저리에 있는 카페에 앉아 달달한 커피 마시며 해바라기 하고 있으니 뜨거웠지만 서툴렀던 나의 20대가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