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궁 Aug 07. 2023

일본엄마를 위해 내손으로 차린 집밥 한 상

나는 누가 나한테 밥 해달라는 소리가 제일 반갑다. 애들이 배고프다며 징징거릴 때, 아내가 안주 해달라는 말을 할 때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다른 이의 허기를 채워주고 나면 내 마음도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하다. 


6년 전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일본으로 떠났다. 가까운 후쿠오카에서 하루를 보냈다. 에어비앤비 쿠킹 클래스 손님으로 우리 가족과의 인연을 시작한 뒤 이제는 아이들이 이모라고 부르는 아까네의 부모님이 사시는 구마모토 집으로 초대받았다. 그 댁에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일본사람들은 가족이 아니면 집으로 잘 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 식구들을 가족으로 맞아준 아까네의 부모님은 가까운 친척이 온 것처럼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편안한 잠자리를 내주었고 이름난 관광지와 맛집도 빼놓지 않았다. 아까네의 엄마는 매 끼니가 잔치인양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밥을 차렸다.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을 만큼 아까네의 부모님은 3일 내내 우리 가족에게 온 마음을 다해 주셨다. 아직 여권도 발급받은 적이 없다는 부모님께 언젠가 한국에 오시면 꼭 받은 은혜를 돌려드리겠다며 구마모토 역에서 눈물로 헤어졌다. 


드디어 기나 긴 코로나 끝에 6년 만에, 그 일본엄마가 아까네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한국으로 해외여행을 온다는 소식이 왔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첫 일정은 우리 집에서 내가 만든 한식 집밥을 먹는 것이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2박 3일 일정 내내 모시고 다닐 수도 있겠다고 했지만 그거면 충분하다니 나는 무슨 음식을 만들어 드려야 할지 고민고민했다. 구마모토에서 입은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최고의 집밥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특별히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물었더니 내가 만든 음식이면 다 된다고 하여 기분 좋은 부담이 생겼다. 


아내와 며칠을 상의한 끝에 메뉴가 정해졌다. 가족이 오랜만에 만나서 먹을 친숙한 집밥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작년 겨울에 담가 잘 삭은 김장김치, 지금 제철인 마늘종 장아찌, 시원한 오이무침, 매콤한 오징어 진미채를 기본 밑반찬으로 준비했다. 모두 엄마가 보내주신 것들이다. 아들 가족을 각별히 대해 주신 분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덧붙였다. 


좀 특별한 반찬은 다섯 가지를 준비했다. 외국인에게 집밥 쿠킹클래스를 할 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소불고기를 국물이 자작하게 만들었다. 귀한 분을 모시고 잔치를 하게 되었으니 잡채가 빠질 수 없지. 온라인 쿠킹클래스에서 다루는 음식이라 자신 있었다. 매운 음식도 빠질 수 없으니 칼집을 정성스레 넣은 오징어를 갖은 채소와 시골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볶음으로 냈다. 오징어김치전도 바삭하게 부쳤다. 계란 몇 개를 풀어 폭신폭신하게 돌돌 말았다. 엄마가 보내주신 막장과 신선한 상추를 쌈으로 곁들였다. 닭을 압력솥에 푹 고아서 닭곰탕을 만들어 국으로 올렸다. 남은 닭육수와 감자, 당근 썰어 넣어 닭죽도 끓였다. 


집밥 한 상 제대로 차려 놓고 일본엄마를 기다렸다. 두시쯤 드디어 아까네와 함께 일본엄마가 오셨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얼굴로 우리는 서로 포옹했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도 조금 흘렸던 것 같다. "배 고프죠? 얼른 밥 먹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한 상 차린 식탁에 둘러앉아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까네도 우리 집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이 밥상이 너무 그리웠다며 연신 맛있다고 한다. 


한식을 K-드라마로 배운(!) 일본엄마는 TV에서만 보던 한식 밥상이 너무도 신기했던지 '스고이'와 '스바라시'를 연발했다. 밥상에 올라온 모든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서 자세하게 물어보면서 맛있게 드셨다. 일본어를 못하지만 좋은 어플이 많아 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디지털 통역사를 통해야 했지만 밥상에서의 대화는 늘 즐겁다. 함께 오지 못한 일본 아빠의 안부를 물었고 맛난 스키야키와 다코야키를 만들어 주셨던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한지 궁금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우리는 밥을 같이 먹은 진정한 식구가 되었다. 내가 차린 정성스러운 한 끼는 6년 만의 만남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주무시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2박 3일의 짧은 일정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엄마와는 밥 한 끼 먹고 헤어져야 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조금은 아쉽게 조금은 뭉클하게 일본엄마와 작별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내 손으로 지은 밥을 언제고 해 줄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집밥 요리사다.



이전 06화 아빠, 빨리 김치 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