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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un 09. 2023

공들인 콩국수 한 그릇


좋은 서리태와 백태를

물에 잘 불린다.

하루 정도면 충분하다.

물 머금은 콩은 탱글하다 못해 터질 듯.

콩이 잠기게 물을 붓고

풋내가 살짝 남아 있을 정도로만

삶는다.

대략 10분 내외.

불에서 내려도 스스로 익는다.


성능 좋은 믹서기에

물을 적당량 부어가며 간다.

물이 적으면 뻑뻑해서 섞이지 않고

물이 많으면 성글어서 곱게 갈리지 않는다.


적당함은 적당치 않게 어렵다.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레시피대로만 하면 될 것 같지만

글과 영상과 드러나지 않은

변수가 많아서 도리 없다.

간단해 보이는 음식일수록

섬세함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요리는 쉽고도 어렵다.

함부로 잘 한다고 할 수 없다.


면을 삶는다.

중면도 좋고 소면도 좋다.

우리집 인덕션 화력에서는

딱 3분만 삶는다.

찬물에 빨리 헹구면

면이 투명하다.


오이도 정성스레 채썬다.

어떻게 썰어도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이왕이면 같은 굵기가 좋다.

입에서 이물감이 없다.


그릇에 면을 앉히고

콩물을 붓는다.

오이를 고명으로 얹고

통깨도 뿌린다.

소금파과 설탕파가 있지만

나는 소금이 좋다.

굵은 소금보다는

가는 소금을 쓴다.

찬물이라 그렇다.

굳이 천일염이니

핑크솔트니 가릴 건 없다.

소금이 소금이니까.

간을 봐가며

소금의 양을 조절한다.


한 젓가락 들어 올리면

면과 면 사이를 채운

콩물이 함께 따라 올라오다가

미끄러져 내려간다.

놓칠 새라 입으로 당긴다.

교양있게 조용히 먹고 싶지만

도리없다.

그게 콩국수니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쫄깃함, 고소함, 아삭함, 찐득함을

다 합해도

이 총체적인 흐뭇함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겨우 한 사발이지만

공들인 만큼

기품있는 맛이

찰나의 행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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