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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Mar 05. 2023

현서아빠, 겉절이 레시피 좀 알려주세요

그 남자의 요리 생활

농부인 어머니는 자급자족하는 삶을 사신다. 울 엄마만 그런 것은 아니고 농촌에 홀로 사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그렇다. 이런 할머니들이 그저 운동삼아 소일거리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촌사정 모르는 도시 사는 자식들의 바람이다. 하는 김에 언제나 제대로 해버리는 엄마들은 농사도 허투루 짓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언제나 본인 혼자 먹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미 남아돌게 농사지은 이웃들과는 나눌 수 없으니 결국 자식들에게 주신다는 명분만 남는다. 그 맛에 농사를 짓는 거니까.


배추가 끝물이다. 지난겨울 김장을 하고 나서 이 집 저 집 나눠주고도 아직 어머니의 곳간에는 배추와 무가 가득하다. 이따금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몇 통씩 챙겨주시는데 우리 집에선 많이 보관하기 어려워서 많이 가져오진 못한다. 배추는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면 꽤 오래 버티는데 봄이 슬슬 다가오니 겉이 물러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라며 배추 몇 포기와 무 몇 개를 비료포대에 한가득 담아서 차에 실어 주셨다. 속이 제대로 꽉 찬 배추는 그냥 우걱우걱 씹어 먹어도 맛있고 시골집에서 가져온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섞어 만든 쌈장을 곁들여도 딱이다. 그래도 배추를 배추답게 대접해 주는 방법은 김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김장김치는 충분해서 이럴 땐 상큼한 겉절이다. 그러고 보면 겉절이라는 이름은 참 직관적이다. 겉과 절이가 합쳐진 말은 이 음식이 재료를 빠르고 간단하게 양념으로 버무린다는 것을 단박에 알려준다. 부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숙성과 발효까지 필요한 김장김치와 달리 겉절이는 대단한 레시피가 없다. 이름 자체가 그러니까.


우리 집에 겉절이 귀신이 하나 있어서 이 귀신 덕분에 만들어 둔 겉절이는 살짝 삭아 신맛이 돌기도 전에 매진이다. 어머니가 주신 배추 두 통을 반을 가르고 또 반을 자른 다음 길쭉길쭉하게 잘랐다. 아삭한 아랫부분과 부드러운 윗부분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칼이 닿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큰 양재기에 담아 놓으면 양이 꽤 많아 보인다. 굵은소금을 흩뿌려서 잘 섞는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절여 두면 숨이 살짝 죽는다. 겉절이니까 아삭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래 절이진 않는다. 그 사이에 양념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는 강화도산 새우젓, 남해산 멸치액젓, 김천산 어머니표 고춧가루, 설탕, 마늘을 취향대로 넣고 믹서로 간다. 절인 배추는 물에 살짝 헹군다. 너무 빠득빠득하기보다는 설렁설렁하면 소금기가 좀 남는다. 물기를 조금 남겨 두면 버무리기 편하다. 뻑뻑한 양념을 양재기에 넣고 양손으로 비벼가면서 섞는다. 노란 배추가 먹음직스러운 주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젓갈 냄새, 마늘 냄새, 고춧가루 냄새가 어우러진 내음이 부엌에 가득하다. 이 맛있는 냄새를 이기지 못해 냉큼 한 조각 입에 넣어본다. 아삭하고 달큰하며 기분 좋은 매운맛과 감칠맛으로 입안이 상쾌하다.


김치통에 잘 담아서 하루 정도 실온에 두면 양념이 이리 섞이고 저리 어우러져 더 맛있어진다. 이거 하나면 따끈한 흰쌀밥 한공기만 있어도 한 끼가 해결된다. 우리 식구들만 맛있게 먹어도 좋은데 이웃들과의 친밀함이 각별한 아내가 몇 집에 맛이나 보라며 조금씩 나눠줬나 보다. 겉절이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담가 먹는 집이 잘 없는지 다들 맛있다는 말을 되돌려 주었다. 음식 하는 사람한테 가장 큰 칭찬은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이라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남의 집 아들들이 게눈 감추듯 먹고 이 김치 또 없냐고 물었다길래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간 마냥 뿌듯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더 찾는다며 더 달라고 하긴 미안해서 이웃 아주머니가 부탁을 했다. “현서아빠, 겉절이 레시피 좀 알려주세요.” 동네 아줌마가 동네 아저씨에게 배추겉절이 만드는 법을 물어보는 상황이라니. 요리하는 아저씨가 사는 동네에서는 종종 있는 재미난 일이다. 나도 계량하지 않고 대충, 대강, 적당히, 알맞게의 정신으로 만드는 거라 자세히는 알려주지 못했다. 대신 그 집 아들들을 위해 새로 만든 마지막 겉절이 좀 더 갖다 주라고 아내한테 부탁했다.


배추 시즌도 다 끝났구나. 이제 봄이 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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