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동두천을 갔다고?
소도시 여행기를 이야기했더니 책을 많이 읽는 외삼촌이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추천해 주었다. 여행기란 무릇 사람이 등장해야 하며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우연적인 사건 속에서 위트와 유머, 교훈이 있어야 되는데 유쾌한 글쟁이 빌 브라이슨이 딱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이다. 나도 당연히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월간 소도시 여행의 컨셉을 당일치기(에피소드가 발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혼자(혼자 다니면 사람을 만날 수도 마주치더라도 대화할 일이 거의 없다.) 소도시(나는 사람 없는 데만 골라서 다니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다니는 걸로 잡은 이상 혼자만의 감상과 여정밖에 담을 것이 없다. 더군 감상이란 사뭇 진지한 것이어서 공감도 재미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좀 유머러스한 사람이긴 하다. 유재석이라 한들 게스트 없이 혼자서 쇼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유느님을 여기까지 소환한 점 사과드립니다.) 내가 아무리 재미난 사람인들 혼자 있는데야 재미를 불러 일으킬 재주가 없다. 나 가고 싶은 곳에 “혼자" 다니고 내 마음대로 글 쓰겠으니 읽고 공감을 하는 것은 읽은 사람들 몫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삼촌 미안해요. 나에겐 빌 브라이슨의 스티븐 가츠같은 친구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내 맘대로 선택한 도시는 애시당초 동두천이었다. 뭐 동두천이라고? 거길 왜? 이런 생각이 바로 들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 전혀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곳을 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나는 왜 늘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기는지 모르겠다. 남들 다 하는 건 싫고 그렇다고 나만의 세계에 아주 깊이 침잠하는 그런 사람은 또 아니다. 뭔가 다르되 보통 사람의 상식을 벗어나기는 싫다. 옷을 포함한 물건을 고를 때도 그렇다. 그렇게 해서 문득 떠올린 동두천과 매치되는 이름은 동두천여상이었다. 80~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동두천여상의 고적대를 기억할 것이다.(나만 기억하나?) 국빈 초청, 국제 행사 등 굵직굵직한 국가의 대사가 있을 때마다 동두천여상의 고적대는 염광여상과 함께 쌍벽을 이루며 행렬을 이끌었다. 호른인지 튜바인지 가장 뒷열에 서 있는 악기의 커다란 벨 부분에 표시된 ‘동',’두',’천',’여',’상'이라는 글자가 TV 화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때 그 화려한 고적대 복장을 입고 행사장을 종횡무진하던 씩씩한 누나들은 다 뭐하고 있을까? 미군부대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그 동두천여상은 지금은 이름이 한국문화영상고등학교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산, 부기, 타자를 가르치던 학교가 이제는 미디어 컨텐츠를 가르친다. 세상은 서서히 스미듯 바뀌지만 어느 한 단면을 잘라서 비교해 보면 그 변화가 확연하다. 학교 이름에서도 그렇다. 나이 들어가는 나는 추억만 파먹고 살고 있지만.
동두천은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수도권 전철망에 역 이름이 있으면 게임 끝. 1호선 북쪽 방향 플랫폼에 서 있으면 이런 방송이 나온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동두천, 동두천행 열차입니다.’ 그렇다. 1호선 종점이다. 신도림에서는 대략 한 시간 반 걸린다. 요금은 2천 몇 백원.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다른 지방도시와 달리 수도권의 도시는 가는 길이 편하다. 돌아오는 차편을 걱정할 필요도 거의 없다. 여차하면 택시를 잡아타고 와도 된다. 단 돈이 좀 많아야 된다. 지방으로 좀 멀리 갈 때는 막차가 몇 시인지 살피곤 했다. 수도권 광역 전철망은 소위 혜자다. 여행의 기분보다는 전철 타고 잠시 마실 다녀온다는 느낌으로 나서기로 했다. 동두천을 향해.
모두가 예상했듯이 동두천엔 볼 것이 없다. 동두천 시민들께는 미안하지만 없어도 너무 없다. 있으면 좀 알려주시라. 동두천을 대표(!)하는 미군부대는 관광지가 아니다. 가 본 들 정문에서 문전박대만 당하기 마련이다. 동두천 관광을 검색했더니 시내에는 세계 음식문화 거리 말고는 갈 만한 데가 없다. 동두천이 내세우는 곳은 대부분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야하는 곳에 있다. 전철 타고 가서 시내 한 바퀴 돌아보는 일이 별 의미없어 보였다. 별 것 아닌 곳 가서 뭔가를 발견해 내는 것이 취미인데 여기서는 도리 없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지도를 확대하고 북쪽으로 스크롤 했다.