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요리 생활
집 앞 사거리 모퉁이에 해마다 겨울이면 오던 붕어빵 장수가 올해부터 안 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른들은 퇴근길에, 아이들은 등하교 길에 심심찮게 들르던 곳이 하나 없어져서 섭섭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오가며 따뜻하고 달콤한 붕어빵 하나 사서 후후 불면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붕어빵 파는 곳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 뉴스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동네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에도 있었으니 올해도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없어지고 나니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내년에는 동네 어귀에서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했는데 아쉬움이 나보다 더 컸던 아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어빵을 먹을 수 없냐고 아빠를 재촉했다. 아빠는 요리도 잘하고 베이킹 책도 낸 사람이니 붕어빵 정도는 뚝딱하고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은근히 자존심을 자극했다. 모르는 요리도 배워서 하고 어렵다는 빵도 굽는데 까짓것 붕어빵이라고 못할까 싶어 아빠가 직접 끝내주는 붕어빵을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글을 더 쓰기 전에, 붕어빵 사장님들께 까짓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드린다.
붕어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붕어빵을 구울 수 있는 틀과 재료가 필요하다. 마침 지인이 작년에 선물해 준 미니 전기 와플기에 붕어빵 틀이 있어서 그걸 활용하기로 했다. 와플이나 붕어빵이나 어차피 열을 가해서 굽는 것은 매한가지니까 와플처럼 구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재료는 홈베이커의 자존심에 밀가루와 팥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밀가루와 다른 재료를 좀 섞어서 믹스를 직접 만들고 붕어빵에 들어갈 팥소도 직접 쑤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야 아빠가 '손수' 만들었다고 큰소리칠 수 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엔 나의 이런 과도한 의욕과 지나침을 적절하게 제어해 주시는 사람이 한 분 계신다. 다른 집도 다들 그럴 것 같은데 바로 아내다. 붕어빵 몇 개나 먹는다고 팥까지 쑤느냐, 니가 무슨 안흥찐빵 사장이냐, 단팥빵 장인이냐, 요즘 각종 믹스가 얼마나 잘 나와 있는데 수고를 자처하느냐, 붕어빵 사장님들도 시판 믹스와 팥소 사다 쓴다며 뒤처리가 두려웠던 아내는 냉큼 붕어빵 믹스를 온라인 몰에서 주문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내의 선택은 항상 옳다. 전문가들이 적절한 재료를 배합해 만든 반죽 믹스와 물만 부으면 슈크림이 되는 가루와 국산 팥으로 달달하게 쑨 팥소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상했지만 프로들도 이렇게 하는데 유난 떨 이유가 없고 내가 직접 만든다고 해서 맛을 보장할 수 없다. 재료가 다 갖추어졌으니 이제 잘 굽기만 하면 됐다.
믹스에 물을 타서 적당해 보이는 농도로 반죽을 만들어 두었다. 팥을 좋아하는 첫째와 슈크림을 좋아하는 둘째의 취향을 반영해서 두 가지 소를 다 준비했다. 붕어빵 사장님들이 굽는 걸 떠올리며 예열한 틀에 계량컵으로 옮긴 반죽을 부었다. 한쪽에는 팥소, 다른 쪽에는 슈크림을 채우고 다시 반죽을 부었다. 곧장 뚜껑을 덮고 기다렸다. 두 판 사이에서 김이 나기 시작하고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오, 쉬운데.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안 했을까 하면서 뚜껑을 열어 보니, 바닥에 있던 부분은 모양도 색깔도 노릇하게 잘 나왔는데 윗부분은 반죽이 모자랐는지 틀대로 모양이 안 나왔고 틀에 다 닿지 않아서 그런지 색도 허옇기만 했다. 완벽한 실패였다.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미 사놓은 재료가 있으니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열 마리는 굽고서야 반죽의 적당한 농도와 양, 굽는 시간, 소를 최대한 많이 넣을 수 있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실패한 열 마리는 아이들이 거부해서 다 내가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열로 작동하는 붕어빵틀이 조금만 과열된다 싶으면 수시로 온도를 스스로 떨어트려서 균일한 품질의 붕어빵을 만들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이 붕어빵은 사이즈가 너무 작다며 아쉬워했다. 도리 있나.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가스불에 올릴 수 있는 더 큰 사이즈의 붕어빵틀을 바로 주문했다. 두어 마리만 먹으면 든든해질 만큼 넉넉한 크기였다. 새로운 틀에 다시 적응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짤주머니까지 등장했다. 반죽의 양을 잘 조절하고 틀에 골고루 올리기 위해서는 계량컵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가스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일도 문제였다. 몇 번이나 뒤집어야 하는지도 알아내야 했다. 또 열 마리의 붕어가 희생되었고 여지없이 내 몫이었다. 겨우겨우 비슷하게 흉내는 내는 수준이 되었지만 까짓것 붕어빵이라고 큰소리친 것에 비해서는 초라함 결말이다. 아이들이 구워달라고 할 때 주저 없이 만들어내긴 하지만 집에서 안 만들고 주로 밖에서 사 먹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동네 근처에 붕어빵 어디서 파는지 알려주실 분을 간절하게 찾고 있는 중이다. 사 먹자, 붕어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