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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Apr 02. 2023

소고기를 어쩌면 좋지?

그 남자의 요리 생활

퇴근하는데 아내의 카톡이 왔다.

“자기야, 소고기 사진만 보면 어떤 부위인지 아나?”

퀴즈인가? 테스트인가? 갑자기 소고기 부위라니. 평소에 음식 공부를 하고 알은척을 많이 하니 너 이 녀석 어디 맞히는지 보자는 뜻이었을까? 고기에 대해 관심은 많아도 내가 정육점 사장도 아니고 업자도 아니라 사진만 보고 어떤 부위인지 알 수가 없어서 ‘대략’이라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했다.


“S한테 어디 시골에서 한 5킬로그램 되는 덩어리가 와서 난감한 상황이야. 이걸 도대체 어찌해야 하고…시아버지가 보내셨는데 시골에서 소를 잡았나 봐.”

동네에서 아내가 자매처럼 지내는 S네 집에 소고기가 덩어리째 왔는데 난감해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사진을 언뜻 보니 등심과 사태살 같아 보였는데 나한테 고기가 왔다는 정보를 전달하려는 단순한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손질해 줘?”

“지금 난감해하고 있는데 자기가 가서 손질 좀 해 줘.”

“그 집 남편 J는 뭐 하고?”

“집에 있다는데 J가 잘 모르니까.”

S의 남편 J는 동네에서 소문난 미식가로 어느 동네의 어떤 식당의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에 빠삭한 친구인데 돈 주고 사 먹는 건 잘해도 요리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러면, 내가 칼 들고 그 집에 가는 것도 좀 거시기하니까 우리 집에 갖다 놓으라고 해.”

“알았어.”


집에 도착을 하니 두 종류의 붉은 소고기가 큰 봉지에 들어 있었다. 세 식구 사는 S네 집에서 다 먹기 어려운 양이라 친하게 지내는 네 가족과 나눠 먹기로 했다며 손질을 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S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고기도 좋아하고 고기와 관련한 책도 여러 권 읽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책으로 배운 지식일 뿐이었고 정육점 사장님들이 손질하는 걸 곁눈질 정도로만 배웠으니 큰소리만 쳤지만 나도 S나 J처럼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요리깨나 한다는 소문은 났으니 약한 척은 하기 싫어서 고기를 우선 도마에 올려놓았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목장갑을 끼고 우리 집에서 제일 잘 드는 칼을 꺼내 들고 야스리라고 부르는 칼 가는 봉도 꺼내 들고 슥삭슥삭 칼도 갈았다.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그 사이에 고기를 손질하는 재주가 생겨날 리 없었다.


고기 손질의 기본은 지방을 제거하고 실버스킨이라고 부르는 근막을 잘 잘라내는 것이다. 지방을 떼어내는 일은 비교적 쉽다. 웬만한 지방은 다 손으로 뜯어진다. 문제는 근막인데 살코기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면 정말 잘 드는 칼로 얇게 포를 떠내듯이 발라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기술이라 쉽지 않다. 고깃집은 칼끝에서 이문이 난다는 말이 있는데 근막을 제거하다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격렬하게 깨닫게 된다.


등심은 근육의 구성이 간단해서 겉에 있는 실버스킨만 제거하고 구이를 할 수 있는 두께로 일정하게 자르면 됐다. 근막에 붙은 살코기는 살살 긁어서 간고기처럼 쓰기로 했다. 사태살 부위는 근육의 구성이 다양해서 제거해야 할 근막이 많아 쩔쩔맸다. 당황한 표정은 잘 숨겼다. 어찌어찌해서 미숙하지만 고기 손질이 끝났는데 한 시간은 넘기지 않았다. 고기 주인집에 가장 많이, 손질한 우리 집에는 그다음으로 많이, 나머지 두 집에는 공평하게 고기를 소분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를 손질하고 나서 한 자기 큰 교훈을 얻었는데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그럴 일이 또 있을까 싶지만) 돈을 주고서라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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