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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Feb 23. 2022

마른 김 안 태우고 잘 굽는 법

마른 김 안 태우고 잘 굽는 법이다.

기름 발라 잘 굽고 맛소금 팍팍 친 맛있는 조미김 사 먹으면 되지 뜬금없이 마른 김을 왜 굽는다 말이냐. 전문가들이 각고의 연구 끝에 공장에서 균일한 품질로 잘 만든 조미김도 충분히 맛있다. 요즘 맛있는 김 얼마나 많냐. 김갑생 할머니김(!)도 있고.


그런데 때로는 누가 만들어 준 것보다 원물을 사다가 내가 직접 해 먹고 싶을 때도 있잖냐. 김도 그렇다. 잘 구운 마른 김을 그냥 먹어도 되고 간장에 살짝 찍으면 더 맛있지. 반찬으로도 좋지만 간식이나 안주로도 잘 구운 마른 김 만한 것이 없다.


잘 말린 곱창김 100장을 35,000원에 샀다. 한 장에 350원이다. 김이 다 거기서 거기다 싶지만 이 곱창김은 향도 기가 막히고 구워서 먹으면 단맛이 난다. 먹다 보면 아...마른 김을 구워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자 이제 마른 김을 안 태우고 잘 굽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너무 쉽고 어이가 없어서 뭐 이런 걸로 글을 쓰냐고 욕해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후라이팬에 김을 구우면서 김 굽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투덜댈 누군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으니 읽다가 실망스러우면 이탈해 주셔도 좋다.


후라이팬에 김을 구우려면 달궈진 후라이팬 표면에 김이 잘 골고루 잘 닿아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쓰는 코팅팬이 주물팬처럼 지 혼자 복사열이나 대류열을 막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 굽기가 어렵다. 전통시장에 가면 은은한 연탄불이나 브로일러 같은 데서 김을 굽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집에서도 그런 장면을 연출해 볼 수 있다.


준비물은 하이라이트와 식힘망.

먼저 하이라이트. 요즘 가스렌지를 인덕션으로 대체한 집이 많고 3구를 기준으로 대개 2구는 인덕션, 1구는 하이라이트로 구성되어 있다. 가스렌지가 있는 집이면 식탁용으로 1구 하이라이트 정도는 하나씩 갖추고 있지 않은가. 없으면... 도리 없고. 우리 집에는 가스렌지가 있는 대신에 1구 짜리 인덕션과 1구짜리 하이라이트가 있다. 이 하이라이트를 활용한다.


그 다음엔 식힘망인데 원형이든 사각이든 관계없다. 물론 없어도 관계없지만 이왕이면 열원과 거리를 조금 둘 수 있는 식힘망이 있으면 좋다. 식힘망이 없다고? 아마 갖고 있는데도 쓸 일이 없어서 찬장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주방가전도 산다 하는 사람 치고 안 가진 사람이 없다는 광파오븐 부속으로 식힘망이 딸려 온다. 여러분의 광파오븐이 라면 저장고로 사용되지 않고 있기를 바라며 식힘망을 꼭 발견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이라이트 화력이 생각보다 세다. 중불 정도로 세팅하고 식힘망을 올린 다음 김을 집게로 집어 뒤집어 가면서 골고루 굽는다. 검은빛을 띄는 마른김이 짙은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만 굽는다. 김 한 장 굽는데 10초 정도면 충분하다. 진짜다. 1장에 10초니까 100장 굽자면 1,000초가 필요하다. 분으로 환산하면, 음....내 산수력은 여기까지...암튼 굽다 보면 하이라이트의 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타지 않을 만큼 취향껏 구우면 된다.

여기서 전기료 10원이라도 아끼는 팁 하나. 하이라이트는 지가 열을 내는 기구이기 때문에 스위치를 꺼도 잔열이 있다. 그 열로 대략 5장 정도는 충분히 구울 수 있으니 다섯장 남았다 싶으면 꺼도 된다.

굽는 도중에 간혹 김가루가 떨어져서 타버릴 수 있으므로 입으로 훅훅 불면 된다. 그렇게 싱크대 위를 떠도는 김가루는 행주로 닦으면 행주빨기 어려우니 청소기로 쏙쏙 빨아들인다.


잘 구운 김은 가위로 슥슥 잘라서 밀폐용기에 보관했다가 꺼내 먹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알뜰살뜰 살림팁 하나 더. 김을 자르다 보면 자연스레 김조각이 떨어지는데 이 김을 먹어보면 그 자투리 조각도 아깝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김을 자를 때 바닥에 넓은 비닐이나 받칠 수 있는 쟁반 같은 걸 둔다. 바닥에 떨어진 김가루를 잘 갈무리해서 김통에 붓는다. 그렇게 남은 김가루는 나중에 떡국이나 비빔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려도 좋다. 조미김 부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김 굽는 거 하나로 너무 진지했다. 이렇게 마른 김에 진심이지만 어이없게도 우리 아이들은 조미김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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