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요리 생활
나는 화덕주다. 화덕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산주, 건물주, 차주, 주주라는 말은 흔한데 화덕주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화덕은 보통 피자나 바베큐를 하는 식당에 있기 마련이고 화덕이 있어도 그 식당의 주인은 셰프, 주인장, 사장 등으로 부르지 화덕주로 부르지는 않는다. 식당을 하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화덕을 갖고 있는 사람을 화덕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저 화덕 있어요.‘와 ’저는 화덕주입니다.‘는 같은 뜻이긴 하지만 그래도 화덕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더 그럴싸해 보였다. 그리고 완전한 소유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그 명칭만큼 찰떡같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소유‘를 주창한 것은 이 화덕의 제작과정과 관련이 있다. 비용을 지불하고 기술자를 불러다가 화덕을 만들어도 그것이 나의 소유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나고 자란 시골 어머니 집에 있는 화덕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진정한 화덕주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동기는 단순했다. 오래전에 ‘삼시세끼’에서 박신혜가 출연해서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화덕을 뚝딱하면서 만들고 거기다가 바게트를 만들어 먹는 것을 봤다. ‘어, 박신혜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하고 시작한 것이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만들어보자 싶어 티브이에서 본 것보다 크게 만드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기단을 쌓고 양생을 하고 다시 바닥판을 올린 다음 돔 형태로 모양을 잡고 황토를 세 번이나 바르고 말리는 데 한 달 반이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매주말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쓴 돈 비용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은 찾아왔다. 완성된 화덕은 세상에 둘도 없이 시골집의 풍경을 더 멋들어지게 빛내주었다.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최소한 두 시간은 불을 꾸준히 때서 온도를 올려야 하지만 한 번 달궈진 화덕에는 뭐든 들어가기만 하면 나올 때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시골집이라는 공간에서 화덕은 모양으로도 그 쓰임으로도 제 몫을 너끈하게 해내는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화덕에서 척척 만들어내는 요리 가운데 어머니와 주변 이웃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피자다. 시골에서는 치킨이나 족발은 자주 배달시켜 먹어도 피자는 그렇지 않은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시골 어르신들이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고르곤졸라 피자를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피자를 원래 좋아해서인지, 피자는 웬만하면 호불호가 없어서인지, 아들이 해주는 음식이라 더 각별하게 여겨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시골에 내려갈 때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피자를 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
피자는 토핑도 중요하지만 빵이 맛있어야 한다. 반죽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큰 양재기에 밀가루와 이스트, 설탕, 소금, 물을 넣고 반죽을 치댄다. 밀가루와 물의 비율은 대략 100대 70에서 75 정도로 잡는다. 약간 질다 싶을 정도의 반죽이면 된다. 반죽은 때려야 맛이다. 쫀득쫀득한 식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글루텐이 잘 잡혀야 하는데 시골서는 반죽을 어떻게 내려쳐도 눈치 볼 일이 없어 좋다. 진득하기만 할 것 같은 반죽을 20분 정도 치대다 보면 매끈하고 끈기 있게 바뀌는데 공처럼 잘 모양을 잡은 다음 한 시간 정도 발효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군불을 땐 아랫목에 두고 이불을 덮어 두면 딱이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의 저녁밥을 그렇게 아랫목에 묻어두곤 했다. 발효만 잘 되면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니다. 소분한 반죽을 얇게 잘 편 다음,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세 종류의 버섯을 올린다. 빵이 맛있고 화덕에 굽는 피자라면 화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박한 게 더 잘 어울린다. 모차렐라치즈도 듬뿍 올리고 여유가 있다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갈아서 곁들인다. 감칠맛이 폭발한다. 두 시간 이상 불을 때 열기를 한가득 품고 있는 화덕엔 손만 슬쩍 넣어도 뜨겁다. 피자를 불 옆으로 슬쩍 밀어 넣는다. 이따금씩 돌려주며 지켜보면 납작했던 반죽이 거짓말처럼 부풀어 오른다. 노릇하게 익히자면 3~4분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하면 몇 판이고 구워서 이웃들과 나눠먹을 수 있다.
갓 나온 피자를 나무도마 위에 올리고 칼로 슥슥 자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날씨가 차가울 때 더 극적이다. 죽죽 늘어나는 치즈를 둘둘 말아 입김을 후후 불며 한 조각씩 먹으면 나눠서 더 즐거운 시골 피자는 마치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라 우리네 정겨운 전통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왁자지껄한 이웃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겨울은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고 화덕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온 동네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