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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un 29. 2023

차림이 허름해도 집밥만 한 게 없다.

나는 저녁 약속이 별로 없다.


술을 못해서이기도 하고 퇴근해서 공장(!) 사람들 만나서 또 공장 이야기하는 것이 소모적이기도 해서다. 주변분들은 여전히 의아해하지만 인간관계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기도 하다. 



그 덕에 저녁밥은 대부분 집에서 먹는다.


누가 들으면 용감한 남편이라고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무서워하며 숨죽이며 산다. 



무서운 아내를 식구(여기선 가족보다는 식구라는 표현이 더 맞다.)들의 밥 차리는 것을 매우 중요한 소명으로 생각한다. 아내가 현모양처를 지양하거나 전통적인 아내의 미덕을 숭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밥에 있어서만큼은 집밥을 고집한다. 외식을 자주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집밥을 자주 먹을래 외식을 자주 할래라고 묻는다면 집밥이라고 입을 모을 것이다.



6시가 돼서 퇴근 시간이 되면 나는 아내에게 카톡으로 'ㅌㄱ'이라는 사인을 보낸다. 지하철에 내려서 버스를 타면 다시 톡을 보낸다. 밥을 차리면 된다는 뜻이다. 



거실에 소파를 놓고도 소파를 등에 기대는 용도로 쓰는 것처럼 우리집에도 식탁이 있지만 식탁은 식재료를 올려놓는 용도로 쓴다. 그 대신 저 찬란한 꽃무늬가 계절 따윈 안중에도 없이 피어난 양은밥상에 밥을 차린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게 없다. 오늘 저녁엔 콩밥, 소고기미역국, 멸치볶음, 돼지불고기, 콩나물무침, 찐 양배추, 건 보리새우를 넣은 애호박전과 후식으론 어머니 농장에서 키운 대석자두가 차려졌다. 막상 적어 놓고 보니 종류가 꽤 많은데 언뜻 보면 소박하기 짝이 없는 밥상이다. 농부의 밥상 같기도 하다. 몸에 특별히 나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다 좋은 건강한 밥상이다. 균형잡힌 한 끼다. 



한 쪽 다리 세우고 퍼질러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오늘따라 아내가 부친 애호박전이 맛나다. 청양고추 쫑쫑 썰어 넣어 중간중간 매운 맛이 느끼함을 누그러뜨리고 바삭하게 씹히는 보리새우가 감칠맛을 더했다. 대파 썰어 넣은 양념간장 살짝 찍어도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둘을 합쳐서 수저라고 한다. 숟가락은 수저의 일부다.)이 바쁘게 오가면 입은 즐겁다. 속도 부대끼지 않아서 좋다. 이백 몇 킬로미터를 달려온 고향의 자두 한 입 베어물면 터지는 새콤한 과즙이 새그랍다는 사투리를 저절로 내뱉게 한다. 



식재료를 재배하고 기르고 잡아올린 그 모든 이들의 땀과 남길 것 하나 없이 알뜰하게 음식으로 만든 사람의 정성이 더해진 오늘 저녁밥은 허름해 보여도 이만한 게 없을 만큼 훌륭했다. 행복한 3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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