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요리 생활
나는 집에서 빵을 굽는 남자다. 흔히들 홈베이커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더 멋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더 많이 통용된다. 하지만 베이킹을 하는 것, 즉 뭔가를 굽는 것을 통칭하는 말과 밀가루를 이용한 모든 것이 아니라 “빵”을 굽는다는 의미에 더 힘을 준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르다. 베이킹은 쿠키부터 케이크, 빵류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빵은 빵이니까. 빵은 대체로 글루텐 함량이 높은 강력분(중력분을 쓰기도 한다.)을 발효를 시켜주는 물질(주로 이스트)과 함께 반죽하고 부풀린 다음 오븐에서 구워내는 것을 말한다. 바삭하거나 폭신폭신한 과자, 케이크류와 달리 쫀쫀하고 쫄깃한 질감이 특징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빵도 있다만.
집에서 빵을 굽자면 최소한 오븐이 필요하다. 하다 못해 에어프라이어(이것도 실은 오븐의 한 종류지만)라도 있어야 한다. 직화냄비 같은 데서 굽는 빵도 있긴 하지만 그건 잠시 옆으로 제쳐두고. 우리 집엔 준 업소용 오븐이 하나 있다. 사이즈가 제법 커서 혼자 들지 못하는 컨벡션 오븐인데 홈베이킹을 취미로 하기 시작하면서 이 정도는 있어야지 하면서 들인 아이다. 4단 짜리니까 과자, 빵 말고 웬만한 오븐요리는 너끈하게 해낼 수 있는(닭 세 마리 정도는 우습게 구워내는) 크기이다. 우리도 남들처럼 에어프라이어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냐는 아내의 구매충동을 누를 때 자주 등장한다. 여보, 얘랑 쟤랑 다른 애가 아니에요. 제발.
그리고 진정한 홈베이킹 하면 양재기에 재료를 넣고 섞은 다음 손으로 마구마구 장인의 정신과 혼을 담아 반죽하는 장면을 떠올리기가 쉬운데, 사실 그건 시중의 베이킹 책들이 만들어놓은 판타지 같은 거다. (손반죽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요.) 집에서 요리할 때 조미료 쓰지만 블로그나 유튜브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베이킹 책들은 대체로 손반죽을 권장한다. 그게 그림이 되고 뭔가 내 손으로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에도 좋으니까 책 만드는 사람이나 읽고 따라 하는 사람 모두 윈윈이다. 암튼 빵 하나 만들자고 손으로 반죽을 치대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그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힘들다. 제법 힘들고, 품질을 보장하는 경지에까지 가려면 시간도 걸린다.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원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손반죽을 해보는 것이 좋겠지만 홈베이커라고 주장할 정도로 자주 빵을 굽는 사람이라면 기계에 내 몸을 의탁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기계가 나보다 잘한다. 그래서 이웃이 다른 분께 얻었다가 반죽할 일이 전혀 없어 한 번도 쓰지 않은 또 준업소용 반죽기를 기증받아 쓴다. 늘 주방에 꺼내놓을 수 없어 쓸 때마다 30킬로그램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손반죽하는 수고에 비하면…
반죽기, 오븐만 있으면 빵 만드는 일 중에 반죽하고 굽는 것은 얘들한테 맡기고 나는 상황을 봐가며 발효시간을 조절하고 빵모양으로 성형하는 것 정도의 수고만 하면 된다. 그래서 집에서 빵을 굽는 게 일견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말고는 큰 애로사항이 없는 편이다. 여러 가지 빵을 굽다가 결국 최종적으로 수렴한 빵은 치아바타와 바게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만세! 일단 둘 다 재료가 간단하다. 물, 불, 공기, 흙… 아차차! 다시. 강력분, 인스턴트드라이이스트, 설탕, 소금, 물만 있으면 된다. 재료에서 이미 소박함과 투박함, 건강함, 단순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워낙 화려함과 기교가 없는(만들 때는 기교가 필요하다.) 기본빵이라 그냥 질겅질겅 씹어 먹어도 되고, 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어도 좋고, 샌드위치빵으로도 좋다. 우리 집에선 종종 불고기가 잡채를 끼워서 먹기도 하는데 강력 추천한다.
특히 치아바타는 주말에 여유가 있을 땐 꽤 많이 만들어서 아주 가까운 이웃에 판다. 배달은 안 된다. 우리 집에 띵동 하고 와서 가져간다. 대신 싸게 판다. 한 개에 겨우 천오백 원이니 만든다는 소문만 내면 우리 식구들 먹을 것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팔린다. 맛도 맛이지만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먹는다는 것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조금 더 오래 구워서 구수한 맛을 올린다. 여태 파는 것처럼 하얗게 구워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은 없는 걸 보면 우리는 누룽지의 민족 한국사람이다. 한 집에서 보통 10개씩 정도 사가는데 대부분 1시간 안에 다 먹는다고 한다. 만드는 사람한테는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뭐든 차고 넘칠 때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 집엔 늘 치아바타가 남는다. 냉동실을 열어 보면 한두 개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아내한테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올리브 치아바타는 안 만드나?” 먹고 싶다는 뜻이다. 평소에 특별히 뭘 해달라는 말도 잘 안 하거니와 빵을 열렬히 즐기지 않는 아내의 말에 반색할 수밖에. 왜 안 만들어? 만들어야지. 올리브 치아바타가 먹고 싶었구나. 내 당장 만들어 주마. 하던 치아바타 반죽에 올리브만 썰어 넣으면 되는데 뭘.
나는 무거운 반죽기를 다시 꺼내서 일을 맡겼다. 블랙올리브를 잘게 다져서 반죽에 섞었다. 어느 때보다 집중하면서 성형을 하고 발효도 충분히 했다. 행여나 반죽이 주저앉을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오븐에 넣고 구웠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올리브 치아바타가 세상에 나왔다. 치아바타 연습하면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던 7~8년 전 이후로 처음이다. 한 김 식힌 다음 접시에 담아 아내에게 내밀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아내가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정말 뜯어먹었다. 고소한 갈색 겉 부분만! 그리고 밀가루 뒤집어쓴 고슴도치 모양을 한 안쪽 부분은 나 먹으라고 웃으며 돌려주더라. 웃는 얼굴엔 도리 없지. 그래 그게 사랑이라고 치자. 사랑하는 여보님, 다음엔 무슨 치아바타 구워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